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열정은 내부로 깊이 침잠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밖으로 발산하지 않을 뿐이다. 억지로 발산하려고 하면 그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나의 열정은 창백하므로, 타오르는 열정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
... 과거는 모두 환영이고 여기에 진실한 존재가 있으며 나와 아내 딱 둘이서만 여기에 서서 서로 포옹하고 있다. 나는 지금 죽을지도 모르지만 찰나가 영원임을 느꼈다.
... 봉건적 부모 밑에서 자란 내 머릿속에는 인습적인 형식주의가 늘 들러붙어 있어서 정신적으로는 어쨌든 간에 육체적으로, 남편이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오소독스한 방법으로 성교만 하지 않으면 정조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조의 형식만 지키면, 그 이외의 방법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짓이냐 물으면 곤란하지만 말이다.
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이 남자가 나를 위해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에게 미칠 정도로 희열을 느끼게 해 주는 데도 흥미가 생겼다. 즉 나는 애정과 음욕을 완전히 별개로 처리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남편을 소홀이 하면서도-얼마나 징그러운 사람인가 하고 그를 보면 구역질을 하면서도, 그런 그를 환희의 세계로 이끌어 줌으로써 나 역시 어느새 그 세계로 들어가 버린다.
쓸데없이 비밀주의를 취하는 것이 천성적인 취향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죽은 남편처럼 마음이 꼬여있고, 변태적인 사악한 정신으로 집요하게 배배 꼬이면 아무리 순수한 마음을 갖더라도 결국 뒤틀리고 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