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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감정들

일자
2023.12.08 (금)
이름
쑥, 『무명의 감정들』
필사
<강인한 마음> - 필사 X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늘 흔들린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산다. 늘 직간접적으로 평가 당한다.
칭찬받고 싶지만 매번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괜찮다고 그런 평가도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자신을 다독여 봐도 잊히지 않는 뾰족함이 있지.
이젠 그만 좀 무뎌질 때도 됐는데 도저히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좀 참다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참다가 울게 되는 시간.
'불합격입니다.' '에이 별로다.'
혹은 표정이나 행동에서 드러나는 평가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평가의 흔적.
참을 수 없는 나의 부족함. 부족함을 활자로 보고 느끼고 마음이 떨려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고.
노력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부족함을 인정하기가 어려운 순간들.
이 부족함을 평생 채워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함이 왈칵 밀려드는 순간들도.
내가 늘고 있는 건 실제 실력보다도 늦게 우는 법과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는 법인 것 같다.
잘하는 걸 더 잘해 보이도록 행동하는 법과 부족함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법.
다 잘하고 싶어.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나 그렇지 않지. 견딜 수 없이 부족한 것들이 넘쳐나지.
그런데도 그만둘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냥 떨리는 마음을 끌어안아.
강인하진 않아도 버티는 힘을 기르고 있다.
<산타와 책임감> - 필사 O
책임감, 그것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도움과 지지를 보내겠지만 그건 이름 그대로 도움과 지지일 뿐.
선택과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사실을, 산타가 없다는 것을 깨닫듯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산타를 믿어본 적이 없다.
처음엔 그게 슬펐다. 누가 나를 좀 이끌어 줬으면, 은인 같은 사람이 운명처럼 나타나 줬으면,
마침내 나를 좀 책임져 줬으면 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사람이 동화 속 요청 할머니처럼 뿅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혼자 나아가야만 했다. 좋은 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도움과 응원을 받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늘 도움과 응원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으니까.
내가 주인공이라고 그들이 엑스트라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 모두 주인공이었고 각자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혼자인 시간에도 나는 나를 믿고 선택해야 했다.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고,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했다.
책임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모든 선택과 집중이 두려웠다.
남의 합리적 선택을 무작정 따라할까 하다가도 완전히 같은 삶은 없기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선택도 참고서일 뿐, 정답지가 아니었다.
정답지가 없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오답이 없다는 것도 기쁜 일이었다. 채점자가 나라는 것도 다행인 일이었다.
그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늘 최선을 다해 고민했고 그 선택에 책임지고 있으니까.
일자
2023.12.11 (월)
이름
쑥, 『무명의 감정들』
필사
<기쁨의 테두리와 슬픔의 정중앙> - 필사 X
시간으로 따지자면 나는 훨씬 많이 웃었다. 그러나 슬픔의 기억은 몹시도 강렬해서 떠올려 보자면 기쁨보단 슬픔의 모습이 폭력적으로 꽂혀 있다.
몹시 자주 웃는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그게 좋다. 쉽게 기쁜 내가 좋다.
그러나 기끔 찾아오는 슬픔은 대부분 너무 강렬하고 말릴 수 없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웃은 시간이 훨씬 많은데도, 그렇게도 쉽게 웃었는데도, 기쁨은 쉽게 잊히고 슬픔은 구태여 머물고 있나.
따지자면, 굳이 굳이 두 갈래로 나누라고 하면, 슬픔 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왜 나 같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기쁨의 테두리를, 슬픔의 정중앙을 밟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횡단보도의 흰 부분만을 밟으려던 때가 있었지. 기쁨만을 밟듯이.
그러나 겨누는 마음이 미약한 나는, 검은 부분을 밟고 면면히 슬퍼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은 희든 검든 땅만 밟으면 되는 일이었다.
혼자만의 규칙에 갇혀 끝내 슬픈 건 그저 나뿐이었고.
<나쁜 날이지 나쁜 삶이 아니야> - 필사 O
기분이 가라앉은 날, 의식적으로 되뇌는 말.
나쁜 날이지 나쁜 삶이 아니야.
이건 수학적으로도 사실이다. 한 가지라도 옳지 않은 경우가 있으면 그건 거짓인 명제이다. 부정의 여지도 없는 식.
나쁜 날은 있어도, 나쁜 삶은 아니다.
일부는 전체가 아니다. 내 삶에는 나쁜 날이 있었고 역시 좋은 날이 있었다.
내 안에는 나쁜 것들이 액체의 형상으로 휘늘어지고 좋은 것들이 고체의 형상으로 단단히 섰다. 존속의 형태만이 다를 뿐이다.
행복의 색은 모든 빛을 반사해서 곧 불행마저 비추고 인지하게 만들지.
다만 불행의 색은 모든 빛을 잡아 삼켜. 곧 환해질 미래는 염두도 못 하게 눈을 삼키고.
날이 흐렸고 비를 함빡 맞았고 옷과 신발이 고약하게 축축한데, 마음이 그 구정물마저 흡수한 양 착 가라앉아 있다.
옷은 빨고, 몸은 닦으면 되는데,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마음이 몸을 그림처럼 눕히지는 않는다. 메일에 답장했고 커피를 내렸고 빨래를 내렸고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눈이 적응하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스위치가 보인다. 찬찬히 걸어가 무리 없이 툭 켠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터질 듯이 시큰거리다가 이내 괜찮아진다.
어제처럼 가방을 챙기고 문을 연다. 캄캄한 어제와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여전한 일상을 산다.
일자
2023.12.13 (수)
이름
쑥, 『무명의 감정들』
필사
<살아 있으니 행복으로 돌아도 오는구나> - 필사 X
살아 있으니 이렇게 행복한 순간도 오는구나.
예전에 갔던 여행지를 또 왔다.
똑같은 바다,
똑같은 자리,
맛있는 음식,
끝없는 수다,
유쾌한 사람.
묘한 기분이었다. 몇 년 전에 왔던 자리에 또 와서 있다. 명치 끝이 뭉클했다.
너무 좋다. 행복해. 진짜 맛있다. 를 하루에 삼백 번씩 말하는 여행.
차에서 경쾌한 음악을 따라 부르고 바닷바람을 맞고 시답지 않은 농담에 깔깔거리는 낭만을 함빡 얻고 오는 길.
고요한 밤바다를 보니 묘한 마음이 되었다. 다면적인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살아있으니 행복으로 돌아도 오는구나.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도 오히려 좋아를 외치는 다다다 좋아 여행으로!
또 돌아가서는 견뎌야 하는 일상이 있겠지마는 해내야지 그것도. 견디다 얻는 행복이 더없이 뭉클하잖아.
여행 끝! 일상 시작!
그리고 또 언젠가의 낭만을 위해 겪어보자, 일상을.
<선생님, 저는 지지 않을 거예요> - 필사 O
선생님, 저는 지지 않을 거예요.
무엇이랑 싸우고 있나요?
제 마음이랑요.
어떤 마음과요?
지려는 마음이요. 불안과 예민과 우울과, 그리고 그것을 겪는 저를 미워하는 마음이요.
어떤 무기를 들었나요?
햇빛이요. 좋아하는 뮤지컬이요. 자주 가는 카페 커피의 쌉싸름이요. 다정한 사람들과 상냥한 활자들이요. 떠오르는 맛있는 음식을 사는 것이요. 귀한 약속을 잡고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이요. 나른한 산책으로 만나는 귀여운 강아지도요.
무기가 많네요. 얼마나 자주 지지 않나요?
여전히 자주 져요. 근데 예전보다는 자주 비겨요. 저는 비기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언젠가는 아예 지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 져도 괜찮은 마음을 우선 가지고 싶어요.
비긴다는 건 어떤 건가요?
여전히 우울하면 추적추적 울고, 불안하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불안에 불안을 더해서 생각해요. 제 마음의 심해에 익사하듯 허우적거려요.
예전에는 그렇게 하루를 끝냈다면 이제는 그 마음을 좀써요. 내가 빠진 바다의 모습을 묘사하듯이.
그리고 좋아하는 영상들도 봐요. 행복했던 영상들을 너덜거릴 때까지 보고요. 대충 입고 산책하러라도 나가요. 한참 걸어요. 방방거리는 강아지를 마주하고 한참 귀여워하기도 하고요.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에게 연락하기도 하고요. 시시한 농담도 하고, 좀 웃기도 해요.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아지진 않아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아요.
곧 지지 않을 마음을 가지겠어요. 져도 괜찮을 마음도요.
네,
네.
/표
김동영
이번 필사는 책 구매를 할 만큼 쓰는 내내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특히 지현님이 책 소개할 때 말했던,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들을 작가님이 쉬운말들로 잘 풀어주셔서, 읽는 내내 공감이 많이 갔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이야기는 <기쁨의 테두리와 슬픔의 정중앙>이었는데, 보는 내내 "어 그러네, 맞아" 라는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 횡단보도를 비유하며 하는 말에 머리가 띵했다. 나도 비교적 부정적인 마음에 오래머물고 더 확대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있는데, 말 그대로 희든 검든 땅만 밟으면 되는 일인데..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감정에만 사로잡혔던 내가 생각이 났다. "혼자만의 규칙에 갇혀 끝내 슬픈건 그저 나뿐이었고"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면 시야가 좁아지고 끝없이 땅굴을 파고 드는 느낌이 드는데, 혼자만의 규칙에 '갇혔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그리고 다른 회차에선,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소소한 일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켜줬다. 그리고 새삼 이런 감정들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지현님, 수민님 포함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김수민
금요일 필사 마지막부분에서 내 삶은 내가 선택하는거고, 남들의 의견은 도움일 뿐이라는 말에 많이 공감했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우울감을 이기려면 규칙적으로 생활해야한다고 들었는데, 월요일 필사에서 '메일에 답장했고 ~ 그림을 그렸다.' 부분이 그 말을 풀어서 써준게 아닌가 싶었다. 최근 바쁘게 살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수요일 필사에서 '어떤 무기를 들었나요 ~ 귀여운 강아지도요.' 부분을 보며 느낀 게, 평일에 받은 스트레스를 주말 약속을 통해 해소했던 것 같다.
이지현
정답지가 없지만 오답 또한 없다는 말이 와닿았다. 평소에 내가 한 선택이 틀릴까봐, 후회가 남을까봐 전전긍긍할 때가 많은데 이 구절을 보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었다.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요일에 필사한 부분은 우울을 이겨내는 방법의 정석 같다고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상황보다 통제할 수 있는 내 감정,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필사 내용이 비슷한 맥락 이라고 생각했다. 우울하거나 슬플 때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나에게 집어넣어 희석하는 것이다. 이 책 중에 가장 좋았던 내용이었다.
다음 책
세실리아,『재즈 가이드』
플레이리스트로만 재즈를 듣다가 최근 공연을 한번 보러 갔었다. 그곳에서 재즈만의 매력을 느껴서 이론을 알고 들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 골랐다. 시대 흐름에 따른 발전, 생겨난 장르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