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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상문
"렙틸리언 증후군"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저는 검색창에 렙틸리언부터 검색해보았어요.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다보니 제가 아는 그 렙틸리언이 맞나 헷갈렸거든요. 검색 결과를 본 이후에는 이 소설이 더 궁금해졌어요. 렙틸리언이 어째서 종족의 이름이 아닌 질병이 되었을까.
<렙틸리언 증후군>을 조금 읽어보고 나서야 이들이 종족이 아닌 환자로 분류되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일반인"들은 "렙틸리언"들을 "인간"으로 규정하려하지만 포용하려고 하지는 않죠. 다름이 아닌 틀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재앙, 욕구에 의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질병의 진행 과정에 의한 발작 증상이라고요. 하지만 렙틸리언인 마빈은 그런 인식과 표현을 거부합니다.
저는 휴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휴면은 추위를 피해 땅이나 동굴로 들어가거나, 먹이활동을 할 수 없을 때에 들어가는 겨울잠과 같은 것이죠. 즉, 외부 요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렙틸리언들의 휴면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렙틸리언 증후군은 굳이 따지자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질병보다는 장애에 가깝고, 렙틸리언들의 입장에서는 질병도 장애도 무엇도 아닌, 인간이 아닌 이종족에 가깝다고 느껴졌어요. 특별히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처럼 그냥 원래 그런 존재로서요.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이 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유전자 내에 있던 렙틸리언의 DNA가 발현된다...라는 느낌? 그리고 어쩌면, 소설 속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렙틸리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그리고 조금 더 SF적으로 사고해보자면, 렙틸리언은 인간 진화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속눈썹이 길다고 하죠. 사막에 사는 낙타들과 같이, 미세먼지가 많아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나요. 이 사회의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이전에 비해 많은 사람을 만나야하고, 상대해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성과에 집착하고, 더 나은 삶을 갈망하죠.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며 이런 고통은 지속되기 마련이고요. 그러니까 어쩌면 렙틸리언은 사실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진화 과정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주란이 마빈의 휴면을 삶의 끝, 죽음이라고 규정하는 반면, 마빈은 휴면을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마빈의 첫 휴면은 여덟살때였죠. 학교에 들어가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하는 과정이 어린 마빈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견디기 힘든 압박이었기때문에 무의식중에 휴면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린 마빈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나다움" 말이에요.
그리고 허진이 버스에서 발작 - 그러니까 휴면에 들어간 이유는 아마 아이를 어떻게든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으려는 은영씨를 비롯한 허진이 주변 사람들의 노력 - 이라고 쓰고 압박과 강요라고 읽는 -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렙틸리언 증후군>은 렙틸리언이라는 소재에 비해 굉장히 담백한 소설이었어요. 감상자들은 굳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렙틸리언 증후군이 어떤 이유로 발병되는지를 알아내거나 납득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존재하죠. 마빈이 렙틸리언 증후군을 나다움이라고 받아들이고 휴면기에 들어간 것처럼요. SF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던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아요. 단편이기 때문에 담아낼 수 있는 설정의 길이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이정도가 딱 적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증상 설명도 한번에 줄줄 읊는 게 아니라 상상의 여지는 남겨두면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주셔서 좋았어요.
한강 작가님의 <내 여자의 열매>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학창시절에 해당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렙틸리언 증후군>이 그 소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재라든지 문체라든지 뭐 그런 종류보다는 <렙틸리언 증후군>의 렙틸리언인 마빈과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담담함이요.(벌써 몇년전에 읽은 소설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도 SF보다는 일반 소설에 가깝게 느껴졌지만, 그런 담백함도 좋았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마빈이라는 이름이에요. 하필 도 씨인 인물에게 마빈이라는 이름을 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딱 들어봤을 땐 바로 도마뱀이 연상되는 이름이니까요. 단순히 도마뱀에서 연상한 이름인지, 아니면 마, 빈에 각각 특별한 한자를 쓰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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