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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미세

[스크릭 드림] 입맞춤의 정의

슈네가 스크릭을 따라 그의 서커스단에 합류한지 벌써 석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작스러운 생활에 변화에 적응하는데는 상당한 고생이 필요했다. 거추장스러웠지만 자르는 건 더 귀찮았던 앞머리를 잘랐다거나, 그 자른 모습을 본 의상 담당자가 갑자기 폭주해서는 자신에게 공연 의상을 만들어 입히질 않나, 하물며 그 모습을 본 단원들과 스크릭이 "지금의 널 무대에 세우지 않으면 안돼!"라며 자신을 무대에 세워버리질 않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공연 멤버에 자연스럽게 편성되어 지금은 단원들과 합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거나......이 석달의 변화는 슈네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몰아친 시기였다.
그리고 이 석달 동안 슈네는 스크릭을 곁에 있으며 느꼈던 것은 역시 스크릭의 불꽃은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다. 스크릭도 이 점에 대해서 느끼고는 있는 듯 하지만...뭐랄까, 그럼에도 그 사실을 못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얕보여지고 있는 걸까. 그리 생각하면 조금, 아니 꽤나 열받는다. 철없던 흑역사 시절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은 한때 여러 세계를 추위와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서리 여왕"이다. 그 이명을 알면서도 자신을 얕보는 사람은 스크릭이 처음이다. 차라리 "네가 그 서리여왕이라고? 하하하! 농담도 심하군."이라며 웃어 넘겼으면 이렇게 열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슈네는 뚱한 얼굴로 단원들과 열성적으로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스크릭을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푸른 불꽃 뒤로 얼핏 다른 것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슈네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스크릭의 본질이자 핵심이며, 그의 곤란한 체질의 원인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것을 확신하는 가라고 묻는다면 본질적인 문제라고 슈네는 답할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랜턴빛 하나가 얼마나 밝을까? 그런 본질적인 문제다.
문득 스크릭이 이쪽을 본다. 반가워하던 기색도 잠시, 그의 불꽃이 커졌다. 같이 있던 단원들도 이쪽을 보더니 경악했다. 그 반응을 확인하자마자 슈네는 등 뒤에 커다란 얼음 방패를 펼쳤다. 팅-!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튕겨져 나갔다. 소리를 보아하니 날붙이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 투명한 방패 너머를 바라보니 거기에는 일그러진 얼굴의 서커스 단원이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그리 접점은 없던 단원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윽고 재빠르게 달려온 다른 단원들이 날붙이를 휘두른 단원을 제압했다. 제압당한 단원은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슈네를 노려보고 있었다.
"놔! 놔아!!!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단장님을 탐하는 건데!!!"
"이 자식, 완전히 타버렸어!"
"가만히 있으세요! 반항할수록 단장님을 슬프게 하는 것을 잊었습니까!"
옥신각신하는 단원들을 두고 슈네는 방패를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급히 제 앞으로 스크릭이 달려왔다.
"슈네! 괜찮아?!"
"괜찮아."
무표정하게 대답한 슈네는 뒤를 돌아 제압당해 악을 쓰는 단원을 내려다 보았다. 이전에는 스크릭 자신이 처리한다고 하기도 했고 신속하게 처리한 탓에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관찰할 여유가 좀 있다. 단원들이 타버렸다고 표현한 사람은 문자 그대로 스크릭에 불꽃에 마지막인 육체까지 태우고 싶어하는 상태였다. 이렇게 된 상태라면 슈네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단순 화상이면 차가운 것을 대는 것으로 응급처치가 가능하지만, 이정도로 숯덩이라면 응급처치고 뭐고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갈망하는 사고를 잠시 멈춰주는 것일 뿐인가.
슈네는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린 단원 앞에 앉았다. 다른 단원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슈네는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허리를 숙여 제압당한 단원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입을 맞춘 이마로부터 한기를 퍼뜨리자 반항하던 단원의 움직임이 멎었다. 슈네는 입술을 떼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벙벙해 하는 단원들에게 말했다.
"그대로 데리고 가면 될거야. 잠깐동안 얼려놨으니까."
이유를 따지기 전에 행동한다. 서커스의 단원들은 그런 면에서 훌륭한 사람들이다. 단원들은 타버렸다가 이제는 얼어버린 단원을 스크릭의 방으로 끌고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스크릭이 곁으로 다가왔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기색이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스크릭이 연습실에서 나가자 그제서야 긴장했던 공기가 조금 풀어졌는지 남은 단원들이 제각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거 우봄이었지?"
"최근 잘 안보인다 싶었더니 상태가 안좋았던걸 숨기고 있었구나......"
"우리 중에서 타버린 녀석 나온거 몇년 만이더라?"
"꽤 되지 않았던가? 마지막이 네베스였어."
"단장님 괜찮으실까......?"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은 스크릭이 걱정된다는 반응이었다. 그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단원들의 마음이 슈네에게 따뜻하다못해 조금 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랑받고 있구나, 스크릭.'
그런 생각을 멍하게 할때즈음, 제 곁으로 몇몇 단원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기, 슈네. 아까 우봄을 어떻게 한거야?
말을 꺼낸 단원 탓에 어느새 슈네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슈네는 저도 모르게 목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 반응을 본 단원이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탓하려는거 아니야! 그냥 저정도까지 가면 저항이 심해서 그 모습을 보는 단장님도 힘들어하시거든. 그래서 어떻게 얌전하게 만들었나 궁금했을 뿐이야"
"아......"
순수하게 궁금했던거구나. 슈네는 긴장을 풀고 입을 열었다.
"단순히 스크릭을 향한 사고나 욕망을 잠깐 얼려버린거야."
"사고나 욕망을 얼려? 그럼 혹시......"
치료도 가능한가. 그리 묻고 싶은 무언의 질문에 슈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 능력밖이야. 그리고 우봄이란 친구는 이미 심하게 타버렸잖아. 약한 화상이라면 모를까 전신화상 환자에게 찬물 끼얹는다고 낫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잠깐, 그럼 경증이라면 슈네가 어떻게든 해줄수 있는거야?"
"아마도? 정확한건 해봐야 알겠지만."
불확실한 대답임에도 단원들에 눈에는 놀라움과 희망이 엿보였다. 제아무리 단원들이 내성이 높다 해도 어디까지나 내성이었다. 스크릭의 불꽃에 매료되지 않을 확률이 낮다인거지 매료가 안될거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경증에서 멈출수 있다면, 스크릭이 가장 상처받는 상황인 소중한 단원을 홀려 먹는다를 방지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모두에게 퍼질때즘 누군가가 손을 들고 슈네에게 다가왔다.
"저기, 그럼 슈네, 내 상태 좀 봐줄 수 있어......?"
길게 튀어나온 송곳니가 인상적인 단원이었다. 이름이 라니였었나. 슈네는 그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의 뺨에 손을 올렸다. 아주 약한 한기를 퍼뜨리자 바로 그 한기가 꺼져버리는 부분이 있었다.
"어때......?"
"아, 너 화상입었네. 잠깐만 좀 숙여볼래?"
"으, 응."
슈네는 라니가 허리를 숙이자,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조심스럽게 한기가 꺼진 부분에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한 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얼지 않고 화상이 딱 가라 앉을 정도로만 세심하게 온도를 조절해 준 후 입술을 떼자, 라니는 제 이마를 매만지더니 감탄했다.
"대단해! 조금 춥긴한데 머리가 엄청 맑아졌어!"
"진짜? 슈네 진짜 대단한걸!"
"슈네, 혹시 모르니까 나도 봐줘!"
"나도, 나도!"
"어, 응? 아, 알겠으니까! 줄! 줄부터 서봐! 이렇게 몰려오면 해줄수 없으니까!"
슈네의 간이 진료소가 임시 개업한 순간이었다.
"친애하는 눈의 요정님, 부디 이 스크릭에게도 당신의 '입맞춤'이라는 은혜를 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건 또 뭐람.
슈네는 이어폰 한쪽을 뺀 채 어이가 없다듯이 무릎을 꿇고 꽃을 내밀고 있는 스크릭을 바라보았다.
며칠전 임시 개업했던 슈네의 간이 진료는 단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실제로도 몇몇은 스크릭으로 인한 화상을 조금 심하게 입고 있어서 슈네가 조치해주지 않았다면 머지 않아 스크릭이 또 마음 아파했을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진료와 처치를 받은 단원들은 그 점에서 슈네에게 깊이 감사를 표현했다. 슈네 역시 하다보니 접점이 별로 없었던 단원들과도 이번기회로 좀 더 알아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단원들이 스크릭을 향해 보내는 따뜻함이 전해져 왔기에 조금 피곤했지만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훈훈하게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였는데 딱 한사람,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던 스크릭만이 진료 사실을 알고 불만을 가졌다. 몇번이고 스크릭에게는 해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음에도 그는 끈덕지게 자신도 진료를 봐달라며 며칠째 이러고 있는 것이다.
슈네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는 끼고 있던 나머지 이어폰 한쪽을 뺀 뒤, 들고 있던 게임기를 옆에 내려놓았다.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응급처치는 비교적 간단했지만, 스크릭의 체질을 억누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조금이라도 조절에 실수하면 스크릭의 불꽃이 꺼질 위험이 있다. 슈네는 그런 위험한 도박같은 처치를 해주고 싶지 않았다.
"스크릭, 몇 번이고 말했잖아. 너한테는 해주지 않아도 되고 자칫하면 위험하다니까?"
한편, 스크릭은 스크릭대로 억울했다. 타버린 우봄의 뒷처리 후 감정을 추스린 스크릭이 다시금 연습실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는 어째서인지 단원들은 한층 밝은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었다. 당시에는 막 우울에서 벗어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밝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다만, 진상은 그게 아니었다. 자기를 뺀 서커스의 모두가 슈네에게 입맞춤을 받았다고 한다. 스크릭은 평생을 살면서 질투라는 감정에 몸을 태워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체질때문에 평범함을 부러워는 해봤지만 그것이 질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슈네가 서커스단의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었다. 반대로 슈네가 서커스단의 식구들을 자신의 사람처럼 받아들여준 것 역시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이 빠져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슈네를 발견하고,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자신만 입맞춤을 못받은데다가 해주지 않겠다고 거절당하니 스크릭으로서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슈네, 이기적인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진지해. 너의 입맞춤을 원해."
들고 있던 꽃을 슈네의 귓가에 꽂아준 뒤 스크릭은 슈네의 옆에 앉았다. 그는 손을 뻗어 슈네의 뺨을 만지려다가 이윽고 직전에 손을 거뒀다. 알고 있다. 슈네가 아무리 저와 동포라고는 하지만 제어되지 않는 자신의 체질은 위험했다. 그럼에도 이건 멈출수가 없는 욕심이고 갈망이었다. 동포니까, 내성이 높으니까, 좋아하니까, 아주 잠깐, 잠깐의 입맞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한다. 그 정도는 허락해줬으면 좋겠다는 이 이기적인 마음을 도저히 접을 수가 없다.
"정말로 원해?"
".......그래. 원해, 슈네."
"알았어, 네가 정 그렇게 말한다면야......잘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해보자."
"정말?"
스크릭의 불꽃이 눈에 띄게 커졌다. 슈네는 내려놓았던 자신의 게임기와 이어폰을 챙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방으로 가있어. 게임기도 갖다 놔야하고 여기서 하는 건 역시 좀 그러니까."
"좋았어! ...크흠, 네, 이 스크릭, 당신의 방문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가능하면 벗기기 쉬운 옷을 입고 있어줄래? 혹시 모르니까."
"예, 눈의 요정님의 말씀대......응?"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기 전에 슈네는 이미 자리를 떠났다. 슈네의 뒷모습을 보며 스크릭은 고개를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채 있다가 이윽고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단장님, 여기 계셨...으앗?!"
"엑, 단장님 불꽃 핑크가 될 수도 있었슴까?! 그보다 무슨일이심까?!"
핑크빛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지나가던 단원들이 경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제 방으로 돌아온 스크릭은 슈네의 말대로 준비를 끝마친 채 방 안을 서성였다. 벗기기 쉬운 옷이라고 했으니 가지고 있는 나이트 가운 중 제일 좋은 것으로 갈아 입었다. 매듭도 평소보다는 약간 헐렁하게 매었다. 속옷은...평소에도 안입고 자기는 했지만 역시 안입는게 나을 것 같았다. 6호도 내보냈고, 분위기를 띄우기 좋은 와인도 준비했다. 침대에 장미 꽃잎이라도 깔아둘까 했는데 슈네가 질색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두었다.
똑똑-
"스크릭, 들어가도 돼?"
기다리던 손님의 방문이었다. 스크릭은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얇은 회색 가디건을 걸치고 흰 원피스를 입은 슈네가 서있었다. 그 모습이 앞으로 벌어질 일이 자신이 생각하던 그일이 맞다는 확신을 주어 조금 답지 않게 긴장되었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잠그고, 탁자 위의 와인잔을 들어 내밀며 물었다.
"한잔 할래?"
"됐어. 중요한 일인데, 알코올이 들어가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 아, 스크릭은 마셔도 돼."
"그건...고맙군."
안그래도 긴장으로 목이 바싹 마른 참이었다. 스크릭은 천천히 와인을 따른 후 입에 머금었다. 평소라면 이 와인이 얼마나 좋은 와인인지 음미하며 마셨을 텐데 지금은 긴장으로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스크릭이 와인을 마시는 사이, 슈네는 걸치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적당히 소파위에 걸처놓았다. 그러고는 침대에 앉아 스크릭을 바라보고는 얼른 오라는 듯, 제 옆을 침대 매트리스를 두들겼다. 저와 다르게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태도에, 스크릭은 어쩐지 기운이 좀 빠졌다. 슈네는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걸까? 그리 생각하며 다 마신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슈네의 곁으로 갔다.
"슈네....."
곁에 앉은 스크릭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에 손을 올렸다. 화상을 입으면 어쩔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이라도 슈네에게 더 닿고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슈네는 제 뺨에 닿은 스크릭의 손에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스크릭의 품에 파고 들었다. 그러고는 그를 조심스럽게 침대로 밀어 눕히고는 잽싸게 그의 위에 올라탔다.
"네가 이렇게 적극적일줄은 몰랐는걸?"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연계에 스크릭은 농담을 던져보았다. 그 말에 슈네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먼저 요구한거잖아."
"그건, 그렇다만...이렇게까지 적극적일줄은 몰랐어서 말이야. 새로운 면을 발견했군, 하하!"
"그래, 그래. 긴장 풀렸다니 다행이네. 팔 고정해 놓는다?"
"이런, 팔을 고정해 놓아야 할정도로 거친가? 이건...조금 긴장 되는군."
슈네가 자신에게 이토록 적극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 사실이 조금 감동적이기까지 해서 스크릭은 얌전히 슈네에게 팔을 맡겼다. 곧 차가운 얼음이 그의 팔목을 감쌌다. 가운을 여몄던 허리띠가 가볍게 풀리고 앞섬이 풀어헤쳐지자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맨몸이 슈네에게 보여졌다. 자신의 맨몸을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이 익숙치 않아 저도 몸을 비틀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차가운 손이 그의 가슴에 얹혀졌다. 흥분으로 슈네를 바라보고 있자, 이윽고 슈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곧 온몸에 냉기가 퍼지며 통증이 일었다.
"윽...!"
"조금 시려도 참아. 네 코어를 찾아야 하니까."
이런 것을 시리다고 하는 것인가. 불꽃인 스크릭에게 전혀 익숙치 않은 감각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지만 팔은 고정되어있고 허리에는 슈네가 올라탄 탓에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그보다 내 코어는 왜 찾는 거지?'
스크릭은 그제서야 무언가가 어긋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다급하게 슈네를 불렀다.
"슈네! 슈네, 잠깐만! 흐읏...!"
"조금만 더 하면 되니까 참아봐."
"그게 아니라! 이게...읏! 아니라고...! 내가 원한건, 이게 아니라고!"
"...아니라니, 뭐가?"
스크릭의 다급한 외침에 그제야 슈네도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는 지 냉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눈을 뜨고 스크릭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겪어보는 차가운 저림에 스크릭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원했던건 네 입맞춤이었어."
".....? 그래서 해주려고 하는 거잖.....아."
슈네는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를 바라보자 스크릭은 부끄러운듯 시선을 피하며 조그맣게 말했다.
"너랑, 입을 맞추고 싶었어."
스크릭이 원했던 것은 체질 개선이 아니었다. 이 불꽃, 순수하게 자신에게 애정 담긴 입맞춤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뒤늦게 그걸 깨닫자 슈네는 맥없이 스크릭의 위에 엎어졌다.
"슈네?!"
"너 말이야......나한테 입맞춤을 요구한다는게 무슨 뜻인지 몰라?"
슈네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스크릭을 노려보았다. 스크릭은 전혀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식, 사실 바보 아니야? 슈네는 그리 생각하며 다시 몸을 일으켜 스크릭의 양볼을 양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서리여왕의 입맞춤은 받은 자의 몸은 물론이고 마음과 생각, 감정과 이성, 그 모든 것들을 서리여왕에게 빼앗겨. 단원들에게는 너때문에 입은 화상 치료로 응용해서 썼지만 본질은 상대의 모든 것을 얼려서 빼앗는 거라고. 알겠어?"
"......아."
그제서야 스크릭의 머리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단원들에게만 입맞춤을 해주었던 것, 입맞춤을 받았던 단원들의 컨디션이 크게 좋아진 것, 자신에게는 해주지 않아도 되고 자칫하면 위험하다는 말. 즉, 슈네는 자신의 요구를 자신의 체질을 어떻게 해달라는 말로 들었던 것이다.
뒤늦은 스크릭의 깨달음을 슈네도 눈치 챈것인지 한숨을 쉬고 얼음으로 감싼 스크릭의 팔을 풀어주었다. 팔이 풀리자마자 스크릭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마른 세수를 했다. 서로 성대하게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은 설레발까지 쳤으니 더더욱 할말이 없다.
"너, 핑크로도 빛날 수 있구나."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들어가고 싶으니까 말하지 말아줘."
"풉, 뭐야 그게. 그 밝기로는 숨어도 다 보일걸"
여전히 핑크빛을 활활타는 스크릭을 보며, 슈네는 다시한번 스크릭의 위로 몸을 숙였다. 이 바보 불꽃은 어리석고 가엾기만 한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또 귀여웠다.
"스크릭, 손 내리고 나 좀 봐봐."
"......."
"나 너랑 뽀뽀하고 싶어졌는데, 안해줘도 돼?"
커다란 불꽃이 크게 일렁였다. 몸은 솔직한 녀석이라서 참 다행이었다. 스크릭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려 저를 마주 바라보았다. 슈네는 그대로 스크릭의 양볼을 붙잡고 입을 맞춰주었다. 가볍지만 조금 긴 입맞춤이었다. 슈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한테만 해주는 거다?"
이런 황홀한 입맞춤이 자신에게 해주는 것이라면 자신의 그 모든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스크릭은 그리 생각하며 슈네를 꼭 껴안았다. 품안의 온기는 차가웠고,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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