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도시 디아스포라로서의 관악 "쇼, 알고 있니? 오사카의 옛 지명은 '나니와(難波)'라고 해. 온갖 해산물이 풍족하게 잡히는 곳이라 생선(魚:な)의 정원(庭:にわ)이라는 뜻에서 'なにわ', 그 이름대로야. 여긴 꼭 바다 같아,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뒤엉키는 바다. 고향을 버리고 흘러들어 온 물고기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온 곳. 주위가 모두 가지각색의 물고기들이니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그 잡다한 정원이 내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정체라고 생각하면 완전한 이방인인 나도, 조금은 덜 외로운 기분이 든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 도시가 조금은 좋아졌어. 어때? 그런 곳이라면 어쩐지, 새로운 집으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 <오사카 환상선> 중 발췌 제가 살고 있는 낙성대동의 작은 골목에는, 24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인 빨래방이 있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물 사이에서, 쥐 죽은 듯 조용한 밤에 세탁을 기다리고 있다 보면 문득문득 삶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행히도 저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빨래방 한 구석에는 누군가 가져다 둔 노트와 펜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취업의 꿈을 꾸며 상경한 이도 있고, 학문의 꿈을 꾸며 상아탑을 밝히는 이도 있고, 불타는 젊음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신입생도 있습니다. 옷 없이 살 수 있는 이는 없기에 이들 모두가 빨래방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물을 보며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는 것 같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웃의 눈물 나게 슬펐던 기억과 합격의 기쁨이 담긴 노트를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런 소통이 단순히 단방향적인 소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 간의 위로와 연대, 축하와 격려로 색칠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숙함과 서툶, 역동이 가득한 이 동네에 대한 감정이 형언할 수 없는 형태로 피어납니다. 관악을 아십니까? 서울 남쪽을 지키는, 험준한 산기슭 아래에 위치한 동네입니다. 혹자는 조국의 미래가 궁금하면 고개를 들어 이곳을 바라 보라고도 하더랍니다. 그 정도의 기대를 받을 만한 공간일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제 2의 고향이자, 사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