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음모론을 좋아했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보다는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미간에 힘을 주고 심각한 얼굴로 세상의 비밀을 논하는, 조금은 유치한 우월감 같은 것이었을 테다. 나이가 들면서 음모론은 자연스레 시시해졌다. 그 자리는 과학이 대신했다. 통 속의 뇌, 시뮬레이션 우주, 양자역학의 불확실성, 모든 것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들. 주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았다. 세상의 근본적인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이해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는 여전했다. 결이 다른 음모론을 파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해도,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광활한 우주가 거대한 시뮬레이션이고 나는 그 안의 NPC에 불과하다 한들, 그래서 뭐란 말인가. 삶의 허무함을 이겨내고자 그런 거창한 진리를 찾아 헤맸는데, 정작 그것을 안다고 해서 허무함이 사라지는 것도, 모른다고 해서 허무함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설령 내 모든 행동과 감정이 미리 정해진 값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가족과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부대끼며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의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모든 순간, 나는 분명 행복을 느꼈다. 그것마저 설계된 감정이라 해도, 그 행복감만큼은 진짜였다. 이제는 안다. 진리를 탐구하며 허무함과 싸우기보다, 그저 눈앞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쪽이 훨씬 즐겁다는 것을.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오늘의 행복을 나누는 것. 어쩌면 삶의 의미란 그런 단순한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색하고 심오해지는 대신, 별생각 없이 지금을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꽤 괜찮은 삶의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