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은 쌀국수. 지도에 ‘쌀국수’를 검색하니 마포구에서만 40곳이 넘는다. 치열해진 경쟁 속 승부수는 단연 ‘현지의 맛 구현’일 테다. 그런데 여기, 그 기준에서 벗어나 독보적인 쌀국수를 선보이는 곳이 있다. 스스로를 ‘한국식 쌀국수집’이라고 소개하는 연남동 ‘옥자’다. 무슨 맛일까? 한번 먹어봐야겠다. 식사 시간에는 늘 대기가 있다는 후기. 회전율이 높다지만 바쁜 현대인은 대기 없이 먹고 싶다. 평일 오픈 런에 도전했다. 연남동 콩카페 거리를 지나 오른쪽 갈림길로 들어서면 옥자를 만날 수 있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50분. 옛 주택을 개조해 지금 모습으로 만들었다. 가게를 감싸는 초록잎과 목조 대문이 어우러져 고즈넉하다. 월요일 오전 시간대여서인지 대기는 따로 없었다. 피크타임에는 평균 한두 팀이 대기하는데, 울타리 안 의자에서 기다리면 된단다. 드디어 11시. ‘closed’ 팻말이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 첫 손님을 맞는 주인의 친절한 인사말이 기분 좋다.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내부. 넓진 않지만 목조와 터키블루 타일로 세련되게 꾸몄다. 모든 좌석이 바 자리인 것도 옥자의 특징. 혼자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바 테이블이 큰 창문을 둘러 하나, 부엌을 둘러 하나씩 마련돼 있다. 취향 따라 골라 앉자. 자리를 잡으면 시원한 우엉차와 양파초절임, 단무지 무침을 가져다준다. 차돌양지쌀국수, 사태비빔쌀국수, 모듬튀김을 주문했다. “비빔쌀국수는 불닭볶음면보다 살짝 덜 매운 정도인데 괜찮으세요?” 자신만만하게 “그럼요!”를 외쳤다. 사태비빔쌀국수를 제외하곤 모두 무료로 면 추가가 가능하다. 한국식을 표방하지만 고수도 넉넉히 준다. 필요하면 걱정 말고 요청하자. 10분 정도 지났을까. 사태비빔쌀국수와 차돌양지쌀국수가 차례로 나왔다. 사태비빔쌀국수는 쌀국수 면에 비법 양념장, 삶은 사태, 양파채, 파, 고추, 오이가 올라간다. 양념장은 고춧가루와 고추장, 멸치액젓, 사과와 배 양파 등을 갈아 넣어 만들었다. 지체 없이 쓱쓱 비벼 입으로 직진. 양념으로 기름칠한 듯 거침없이 넘어간다. 안내처럼 정말 맵다. 새콤달콤한 베트남 분짜보다 매콤한 한국식 비빔국수에 더 가깝다. 입안 가득 알싸하고 뒷맛은 깔끔한 매운맛이다. 양념 묻은 오이로 시원하게 입을 헹구니 ‘무한 흡입’이 가능했다. 잘 삶은 사태는 질기지 않았다. 중간중간 먹어주면 든든함이 배가 된다. 차돌양지쌀국수는 차돌, 양지가 잔뜩 올라간 비주얼부터 압권이다. 매콤한 비빔쌀국수의 위력에 국물부터 한술 떴다. “이게 쌀국수라고?” 우리가 알던 맛이 아니다. ‘한국식 쌀국수’에 대한 의문이 국물 한입에 해결된다. 엄마가 밤새 끓여 아침에 데워 준 소고기뭇국, 혹은 갈비탕 그 사이의 맛. 속이 훤히 보이는 맑은 육수에 간장으로 간을 맞춰 깔끔하고 속 편한 맛이다. 특유의 쌀국수 향이 약한 대신 청양고추 향이 살짝 더해져 특별하다. 차돌은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양지는 지방을 걷어내고 먹기 좋게 결대로 찢었다. 식감을 살려주는 아삭한 숙주, 면과 함께 국물에 푹 담가 먹기 좋다. 정신없이 국수를 흡입하고 있을 때쯤 모듬 튀김이 나왔다. 짜조, 게살튀김, 멘보샤가 2조각씩 나온다. 짜조부터 먹어봤다. 투명하게 튀겨진 쌀피가 ‘바삭’하고 부서진다. 오징어, 당근 등으로 꽉 찬 소가 탱글탱글하게 씹힌다. 칠리소스의 새콤함이 더해져 느끼하지 않다. 게살튀김은 꼭 새우튀김처럼 보인다. 다리를 그대로 튀겨 입안 가득 속살의 밀도가 느껴진다. 잘 튀긴 멘보샤는 바삭한 식빵과 촉촉한 새우살이 조화롭다. 이국적인 튀김의 맛에 이곳이 ‘쌀국수집’임을 다시 깨닫는다. 세 튀김이 한 조각씩 나오는 1인 튀김도 있다. ‘혼밥’ 손님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식나 내내 “밥 비벼 먹고 싶다!”, “밥 말아 먹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밥을 부르는 맛이라면 이것은 한국식이 맞다. 가게 여사장이 남사장을 부르는 애칭이자, 그들의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대신한 만큼 소중한 공간이라는 옥자. 향신료는 싫지만, 쌀국수는 먹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성수점도 오픈했다고 하니 가까운 곳을 달려가자. 후회는 없을 것이다. 주소: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29길 40-15 영업시간: 화 11:00~15:00, 목월 11:00~20:30 가격: 차돌양지쌀국수 11,000원, 사태비빔쌀국수 11,000원, 모듬튀김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