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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설이라 가족들을 만나 상에 둘러앉았다. 뭐 재밌는 일 없었어? 라는 물음이 나왔다. 아, 또 나왔다 내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그 질문. 그럴 때마다 나는 말문이 막힌다. 기승전결이 따르는 그런 재밌는 스토리를 말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확 든다. 가까스로 이벤트풀한 일을 하나 생각해내서 돌고래와 수영을 했다고 했다. 돌고래를 예약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건만 그걸 엮어내어 이야기하는 일은 나에게는 불가능에 가깝기에 팩트만 한 줄 이야기했다. 이 '스토리'에 대한 압박은 아마도 교환학생 시절, what's your story? 라는 말에 능숙하게 기승전에 이은 폭발적 결말까지 풀어내는 미국인들을 보며 시작된 것 같다. 이야기를 점점 더 임팩트 있게 만들기 위해 과장을 섞는 나를 보며 현타가 오기도 했기에 이제는 힘들이지 않고 말수를 줄이는 쪽을 택한 것 같다.
사람들이 모두 스토리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가장 잘 하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경연만을 보기보다 택배노동자가 유명가수로 변신하는 과정을 함께 볼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화제가 된다. 책에서 예시로 든 리벤지바디라는 프로그램에서 외모 변신한 후 바람핀 전약혼자에게 사과를 받는 서사 또한 통쾌하다. 누구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야기들은 갈등과 변화가 필수로 첨가된 이야기이다. 이야기로 들을 때 정보는 뇌에 급격히 침투해서 마치 스스로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도파민과 각종 신경물질이 뿜어져나다. 역으로 말하자면 스토리가 없는 다수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한다. 아프리카 내전국에서 굶어 죽는 수십만명의 아이들보다 굴에 빠진 9명의 태국 아이들이 더 큰 주목을 받는 이유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변화나 갈등 없이 서서히 일어나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 기후변화는 부르주아 엘리트들이 부르짖는 배부른 거짓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세상은 이야기와 이야기의 싸움이다. 어느 누가 이야기를 더 잘 풀어놓아서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드는가가 세상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전쟁 후 처음으로 개방된 유대인수용소에 갔던 많은 이들이 토하고 기절했다. 본인이 믿었던 이야기가 엄청난 진실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본인이 끔찍한 일에 동조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믿고 따를 수 있을까, 나아가 내 생각을, 나아가 존재를 사람들에게 남기기 위해서 이야기를 어떻게 활용해야할까.
Q1.
[우리는 타인의 의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믿는 것,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흘렸다. (131page)]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느끼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내재화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했을 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던 내 상황이 갑자기 너무 힘들었던 것처럼 북받쳐오는 경우가 있다. 별 생각 없던 어떤 부분도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면 갑자기 우쭐해지고 그것이 나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사실상 사회에서 우리에게 느끼는 바를 투영한 것이다. 어떤 사회에 처해있냐에 따라 우리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가 바뀌게 된다. 나는 이 사회에 살면서는 칭찬받는 요소 - 예를 들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점'-때문에 나는 전쟁이 난다면 비난 받거나 가장 먼저 죽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까지 나지 않아도 좀 더 안정지향적인 사람들과 있다면 내 성향은 비난받을 것이다. 미운오리새끼 동화처럼 말이다. 현재 주변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동의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Q2.
지난 미국 대선 기간, 이민 문제가 극대화되었을 때 트럼프 진영은 오하이오 스프링필드에 사는 아이티 이주민들이 고양이와 이웃집 강아지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믿고) 확산시켰다. 카밀라 해리슨 진영의 이민 정책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일파만파 퍼져나가 이민자 혐오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팩트체크를 하지 않고 퍼뜨려지는 이야기를 보면 어이가 없고 화가 나면서도 이런 이야기의 힘에 무력감을 느낀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더 잘 활용한다. 조인성 정우성 주연의 더 킹 영화를 봐도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대중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로 움직여졌던 경험이 있는지, 혹은 이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던 적이 있는 지?
Q3.
이와 같은 소수자들이 공격적으로 지원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백인 노동 계층에서는 마치 언제나 자기 뒤에 서 있던 사람들 - 흑인, 이민자, 여성 - 이 갑자기 자신들, 즉 충성스럽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미국인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읻나. 혹은 더 나쁘게 표현하자면 그 사람들이 국가와 기관의 평등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침투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공공 기관이 일정한 다양성 할당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외층 지원자를 선호하는 경우처러 말이다. - 359pg
미국에서 인종쿼터제가 위헌 판결이 나면서 작년부터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에서 대학 입시에 아시안 쿼터가 없어졌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