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역사의 첫 번째 교훈, 즉 제국의 붕괴가 반드시 장기적인 경제 쇠퇴를 따라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로마 제국은 서부 유라시아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오래간 국가였지만, 그중 절반은 경제의 정점 이후 수십 년 이내에 무너져 내리며 사라졌다. 그 자체로는 임의적인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그러나 로마와 현대 서구의 역사를 장기적으로 더 깊게 탐구해보면 그것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마찬가지로 현대 서구 제국도 정복자와 정착민이 최근 획득한 토지, 노동, 천연자원 덕분에 열린 새로운 기회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현대의 이주 규모는 로마 제국주의의 활동으로 발생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했다. 20세기로 넘어가는 수십 년동안 최고 약 5,500만 명의 유럽인이 '신세계'를 향해 떠났다. 이 과정에서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이 만났다. 유럽 제국이 개방한 땅을 사람들이 높이 평가한 데서 당기는 힘이 생겼으며, 기술 변화와 결합한 노동 공급의 급증 떄문에 사람들을 그 땅에서 떠나도록 강요한 유럽 내부의 미는 힘도 작용했다.
... 미국이 서로 아웅다웅하는 동맹국들의 규율을 다잡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패권의 시대를 누렸을 때, 미국은 서구 정부들의 세계적 지배력과 그들이 옹호하는 원칙들, 즉 시장실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 주권, 다자간 질서를 신봉하는 일련의 제도 창설을 주도했다. 각자의 국가 모델 세부사항에 대해 의견 차이를 인정한 서구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협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관계 속에서 공유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단결했다.
두 제국(로마, 서구)은 지배력을 행사하며 주변 세계를 통해 부유해졌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구 제국은 의도치 않게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던 전략, 지정학적인 맥락을 변화시켰고, 여기에 몰락의 뿌리가 놓여 있었다.
... 주변부의 장기적인 경제 발전은 토착 기업 계급의 제한된 성장이나 인구통계 및 생산 양상이 탁월하게 재구성된 것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를 지녔다.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부의 재분배를 통한 모든 주요 경제적 변화는 필연적으로 광범위한 정치적 결과를 낳게 된다.
고대와 현대의 내부 주변부에 있는 특정 집단들의 수준에 충분한 새로운 부가 축적되어 정치권력의 지배적인 패턴에 저항할 수 없는 변화를 일으켰다. 이러한 변화는 주변부 자체 내에서, 그리고 주변부와 제국 중심지 사이의 전체적인 권력 균형 모두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부는 항상 기존의 힘의 균형을 재편하고,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능력과 필요를 둘 다 가진 새로운 권력 블록을 만들어낸다.
... 공식적인 탈식민지화 과정은 서구 제국주의의 종말이라기보다는 서구 제국주의가 새롭고 매우 창의적인 형태로 재표현되는 것을 의미했다. 로마 제국 체제가 자신의 작동 때문에 생성된 더 강력한 연맹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작동방식을 조정해 여전히 궁극적인 통제를 행사했던 것처럼, 심지어 탈식민지화 속에서도 서구 제국 체제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옛 식민지 주변부 대부분을 계속해서 지배했다.
... 브레턴우즈는 세계 자원의 순 흐름이 세계 경제의 과거 제국주의 주변부에서 서구 제국 중심지로 계속 이동하도록 세계 상업 질서를 제도화했다. ... 따라서 제조품의 자유 무역 체제는 서구 기업이 산업재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체제가 무너지면서 로마 제국은 하락세에 빠졌다. 초강대국과 경쟁, 그리고 발전하는 내부 주변부의 자기주장은 외부 주변부와 그 너머로부터 온 상당한 이주 흐름과 결합해 체계에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가했으며, 이 모든 것이 때로 각 수준의 격렬한 내부 정치적 분열과 얽혀 있었다.
... 제국의 상승 단계에서 바깥쪽으로 밀려나가다 제국이 쇠퇴하자 밀려든다고 가정하는 식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일부 서구 국가의 극우 담론에 널리 퍼져 있다. 그들은 제국 시대 동안 유럽 문화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문제가 없는 '좋은' 것으로 간주하며, 그것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로디지아 같은 옛 식민지 소유물에서 나타나 '백인 대량 학살'로 향해 가는 현재 추세와 비교한다. 그리고 그들은 심지어 서구에서 '백인 대체'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고대와 현대의 경우 이주와 부의 관계가 완전히 다르다. 로마 제국 말기의 조직적인 대규모 이주로 누군가는 큰 손해를 보았다. ... 중앙의 통제에서 너무 많은 재정 기반을 제거해 로마 제국 자체가 붕괴하는 추가 효과를 일으켰다. 대조적으로 현대 경제는 이전 시대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으므로 신규 시민의 부는 기존 시민의 부를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 물론 이것이 바로 1945년 이후 서구 정부가 실제로 이민을 장려한 이유다. 그들은 기존의 노동력 부족을 감안할 때 이민이 경제와 재정적 기반의 전반적인 규모를 뜻대로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구 복지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외국인의 유입이 아니라 수명을 연장하고 부양 비율을 엄청나게 증가시킨 전후 번영의 결과다. ... 고도로 제한적인 이민 정책이야말로 어째서 근로 인구가 부양하는 일본 퇴직자의 수가 다른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오늘날 세금으로 들어오는 엔화의 절반 이상을 사회 보장 예산으로 소비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려주는 주요 원인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교사 급여부터 쓰레기 수거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용을 지급하기 위해 많은 돈을 빌려야 한다. 따라서 이주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경제 쇠퇴의 비결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을 강화하기 위해 고안한 보호주의 전략은 탈식민지 주변부가 저개발과 엮이는 역설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지역 산업은 여전히 수입한 서구 기술과 기계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 전략은 뜻하지 않게 과거와 같은 경제 양상을 영구화했다. ... 많은 공장에는 점점 구식이 되어가는 서구의 중고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를 획득하기 위한 자본 투자가 없어 세계 경제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계속 비교하면 두 가지 점이 매우 분명해진다. 첫째, 고대 로마와 마찬가지로 현대 서구 제국도 스스로 만들어가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체 구조가 작동해 진정한 초강대국 동급 경쟁자가 등장했고 서구 제국 주변부였던 곳에 강력한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다. ... 로마와 마찬가지로 현대 서구도 기존 사회 질서의 기반이 되는 전체 재정 계약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재정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는 국내의 정치적 안정이 위협받을 때 서구 사회의 정부는 주변부로 착취를 외주화해 압력을 완화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선택지가 사라졌다. 착취할 수 있는 것은 동료 시민뿐이다. 따라서 현재 해외로부터 많은 부의 흐름이 없는 상황에서, 서구 국가들이 내부 긴장을 줄이려면 부유한 시민들, 특히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화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상위 10퍼센트가 새로운 유형으로 기능하는 사회, 정치적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내놓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 더 폭넓은 시민들에게 포용성과 공정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필연적으로 나타는 분열적인 주장을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특히 신흥 주변국 시민이 자신들도 같은 공유 가치에 기초한 더 넓은 체제 내에서 더 평등한 미래의 지분을 받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이득은 잠재적으로 엄청날 것이다. 서구 민족국가의 형태는 잠재적인 실존 위기의 순간을 협상할 수 있을 것이고, 시민들은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할 진정한 위대함이라는 식민시대 후 유산을 생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