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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의리 감상회

수신인 : 서울쥐
발신인 : 엘린, 느리개, 스러기, N극성 / 구로 / 불참 : 구술(무단)
2025.09.30
엘린
안녕하세요 서울쥐 님. 덕분에 제법 오랜만에 SF물을 읽었습니다. 사실 좋아하는 것치고 SF물을 많이 읽지는 않았어요. 더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 탓이겠지요.
소설 서두가 편지글로 시작되는 게 좋았어요. 휴면으로 말할 수 없는 마빈의 이야기를 편지로 전했다는 점이요. 다섯 손가락만큼 좋다는 표현도 그에 얽힌 사연과 함께 깊게 다가왔습니다.
랩틸리언 증후군이 참 흥미로웠어요. 특히 ‘휴면’을 하고 싶어한다는 점이요. 조금은 부러울지도요. 랩틸리언 증후군으로 명명되고 자기들만의 군락을 이룬 채, 휴면으로 다섯 손가락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는게요.
과수면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여튼…… 저에겐 편안할 것 같다는 감상을 주었습니다. 비록 그들을 아끼는 이들은 슬프고 괴로울지더라도요.
짧지 않은 글을 읽으며, 즐거웠습니다. 전 되게 일정한 톤으로 잘 짜인 글이라 생각해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1.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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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2
느리개
느리개입니다! 파충류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을 보고 치즈를 발견한 생쥐처럼 열광했네요. 경건한 마음으로 렙틸리언 증후군을 읽었습니다.
시작은 아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였죠. 내용 자체는 평범하게 안부를 묻고 평범하게 소식을 전하는 편지 같지만, 내용은 약간 다른 사정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편지 속에는 그런 타인의 거리감이 느껴졌어요.
게다가 마빈이가 군락지에 들어간 이후로 어머니가 방문한 적 없었다는 부분이 가장 그랬죠. 보내준 편지를 소중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위해 렙틸리언 증후군을 가진 아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그 선택까지 부정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렙틸리언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인 듯 하지만, 편지에서는 아들로써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의 거리감을 줄여보자는 요청이 담겨져 있는 듯했습니다.
홍주란 씨는 아마도 아들이 휴면기에 들어간 이후부터 군락지에 방문하고 있는 듯 한데... 직업으로 강의를 다니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 내용조차 렙틸리언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인데... 렙틸리언 자체에 대한 이해도는 높을지 몰라도 결국 사회에 렙틸리언 아이를 '적응'시키는 내용일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의 독특한 점 중 하나인 권리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무엇보다 렙틸리언 마을로 렙틸리언 증후군 보유자들이 향하는 이유는, 이런 사회적인 동물의 특성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거나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겠죠. 렙틸리언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함께 모여 사니까요. 사회가 변하고 렙틸리언 증후군이 더 이상 증후군이 아닌 하나의 인종으로 분류될 때 그들은 군락지에 모여 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참견을 싫어하고, 참견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약간... 강아지 종의 보편적인 성격 차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똑똑하고 충성스러운 강아지가 있고 똑똑하지만 자꾸 까부는 강아지가 있듯이... 그러나 그들 모두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죠. 참 흥미로운 구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은영 씨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건 저 뿐인가요??? 이 사람의 배우자일 렙틸리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어떤 렙틸리언이랑 무슨 연애를 해서 가정을 꾸린 거야 아내랑 아들도 두고 군락지로 홀라당 들어간 건지 뭔지 당신들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해져... 애아빠나와! 육아하는 것도 아니고 모아 키워? 공동 육아? 데리고 오면 해결해준다며 이 자식아! 앞으로 은영 씨는 혼자 살아가나요? 진짜 디용입니다... 아님 설마 애아빠가 군락지에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었나요? 기절하고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흥미로운 설정과 구성, 등장인물들이었습니다. 은영 씨의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은영 씨와 그 남편은 어떨지. 물론 주란과 마빈의 뒷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쓰다 보니 궁금해진 것이 휴면기 동안 옆에서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것 같은데 렙틸리언들이 할 일을 주란이 자진해서 하겠다고 렙틸리언 사회에 피력한 것인지, 아니면 렙틸리언들이 신경 안 쓸 것을 알고 하게 된 것인지... 그리고 게롱 씨는 추우면 휴면에 들어가는데, 렙틸리언의 휴면과 완전히 같은 휴면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만약 앞선 질문의 답이 후자라면, 장기 휴면이라는 건 사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선택지인가요?
렙틸리언이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주란의 서사가 더 자세히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빈이 군락지에 들어가는 것으로 갈등이 있어서 서로 돌아서긴 했지만, 어쨌든 주란은 마빈을 위해, 그리고 렙틸리언이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알리기 위해 활동을 하고 있죠. 마빈을 향한 주란의 사랑은 충분히 느껴졌지만, 마빈이 휴면기에 들어간 시기, 주란이 마빈을 방문하기 시작한 시기 등에 대한 혼란이 좀 있습니다. 군락지에 찾아가겠다고 결심한 주란의 심리나, 과거 이야기를 정렬하는 일 등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얼마나 좋은 렙틸리언...
SF문체를 쓰지 않으셨다고 했지만 어떤 장르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문체는 없으니까요, 소재도 서사도 훌륭하고, 제가 읽기에는 좋은 SF 단편이었습니다.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과 SF 게롱 씨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구요. 서울쥐 님의 <렙틸리언 증후군>, 잘 읽었습니다!
  1.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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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8
러기
"렙틸리언 증후군"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저는 검색창에 렙틸리언부터 검색해보았어요.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다보니 제가 아는 그 렙틸리언이 맞나 헷갈렸거든요. 검색 결과를 본 이후에는 이 소설이 더 궁금해졌어요. 렙틸리언이 어째서 종족의 이름이 아닌 질병이 되었을까.
<렙틸리언 증후군>을 조금 읽어보고 나서야 이들이 종족이 아닌 환자로 분류되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일반인"들은 "렙틸리언"들을 "인간"으로 규정하려하지만 포용하려고 하지는 않죠. 다름이 아닌 틀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재앙, 욕구에 의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질병의 진행 과정에 의한 발작 증상이라고요. 하지만 렙틸리언인 마빈은 그런 인식과 표현을 거부합니다.
저는 휴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휴면은 추위를 피해 땅이나 동굴로 들어가거나, 먹이활동을 할 수 없을 때에 들어가는 겨울잠과 같은 것이죠. 즉, 외부 요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렙틸리언들의 휴면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렙틸리언 증후군은 굳이 따지자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질병보다는 장애에 가깝고, 렙틸리언들의 입장에서는 질병도 장애도 무엇도 아닌, 인간이 아닌 이종족에 가깝다고 느껴졌어요. 특별히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처럼 그냥 원래 그런 존재로서요.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이 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유전자 내에 있던 렙틸리언의 DNA가 발현된다...라는 느낌? 그리고 어쩌면, 소설 속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렙틸리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그리고 조금 더 SF적으로 사고해보자면, 렙틸리언은 인간 진화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속눈썹이 길다고 하죠. 사막에 사는 낙타들과 같이, 미세먼지가 많아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나요. 이 사회의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이전에 비해 많은 사람을 만나야하고, 상대해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성과에 집착하고, 더 나은 삶을 갈망하죠.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며 이런 고통은 지속되기 마련이고요. 그러니까 어쩌면 렙틸리언은 사실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진화 과정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주란이 마빈의 휴면을 삶의 끝, 죽음이라고 규정하는 반면, 마빈은 휴면을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마빈의 첫 휴면은 여덟살때였죠. 학교에 들어가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하는 과정이 어린 마빈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견디기 힘든 압박이었기때문에 무의식중에 휴면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린 마빈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나다움" 말이에요.
그리고 허진이 버스에서 발작 - 그러니까 휴면에 들어간 이유는 아마 아이를 어떻게든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으려는 은영씨를 비롯한 허진이 주변 사람들의 노력 - 이라고 쓰고 압박과 강요라고 읽는 -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렙틸리언 증후군>은 렙틸리언이라는 소재에 비해 굉장히 담백한 소설이었어요. 감상자들은 굳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렙틸리언 증후군이 어떤 이유로 발병되는지를 알아내거나 납득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존재하죠. 마빈이 렙틸리언 증후군을 나다움이라고 받아들이고 휴면기에 들어간 것처럼요. SF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던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아요. 단편이기 때문에 담아낼 수 있는 설정의 길이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이정도가 딱 적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증상 설명도 한번에 줄줄 읊는 게 아니라 상상의 여지는 남겨두면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주셔서 좋았어요.
한강 작가님의 <내 여자의 열매>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학창시절에 해당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렙틸리언 증후군>이 그 소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재라든지 문체라든지 뭐 그런 종류보다는 <렙틸리언 증후군>의 렙틸리언인 마빈과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담담함이요.(벌써 몇년전에 읽은 소설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도 SF보다는 일반 소설에 가깝게 느껴졌지만, 그런 담백함도 좋았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마빈이라는 이름이에요. 하필 도 씨인 인물에게 마빈이라는 이름을 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딱 들어봤을 땐 바로 도마뱀이 연상되는 이름이니까요. 단순히 도마뱀에서 연상한 이름인지, 아니면 마, 빈에 각각 특별한 한자를 쓰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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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극성
랩틸리언 증후군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한참이나 맴돌았던 단어가 있습니다.
존중.
존중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무조건적으로 관용한 태도로 바라보는 것? 따뜻한 눈으로 보듬어 주는 것? 대체 무엇이길래, 존중 없는 태도에 상처받고, 때때로 존중하지 못해 상처를 주게 되는 걸까요?<랩틸리언 증후군>은 아들 마빈의 편지와 어머니 주란의 현재 시점을 교차하며, 위와 같은 질문을 함께 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랩틸리언 증후군은 아들 마빈을 비롯한 몇몇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생체적 정신적 변화입니다. 몸과 정서 반응이 다른 인간들과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휴면이라는 독특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군락지라는 곳으로 훌쩍 떠나 삶의 터전을 꾸리기도 하지요.주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숨기고, 버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죠. 보통과 다른 모습, 보편적이지 않은 상태는 이야기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이러한 양상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어요. 우리와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퀴어들에게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거든요.지향성, 정체성이 다른 퀴어들을 보며 사람들은 종종 생각합니다. 굳이 저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세상에 평범하게 섞여 살 수는 없는 건가? 어찌 보면 그럴 듯한 의문이죠.
그러나.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퀴어성을 드러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불편하고 힘들어 보이는 그 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죠.'있는 그대로의 자신.'그것을 왜 그리도 갈망하는지에 대해서, 마빈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이건 슬픈 일이 아니에요.
-깨어나며 깨달았어요. 우리는 결국 휴면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저는 그 날을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릴 거라는 걸. 우리가 휴면을 추구하게 되는 건, 질병에 의한 증상이 아니라 휴면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던 거에요.
저는 이런 마빈의 이야기에서 위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선로로부터 벗어나 살더라도 행복할 수 있구나. 손가락 다섯 개라는 '보통과 닿아있는' 기억들도 아주 버리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 코끝이 시큰해졌답니다.
저도 언젠가 저만의 군락지로 향할 수 있을까요? 혹은 제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저와 다른 길을 가겠다며 나섰을 때, 그가 보내준 행복한 편지를 코팅해서 간직할 수 있을까요?부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이야기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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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25.10.26
구로
안녕하세요, 서울쥐님. 구로입니다.

비록 이번 의리 발신 마감일자가 10/28이긴 하나, 기간이 긴 만큼 조금 더 빨리 드리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게 마감 직전에 드리게 되었네요. 송구합니다. 대신에 좋은 점이 있다면, 온전히 여유를 갖고 정말 즐겁게 이 글을 읽었습니다. 서울쥐님은 듣고 싶은 피드백 란의 첫 줄에 '솔직한 감상평'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하부터는 잠시 읽지 않고 <렙틸리언 증후군>을 읽는 과정 중에 제 소감을 메모하고, 다 읽고 난 다음에 다시 돌아와 이하 서울쥐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정말로 잘 쓴 글입니다. 저는 SF소설을 읽는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젠체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지만 SF소설 중 세계관의 설정, 혹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벅참에 잡아먹혀서 독자로서는 이야기 자체를 편안히 즐기기가 다소 어렵게 흐르는 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은 사실 제 취향이 아니고, 작가의 노력과 정교한 묘사, 함의를 존중하는 한편,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렙틸리언 증후군>은 매우 재밌었고, 제가 위에서 말한 SF소설들에서-적어도 제가 느끼기에-최근 경향에서 두드러지는 저러한 단점들을 갖고 있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즉, 매우 잘 쓴 SF단편 소설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몰입이 가능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제 기억에 흔적을 새기는 글을 저는 좋아합니다. 이 소설이 그랬습니다. 'SF라기엔 일반 소설 같다'고 해주셨는데 물론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는 정확히 제가 서울쥐님의 설명을 더 들어봐야하지만^_^; 만약 일반 소설 같은 부분이 있다면 매우 긍정적인 의미일 거라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잘 읽히고 호흡이 좋은 단편 소설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SF소설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는 걱정의 의미셨다면, 글쎄요, 저는 이보다 더 SF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SF적 소재를 이용해서 현실에서 우리가 당면하는 딜레마와 또 은유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의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유발하게 하니까요. 주란과 은영의 고민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떤 친숙함을 느낍니다.
읽기 힘든 부분은 없었습니다. 템포 또한 완벽했고요. 그래서 매우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독자에게 필요한 만큼 설득력있게 주란의 심리와 그녀에 대한 정보를 거듭해주시면서도 이것의 양이 딱 적당했고 사건 전개 속에 해당 정보가 섞여드는 간격도 참 적절했습니다. 눈앞에서 장면이 훤히 그려질 수 있게 묘사를 딱 해내시는데, 이 생생한 묘사는 많은 문장들로 구성되지 않아요. 딱 필요한 만큼 있는데, 좋은 문장들로 이뤄져 있죠. 그래서 노련하시다고 느꼈습니다. 관찰력이 좋으신 작가님 같아요.
읽는 사람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전 마빈의 편지 분량도 적절했고, 렙틸리언 증후군에 대한 설명조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부분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거듭 노련하시다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출판된 단행본으로 접해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글이에요.
이하로는 이제 감정 측면의 제 감상을 적어보겠습니다. 렙틸리언 증후군은 다양한 것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어느 하나로 국한 시켜서 감상을 전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살아가는 것에는 정답이 없으나 다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떠 방향으로든 발버둥치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의 일상과 그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저는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 김원영)라는 꽤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떠올렸습니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두 작가가 쓴 논픽션인데요, 저는 여기에서 비장애인들이 하는 흔한 착각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꿈이 장애 없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현재 나의 몸, 나의 정신에 편안한 세상을 원하지, 신체 조건 등이 비장애인들과 동일해지길 꿈꾸는 이들은 딱히 없다는 겁니다. 부단히도 '장애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소망하는 일 또한 비장애인들의 오만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의도는 선하지요. 하지만...되어보지 않으면 모르고, 선한 의도가 타자화일 수도 있다는 것이 무겁게 와닿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주란의 아들 마빈과의 살아온 흔적, 지금 살아가는 양상이 타자화를 점점 더 걷어내가는 사랑의 여정이라고 느꼈습니다. 무엇이 답인지 모르고 그들을 내버려두는 것이 정말 진정 최선인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주란의 군락지에 대한 관점은 이 소설 이후에 심지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빈을 키워오고 약을 먹이고, 다섯 손가락을 가르치는 것부터 군락지로 보내서 지금 그의 손을 잡아보는 이 모든 것은...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고 무의미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게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도요.
'너의 의사를 존중한다' 는 것은 언제나 방치와 존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것처럼 선택하는 입장인 사람에게 느껴지는) 가장 까다로운 인간의 딜레마입니다. 주란의 속이 지금도 시끄러운 이유도 영원히 명쾌한 정답을 못 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주란이 잠깐 마빈이 다섯 손가락이 펴질 만큼 기분 좋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는데, 군락지에 가서야 (마빈이) 그것을 느꼈노라 한다고 서술했지요. 하지만 마빈이 처음부터 군락지에 바로 갔으면 거기에서의 감정이 '다섯 손가락' 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아니겠지요. 우리가 겪는 과정들은 어쩌면 시행착오조차 아니고 그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관문일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그것이 결과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무소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을 줄지라도요. 주란이 은영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이와 유사한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이미 비슷한 과정을 거친 주란으로서는 은영을 판단하고 싶고 뭔가 맞는 답 비슷한 것을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은영이 어떤 결정을 할까에 대해서도 가치판단적 시선을 가질 듯 말 듯 하는 주란의 모습도 보이고요. 그러나 은영의 서사도, 주란이 그녀에게 개입하는 서사도 명확한 형태를 갖지 않습니다. 희미한 감사합니다 소리를 들은 것같았다 정도로 끝나지요. 저는 그래서 좋았습니다. 제가 이 문단에서 강조한 소설의 주제와도 잘 이어지는 플롯 같았기 때문입니다. 주란은 은영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이해와 공감, 혹은 당사자성을 통한 도움의 손길 이 모든 것을 너무 길게 뻗지 않음을 통해서 오히려 그 존중을 지켜냅니다. 마빈에게 그러듯이요.
여담으로 파충류라는 소재를 통해 나오는 이 소설만의 관련된 설정이 재밌었습니다. 건물의 구조묘사도 그랬고 휴면 같은 것이요.
참 이상하지요. 이 소설은 서늘하고 매끄러운 것이 연상되는 렙틸리언 증후군을 다루는 글인데 다 읽고 나니 제 감정은 따뜻하고 약간은 좋은 의미로 아픕니다. 정말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 저는 서울쥐님이 쓰실 SF소설이 앞으로도 정말 기대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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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틸리언 증후군"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저는 검색창에 렙틸리언부터 검색해보았어요.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다보니 제가 아는 그 렙틸리언이 맞나 헷갈렸거든요. 검색 결과를 본 이후에는 이 소설이 더 궁금해졌어요. 렙틸리언이 어째서 종족의 이름이 아닌 질병이 되었을까.
<렙틸리언 증후군>을 조금 읽어보고 나서야 이들이 종족이 아닌 환자로 분류되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일반인"들은 "렙틸리언"들을 "인간"으로 규정하려하지만 포용하려고 하지는 않죠. 다름이 아닌 틀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재앙, 욕구에 의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질병의 진행 과정에 의한 발작 증상이라고요. 하지만 렙틸리언인 마빈은 그런 인식과 표현을 거부합니다.
저는 휴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휴면은 추위를 피해 땅이나 동굴로 들어가거나, 먹이활동을 할 수 없을 때에 들어가는 겨울잠과 같은 것이죠. 즉, 외부 요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렙틸리언들의 휴면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렙틸리언 증후군은 굳이 따지자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질병보다는 장애에 가깝고, 렙틸리언들의 입장에서는 질병도 장애도 무엇도 아닌, 인간이 아닌 이종족에 가깝다고 느껴졌어요. 특별히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처럼 그냥 원래 그런 존재로서요.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이 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유전자 내에 있던 렙틸리언의 DNA가 발현된다...라는 느낌? 그리고 어쩌면, 소설 속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렙틸리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그리고 조금 더 SF적으로 사고해보자면, 렙틸리언은 인간 진화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속눈썹이 길다고 하죠. 사막에 사는 낙타들과 같이, 미세먼지가 많아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나요. 이 사회의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이전에 비해 많은 사람을 만나야하고, 상대해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성과에 집착하고, 더 나은 삶을 갈망하죠.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며 이런 고통은 지속되기 마련이고요. 그러니까 어쩌면 렙틸리언은 사실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진화 과정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주란이 마빈의 휴면을 삶의 끝, 죽음이라고 규정하는 반면, 마빈은 휴면을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마빈의 첫 휴면은 여덟살때였죠. 학교에 들어가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하는 과정이 어린 마빈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견디기 힘든 압박이었기때문에 무의식중에 휴면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린 마빈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나다움" 말이에요.
그리고 허진이 버스에서 발작 - 그러니까 휴면에 들어간 이유는 아마 아이를 어떻게든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으려는 은영씨를 비롯한 허진이 주변 사람들의 노력 - 이라고 쓰고 압박과 강요라고 읽는 -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렙틸리언 증후군>은 렙틸리언이라는 소재에 비해 굉장히 담백한 소설이었어요. 감상자들은 굳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렙틸리언 증후군이 어떤 이유로 발병되는지를 알아내거나 납득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존재하죠. 마빈이 렙틸리언 증후군을 나다움이라고 받아들이고 휴면기에 들어간 것처럼요. SF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던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아요. 단편이기 때문에 담아낼 수 있는 설정의 길이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이정도가 딱 적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증상 설명도 한번에 줄줄 읊는 게 아니라 상상의 여지는 남겨두면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주셔서 좋았어요.
한강 작가님의 <내 여자의 열매>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학창시절에 해당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렙틸리언 증후군>이 그 소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재라든지 문체라든지 뭐 그런 종류보다는 <렙틸리언 증후군>의 렙틸리언인 마빈과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담담함이요.(벌써 몇년전에 읽은 소설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도 SF보다는 일반 소설에 가깝게 느껴졌지만, 그런 담백함도 좋았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마빈이라는 이름이에요. 하필 도 씨인 인물에게 마빈이라는 이름을 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딱 들어봤을 땐 바로 도마뱀이 연상되는 이름이니까요. 단순히 도마뱀에서 연상한 이름인지, 아니면 마, 빈에 각각 특별한 한자를 쓰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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