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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Life

디자인, 일,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블로그입니다. 2024년 3월에 시작했네요. :)
Liam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다, 초역 부처의 말
무협지에서 자주 나오는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다. 정사마를 통틀어 무의 길을 걷다보면 결국 한곳으로 흐른다, 무엇이든지 극에 이르면 같은 곳으로 향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삶에도 만류귀종이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특히나 삶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한 철학은 전부 한곳으로 흐른다. 스토아 철학, 불교, 니체, 쇼펜하우어 아직 그 폭이 넓지 않지만,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결국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대를 도출하기위한 논리만 다르다는 생각만 든다. 만류귀종은 사실 불교에서 모든 불교는 결국 열반으로 향한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이를 죽음-삶으로 이어지는 내세관으로 보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뜻으로 생각한다. 결국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의 끊임없는 악순환을 끊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고 그렇게 본인이 쌓아온 지옥도를 끊기 위한 노력을 통해 열반에 들 수 있다고 믿는다. 설화속에서 마왕은 태산과도 같이 거대했지만, 부처가 나타나자 겨자씨만큼 작아지기도 한다. 결국 마음속의 지옥도라는 것은 그런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그 지옥도는 태산만큼 커지기도 하고, 이겨내고자 노력하면 겨자만큼 작아지기도 한다. 사실 지금 내 삶은 다른 사람이 봤을때 큰 위기일거다. 회사를 잘못 선택했고, 나쁜 리더쉽을 만났고, 결국 회사에서 쫒겨난 이 상황이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태산으로 볼것인지 겨자씨만한 것으로 볼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앞선 글에서 썼듯 나는 한 10년이 지나서 이 일을 떠올릴때, 아마도 침대에 누워서 배나 북북 긁고 있을거다. 그러면서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생각하고 말거다.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그런 수동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제법무아,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온갖 심리현상도 물리현상도 그 모든 것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잃은게 없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즐거움을 누리되, 그것을 놓아줄 준비를 해야한다 라고.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언제든 놓아줘야하고 이건 이미 지나간일이다. 과거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미래에 대한 걱정에 마음을 빼앗길 필요가 없다. 지금 현재의 나는 목숨을 빚지지 않았고, 회사에 빚지지 않았다. 그냥 현재에 집중하면 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예전이였다면,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잠을 못이루고, 과거에 있었던일에 이불을 차버렸을거같다. 이대로 취직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더 오래 회사에 있었을까? 이렇게 마음을 빼앗겨버리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그냥 현재에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이러면 미래에 대한 걱정은 미래를 준비하는 행동으로 바뀌고, 과거에 있었던 일에 분개함은 나 자신의 성장에 대한 집중으로 바뀐다. 초역 부처의 말은 지혜에 초점을 둔다. 과거와 미래에, 내가 확인하지 않은 소문에, 누군가 나를 헤코지 함에, 지나친 소유욕에, 자신의 성장과 자만에 마음을 빼앗기는게 아니라,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이야기한다. '시작의 기술'이 현재에 집중하는데 더 많은 집중을 했다면, 그 현재라는게 무엇인지 소개해주는 말들을 모아둔 책이라 생각한다. 혹시나, 현재를 살고있지 않다면 시작의 기술보다 이책을 추천하고 싶다.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들지 않는만큼 마음을 닦을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돌려준다.
Liam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해독제, 시작의 기술
중요한것은 행동이다. 생각이나 말이 아니다. 언제나 나를 붙잡는것은 생각이였다. 완벽한 계획에 몰두한채 실재의 행동들은 미뤄오고, 때를 놓쳐서 후회했다. 삶이 정체되어있는 지금 이 책을 몇번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책을 읽은지는 몇년이 지났지만, 다시 이책을 펼쳐보았을때 책이 나의 삶을 하나도 바꾸지 못했음에 놀랐고 내가 닮으려고 한 스토아 철학과 닮았음에 또 한번 놀랐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스토아 철학을 많이 인용한다 철학은 당신이 삶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본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가득이지만, 삶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을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는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거같다. 스토아 철학은 이성이 나의 근본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살라 조언한다. 하지만, 내가 스토아 철학을 닮기를 원했지만 스토아 철학이 내 삶의 철학이 되지 못하고 참고 대상정도로 남은것이 바로 이지점이다. 나는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드라마 태드 라소처럼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살고싶다. 그런점에서 시작의 기술은 좀 더 나에게 와닿는 시작점을 제공해준다. 바로 '행동'이다. 중요한것은 행동이나 말이 아닌 바로 행동이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와서 사람의 일을 해야한다. 이성이 사람의 본성이여서가 아니라, 행동이 없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라 이야기한다. 한편, 행동을 만드는것은 말이나 생각이다. 그래서 시작의 기술에서는 단언하라 조언한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몰아 붙힐 수 있도록, 행동할 수 있도록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시작의 기술에서 나온 모든 단언을 기억하지는 못한다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작머리에 '나는 부단하다'라는 단언을 했다. 그래서 귀찮아도 집을 치우고, 밀린 설겆이를 하고 운동을 간다. 왜냐하면 나는 부단하게 노력하고 삶을 바꾸려 노력하는 사람이라 믿으니까. 노력이 항상 결과는 아니다. 결과는 나와 무관하게 벌어진다. 에픽테투스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를들어서 테니스 경기에 나간다고 해보자. 그러면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내가 통제 할 수 없지만, 테니스 경기에 나서기까지 훈련하고 노력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오력을 하라는 말은 나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않지만, 불확실성을 안으라는 저자의 말은 나에게 와닿았다. 언제나 불확실성은 회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내가 한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거나 올리는것을 피해왔다. 하지만, 그런 안전지대에서는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성장할 수 있는 실패를 빼앗아 온것이다. 그렇게 쌓아올린 안전지대는 언제나 포근했고 지금도 침대에 누워서 책이나 보고싶은 심정이다. 뇌는 항상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그래서 그런 안전지대를 빼앗고 계속 도전해야만한다. 노력의 끝에 내가 생각한 보상이 오지 않는다고 좌절할 이유도 없다. 이 좌절감을 기대감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맞다. 만약 내가 테니스 경기에 우승하길 바란다면 내가 실패한다면 무기력감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무기력감은 좌절된 희망이다. 그러면 불확실성은 안으면서 계속 부단히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현재를 살아야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혹은 과거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현재에 겪는 어려움에 대한 부채감도 없어야한다. 니체가 말했듯 나는 이 어려움(질병)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에 겪는 일에 집중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보자. 그 결과는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고 이렇게 된 이유를 찾아야 무엇하겠는가? 옛 이야기에 독화살을 맞은 사내가 처치를 빨리 받으면 살수있음에도 누가 활을 쏘았는지, 이 독의 종류는 무엇인지, 의사는 이 독을 알고있는지를 고집스레 따지다가 죽었다고 한다. 활을 맞고 해야하는 행동을 해야한다.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과거와 미래에 사는 것은 나를 서서히 죽이는 독화살이다. 그렇게 현재를 살고나면, 현재는 과거가 된다. 그래서 지금의 어려움도 과거가 된다. 전부 지나갈 일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특히 남자들은 잘생각해보자. 군대에 박혀있었을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하지만 2년은 금세 지나갔고, 어쩌다가 나의 글을 보고있지않은가? 그래서 그 군대에 있었던일이 그렇게 독이였는가? 이미 독화살은 뽑혀 처지 됬고, 당신은 또다른 화살을 맞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 화살을 뽑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사건은 나와 무관하게 벌어지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불이익을 준다면, 그사람에게 화를 내는데 시간을 쏟을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해야하는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 누군가 상처를 주려 노력한다면, 상처받기는 내 선택이다. 사건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 물론 이 이야기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것도 안다. 그 상처에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릴수도 있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면 발을 절뚝이면서 걸어다녀야하는 장애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말아야한다는 뜻은 아니라 믿는다. 지금부터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행동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