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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사색

저자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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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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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 헤르만 라우셔가 아직 살아 있었을 때 그는 베른의 옛 거리를 배회하곤 했어요. 바람이 거세게 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11월의 어느 날이었죠. 고독한 시인은 친숙해진 궂은 날씨를 맘껏 누리며 정처 없이 객지를 돌아다녔어요. 견고한 성처럼 거대한 저택들, 불쑥 튀어나온 주막 입구, 음울한 상가가 늘어선 어둑어둑한 옛 거리가 병든 시인의 기분에 비통함을 얹어주었죠. 여기에 거친 하루가 더해져 어느 때보다 영혼이 예민해진 고향 잃은 가련한 시인은 덧없이 부서지고 실패한 인생을 떠올리며 괴로워했어요. 그가 나중에 내게 말하기를, 어둡고 좁은 상가를 우울한 기분으로 바라볼 때 수백 가지 상상이 떠올랐대요.
신기해 나도 낡은 상가들을 보면 꼭 이상한 기분이 들고 온갖 상상들이 떠올랐다. 특히 오래되고 기울고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고 깨진 2층 짜리 상가의 2층을 보면 그랬다. 칠이 벗겨지고 먼지가 쌓인 창문이 있는 상가의 2층. 이런 개인적이고 내밀한 느낌은 설명도 어려워서 그 상가의 모습처럼 마음 한편에 그냥 세워 두는데 작가들은 언제나 쉬운 말로 풀어내고 그런 글들을 마주치면 기분이 너무 조크든요~~ 이런 이유로 책을 읽는다..
쾌락과 기억은 상생 관계에 있다. 쾌락이란, 과일의 달콤한 과즙을 남김없이 짜서 마시는 것이다. 기억이란, 그렇게 누린 쾌락을 멀리 아득하게 보내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되새기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찰나의 섬광이 어둠의 세월을 지우고 정당화할 수 있게 가끔 번개라도 쳐야 겨우 견딜 수 있는 어둡고 슬픈 밤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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