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함께 걸어가는 자유의 순간
오늘 이른 아침,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평소보다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납덩어리를 안고 걷는 듯, 발걸음 하나하나가 버거웠다. 그 무거움은 단순히 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함께 올라오는 듯했다. ‘나는 지금 힘들다. 지쳐 있다.’라는 속삭임이 가슴에서 울렸다. 순간 나는 내 안의 가슴에게 말했다. “그래, 힘들구나. 잠깐만 걷고 들어가자.”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나 자신을 다독였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을 건네자, 몸은 조금씩 움직일 여유를 내어주었다. 잠깐만 걷겠다고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을 수 있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한 발 내디디자 또 다른 한 발이 따라나왔고, 그렇게 걷는 사이 몸과 마음은 조금씩 풀려갔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던 날, 하교 시간에 비가 쏟아졌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학교 앞까지 데리러 나왔는데, 나는 홀로 남아 우산도 없이 서 있었다. ‘엄마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비를 맞고 집에 가야 하나? 그러다 아프면 어떡하지?’ 어린 나는 불안과 외로움에 사로잡혔었다. 그 기억이 스치자,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가슴에게 말을 건넸다. “비 좀 맞아도 괜찮아. 안 죽어. 그냥 한번 비 맞고 걸어보자.”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허락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을 피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초대였다 . 나는 비를 피하지 않고 걸었다. 그 길 위에는 가로수 그늘 아래나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을 스쳐 지나며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걷는 내 모습에서, 이상하게도 묘한 자유가 느껴졌다. 마치 세상의 규칙이나 시선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길을 걷는 듯한 자유로움이었다. 물방울이 얼굴과 옷을 적시는 것이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날 가볍게 해 주었다. 비는 나를 짓누르지 않고, 오히려 내 마음을 씻어내는 듯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몸은 여전히 젖어 있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의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내 안의 무거움을 씻어내는 의식 같았다. 특히 비를 피하지 않고 맞으며 걸어갔던 순간은 내게 오래 남을 경험이었다. 그것은 과거의 불안했던 어린아이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지금의 나에게 주는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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