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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악마

저자
레몽 라디게
평가
⭐⭐⭐⭐
완독일
09/01/2024
분류
  1. 프랑스문학
Created by
  • Jun
나는 아무도 나이를 벗어날 수 없으며 나의 그 위험한 경멸심도, 누군가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 주면 이내 얼음처럼 녹아 버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걸어 나아가는 것은 그와 내가 제각기 자존심을 갖고 가야만 할 길을 반으로 줄여 주었다.

우리 사이에 비밀이 생겨 나는 즐거웠다. 그리고 소심한 내가 벌써 그녀와 함께 있으면 폭군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마르트를 너무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차츰차츰 그녀를 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마음은 우리 눈이 벽지를 보고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움직였던 것이다. 벽지를 너무 바라보면, 나중엔 그 벽지가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 이제는 내 생각과 그녀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자 내 생각이 그르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처음엔 야비한 욕망이 나를 속이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더 깊고 부드러운 감정이 바로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해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을 이젠 전혀 할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마르트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비록 내 얼굴을 그녀 얼굴에 바싹 대진 않았으나 너무 지나치게 가까이 했던 것이다. 출입 금지 지역으로부터 겨우 1밀리미터만큼 넘어서까지 접근하자 나는 마치 자석에 붙어 버린 바늘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자석의 죄인가 바늘의 죄인가?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그 맛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으므로, 사랑의 즐거움을 하루하루 더 알아 갈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진짜가 못되는 그 쾌락은 남자가 느끼는 진짜 괴로움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질투였다.

나는 불안한 나머지 우리들의 사랑을 예외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시 같고, 가장 평범한 사람들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개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그와 같은 마음의 혼란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믿었다.

사랑이 우리 생명일 때, 함께 사는 것과 함께 죽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내 사랑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마르트에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사랑은 필시 사춘기에 이르렀고, 그 잔인한 짓궂은 말은 정열로 변해 가는 사랑의 변성 현상이었다. 나는 괴로워했다. 나는 마르트에게 한 내 공격을 잊어 달라고 애원했다.

사랑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없다. 사랑에 빠지면 게을러지는 것이므로, 게으름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은 기분전환을 위한 유일한 실제적 약이라는 사실을 막연히 느낀다. 따라서 사랑은 일을 하나의 라이벌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어떠한 라이벌도 견디고 받아들이질 못한다. 하지만 사랑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부드러운 가랑비처럼 유익한 게으름인 것이다.

... 나도 그녀가 무슨 일에 열중해서 나를 소홀히 할 때만큼 마르트에게 키스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 본 적이 없었고, 그녀가 머리를 치장할 때만큼,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 헝클어 놓고 싶은 마음을 그토록 강렬하게 느낀 적이 없았다.

무언가의 기교의 도움 없이는 사랑이 이젠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그 마지막 단계에 벌써 다다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의 관능적인 쾌락은 습관에 의지했지만, 그 습관에 수많은 하찮은 일들이나 가벼운 수정이 가해지면, 그 쾌락은 생기를 띠곤 했기 때문이다.

... 내 생활의 새로운 평온함은 유죄를 선고 받은 죄인의 몸치장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