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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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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상문
안녕하세요, 서울쥐님. 구로입니다.

비록 이번 의리 발신 마감일자가 10/28이긴 하나, 기간이 긴 만큼 조금 더 빨리 드리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게 마감 직전에 드리게 되었네요. 송구합니다. 대신에 좋은 점이 있다면, 온전히 여유를 갖고 정말 즐겁게 이 글을 읽었습니다. 서울쥐님은 듣고 싶은 피드백 란의 첫 줄에 '솔직한 감상평'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하부터는 잠시 읽지 않고 <렙틸리언 증후군>을 읽는 과정 중에 제 소감을 메모하고, 다 읽고 난 다음에 다시 돌아와 이하 서울쥐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정말로 잘 쓴 글입니다. 저는 SF소설을 읽는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젠체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지만 SF소설 중 세계관의 설정, 혹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벅참에 잡아먹혀서 독자로서는 이야기 자체를 편안히 즐기기가 다소 어렵게 흐르는 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은 사실 제 취향이 아니고, 작가의 노력과 정교한 묘사, 함의를 존중하는 한편,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렙틸리언 증후군>은 매우 재밌었고, 제가 위에서 말한 SF소설들에서-적어도 제가 느끼기에-최근 경향에서 두드러지는 저러한 단점들을 갖고 있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즉, 매우 잘 쓴 SF단편 소설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몰입이 가능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제 기억에 흔적을 새기는 글을 저는 좋아합니다. 이 소설이 그랬습니다. 'SF라기엔 일반 소설 같다'고 해주셨는데 물론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는 정확히 제가 서울쥐님의 설명을 더 들어봐야하지만^_^; 만약 일반 소설 같은 부분이 있다면 매우 긍정적인 의미일 거라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잘 읽히고 호흡이 좋은 단편 소설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SF소설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는 걱정의 의미셨다면, 글쎄요, 저는 이보다 더 SF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SF적 소재를 이용해서 현실에서 우리가 당면하는 딜레마와 또 은유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의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유발하게 하니까요. 주란과 은영의 고민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떤 친숙함을 느낍니다.
읽기 힘든 부분은 없었습니다. 템포 또한 완벽했고요. 그래서 매우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독자에게 필요한 만큼 설득력있게 주란의 심리와 그녀에 대한 정보를 거듭해주시면서도 이것의 양이 딱 적당했고 사건 전개 속에 해당 정보가 섞여드는 간격도 참 적절했습니다. 눈앞에서 장면이 훤히 그려질 수 있게 묘사를 딱 해내시는데, 이 생생한 묘사는 많은 문장들로 구성되지 않아요. 딱 필요한 만큼 있는데, 좋은 문장들로 이뤄져 있죠. 그래서 노련하시다고 느꼈습니다. 관찰력이 좋으신 작가님 같아요.
읽는 사람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전 마빈의 편지 분량도 적절했고, 렙틸리언 증후군에 대한 설명조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부분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거듭 노련하시다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출판된 단행본으로 접해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글이에요.
이하로는 이제 감정 측면의 제 감상을 적어보겠습니다. 렙틸리언 증후군은 다양한 것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어느 하나로 국한 시켜서 감상을 전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살아가는 것에는 정답이 없으나 다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떠 방향으로든 발버둥치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의 일상과 그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저는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 김원영)라는 꽤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떠올렸습니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두 작가가 쓴 논픽션인데요, 저는 여기에서 비장애인들이 하는 흔한 착각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꿈이 장애 없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현재 나의 몸, 나의 정신에 편안한 세상을 원하지, 신체 조건 등이 비장애인들과 동일해지길 꿈꾸는 이들은 딱히 없다는 겁니다. 부단히도 '장애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소망하는 일 또한 비장애인들의 오만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의도는 선하지요. 하지만...되어보지 않으면 모르고, 선한 의도가 타자화일 수도 있다는 것이 무겁게 와닿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주란의 아들 마빈과의 살아온 흔적, 지금 살아가는 양상이 타자화를 점점 더 걷어내가는 사랑의 여정이라고 느꼈습니다. 무엇이 답인지 모르고 그들을 내버려두는 것이 정말 진정 최선인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주란의 군락지에 대한 관점은 이 소설 이후에 심지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빈을 키워오고 약을 먹이고, 다섯 손가락을 가르치는 것부터 군락지로 보내서 지금 그의 손을 잡아보는 이 모든 것은...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고 무의미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게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도요.
'너의 의사를 존중한다' 는 것은 언제나 방치와 존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것처럼 선택하는 입장인 사람에게 느껴지는) 가장 까다로운 인간의 딜레마입니다. 주란의 속이 지금도 시끄러운 이유도 영원히 명쾌한 정답을 못 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주란이 잠깐 마빈이 다섯 손가락이 펴질 만큼 기분 좋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는데, 군락지에 가서야 (마빈이) 그것을 느꼈노라 한다고 서술했지요. 하지만 마빈이 처음부터 군락지에 바로 갔으면 거기에서의 감정이 '다섯 손가락' 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아니겠지요. 우리가 겪는 과정들은 어쩌면 시행착오조차 아니고 그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관문일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그것이 결과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무소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을 줄지라도요. 주란이 은영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이와 유사한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이미 비슷한 과정을 거친 주란으로서는 은영을 판단하고 싶고 뭔가 맞는 답 비슷한 것을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은영이 어떤 결정을 할까에 대해서도 가치판단적 시선을 가질 듯 말 듯 하는 주란의 모습도 보이고요. 그러나 은영의 서사도, 주란이 그녀에게 개입하는 서사도 명확한 형태를 갖지 않습니다. 희미한 감사합니다 소리를 들은 것같았다 정도로 끝나지요. 저는 그래서 좋았습니다. 제가 이 문단에서 강조한 소설의 주제와도 잘 이어지는 플롯 같았기 때문입니다. 주란은 은영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이해와 공감, 혹은 당사자성을 통한 도움의 손길 이 모든 것을 너무 길게 뻗지 않음을 통해서 오히려 그 존중을 지켜냅니다. 마빈에게 그러듯이요.
여담으로 파충류라는 소재를 통해 나오는 이 소설만의 관련된 설정이 재밌었습니다. 건물의 구조묘사도 그랬고 휴면 같은 것이요.
참 이상하지요. 이 소설은 서늘하고 매끄러운 것이 연상되는 렙틸리언 증후군을 다루는 글인데 다 읽고 나니 제 감정은 따뜻하고 약간은 좋은 의미로 아픕니다. 정말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 저는 서울쥐님이 쓰실 SF소설이 앞으로도 정말 기대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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