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DIA COMMUNICATIONS

Contra Scapes

SENSORIAL INTERPRETATIONS  : Literal Image Presentation  

## **After Image: 재현 이후의 시각성에 대하여**

### **1. 서론 — 재현 이후의 시선**

'After Image'는 눈이 감긴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잔상처럼, **이미 사라진 사건의 시각적 여운**을 다룬다. 이 프로젝트는 재현(representation)의 실패를 넘어, 그 실패 이후의 감각적·윤리적 지형을 탐색하는 시도이다. 오늘날 가자(Gaza), 혹은 모든 폭력의 장소들은 더 이상 이미지로 재현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너무도 실재적인 현실—즉, **표상 불가능성(absence of representation)**—이 도래한 것이다.

'After Image'는 이 부재의 시각, **보이지 않음의 존재론**, **부조리의 감각적 층위**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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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념적 토대 — 부조리와 재현 불가능성의 윤리**

부조리(absurd)는 단지 고통의 유머가 아니라, **의미 체계의 붕괴 이후에도 세계가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의 체험**이다. 이 부조리적 세계에서는 어떤 언어도, 어떤 상징도, 실재의 폭력에 대한 적절한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After Image'는 이 단절의 순간—**물질적 현실이 상징적 질서를 압도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발터 벤야민의 "파국의 천사"가 바라보는 잔해의 풍경과도,장 아메리(Jean Améry)가 말한 "고통의 불가소통성"과도, 또한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을 본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 역설과도 상통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에서의 재현은 결코 완결된 이미지의 복원이 아니라, **재현 불가능성의 윤리적 표면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 결과, 'After Image'의 시각성은 **결핍으로서의 시각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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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결론 — 잔상의 정치학**

'After Image'는 재현을 폐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현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감각적 윤리를 모색한다.**보이지 않음, 무의미, 오류, 결핍—이 네 가지는 더 이상 부정적 범주가 아니다. 그것들은 **현대의 진실을 감지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부조리의 시대에, 예술은 더 이상 위로도, 교훈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 대신, 기억나지 않는 **기억의 잔상으로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세계를 바라보는 법**을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는 바로 그 불가능한 시선의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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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작품은 원래의 재현 대상을 **what3words**로 변환한 세 개의 단어로 재명명된다. 예컨대 한 공공조형물은 "mute.stone.axis"와 같은 명명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위치정보가 언어로 치환된 비가시적 지도**이자, 현실의 잔여가 디지털적 부호로 변환되는 순간을 상징한다. 이미지는 80×80cm 크기의 캔버스 위에서 검은 배경에 희미한 흰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명확하지 않은 그 윤곽은  마치 기억 속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경계처럼, 관객의 시각은 여기서 인식과 망각 사이에 위치한다.

각 작품은 다음의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이 구조는

**시각적, 언어적, 개념적** 재현의 세 가지 위상을 상호 보완적으로 다루기 위함이다.

**1 black diamond **

**2 post scripts **

(1) **img src – **

각 작품은 원래의 재현 대상을 **what3words**로 변환한 세 개의 단어로 재명명된다. 예컨대 한 공공조형물은 "mute.stone.axis"와 같은 명명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위치정보가 언어로 치환된 비가시적 지도**이자, 현실의 잔여가 디지털적 부호로 변환되는 순간을 상징한다. 이미지는 80×80cm 크기의 캔버스 위에서 검은 배경에 희미한 흰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2) **alt text – **

(3) **DIV Style **

'alt text'는 시각을 대신하는 언어이다.

시각적 접근이 불가능한 자들에게 제공되는 '대체 텍스트'라는 기술적 기능을,

여기서는

**윤리적 재현의 언어적 실험**으로 전환한다.

텍스트는 작품의 감각적 특질, 주변 환경, 시간성, 기후 등을 묘사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곧

**'언어적 잔상'으로서의 에크프라시스**이며,

이미지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

각 작품은 원래의 재현 대상을 **what3words**로 변환한 세 개의 단어로 재명명된다. 예컨대 한 공공조형물은 "mute.stone.axis"와 같은 명명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위치정보가 언어로 치환된 비가시적 지도**이자, 현실의 잔여가 디지털적 부호로 변환되는 순간을 상징한다. 이미지는 80×80cm 크기의 캔버스 위에서 검은 배경에 희미한 흰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3 batch voucher **

각 작품은 'meta label'이라 불리는 인덱스 카드 형식의 부속물을 가진다.

이 레이블은 데이터적이면서 동시에 개념적이다.

제목(what3words), 재현대상의 유형(공공미술, 시각작품, 건축물 등),

좌표, 생성 연도, 작가 메모 등이 포함된다.

이것은 예술이 데이터로 환원되는 시대의 '아카이브적 환영'을 풍자하며,

**기억이 표준화된 정보 형식으로 변환되는 순간의 냉정한 미학**을 형상화한다.

### ** 재현 대상의 세 가지 카테고리**

**Null Point** — 공공미술 작품의 재현

: 공공성의 이름으로 존재했으나, 이제는 그 장소에서 제거되거나 무의미해진 잔존물들.

Null Point — 공공미술의 기표

공공미술은 근대 국가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설치한 기억의 기계였다. 광장, 동상, 벽화, 조형물—이 모든 형식은 '공공의 의미'를 표상한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이 믿음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동상은 철거되고, 기념비는 무관심 속에 방치된다.

'공공'이라는 기표는 그 자체로 비어 있는 표면이 되었다.

《Null Point》는 바로 그 비어 있는 표면을 재현한다.

작품의 제목은 실제 위치의 what3words 좌표로 대체되고,

형상은 검은 배경 속에 희미한 흰 실루엣으로 남는다.

기표는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그것이 지시하던 기의는 사라졌다.

공공미술의 장엄함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오직 '좌표로서의 잔존'이다.

이는 단순한 반(反)기념이 아니다.

그것은 '기표의 음향학', 즉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잔향을 포착하는 시도다.

공공의 언어가 침묵한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의 공공성이 생성된다.

'Null Point'는 결국 '제로 포인트'가 아니라,

감각적 기표가 다시 태어나는 시작점이다.

Null Point — 공공미술의 기표

공공미술은 근대 국가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설치한 기억의 기계였다. 광장, 동상, 벽화, 조형물—이 모든 형식은 '공공의 의미'를 표상한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이 믿음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동상은 철거되고, 기념비는 무관심 속에 방치된다. '공공'이라는 기표는 그 자체로 비어 있는 표면이 되었다.

《Null Point》는 바로 그 비어 있는 표면을 재현한다. 작품의 제목은 실제 위치의 what3words 좌표로 대체되고, 형상은 검은 배경 속에 희미한 흰 실루엣으로 남는다. 기표는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그것이 지시하던 기의는 사라졌다. 공공미술의 장엄함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오직 '좌표로서의 잔존'이다.

이는 단순한 반(反)기념이 아니다. 그것은 '기표의 음향학', 즉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잔향을 포착하는 시도다. 공공의 언어가 침묵한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의 공공성이 생성된다. 'Null Point'는 결국 '제로 포인트'가 아니라, 감각적 기표가 다시 태어나는 시작점이다.

**Clear Vision** — 시각미술 작품의 재현

: 너무도 명확하여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된' 이미지들. (과잉의 시각

근대 미술은 '투명한 시각'을 신봉했다. 보이는 것은 참되며, 명료한 것은 진실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각은 너무 명료하기 때문에 불투명하다.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이 보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보는 것'은 더 이상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Clear Vision》은 그 과잉된 시각성을 자기붕괴의 지점으로 밀어붙인다.

흐릿한 초상, 형체 없는 윤곽, 과도한 빛의 번짐— 이 모든 시각적 전략은 '기의(meaning)'가 녹아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때 시각은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하지 않고, 감각적 잔향으로만 존재한다. 그 잔향은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작품의 alt text는 이미지 대신 소리로 낭독되며,

관객은 '보는 대신 듣는' 체험을 한다.

이는 재현의 역전이다.

이미지는 청각적 기호로 전환되고,

'시각'의 기의는 감각의 다층적 변주 속에 흩어진다.

'Clear Vision'은 결국 시각적 명료함을 통해

시각 그 자체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아이러니의 실험이다.

그곳에서 예술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무너진 자리에 머무르는 행위가 된다.

1. **Contra Scape** — 일상 경관 혹은 건축물
1. : 도시의 시각적 환경이 정치적 무의식과 만나는 지점, 즉 **시각성의 사회적 조절(social modulation)**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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