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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화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4
오승훈
우리는 분별과 비판, 비난에 대해서 구분하지 못 하고 사는 듯 하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주안에서 분별하라고 한다.
사회에서는 건강한 비판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해서 비난하지 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
이것은 아마도 주님이 기뻐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비판의식을 가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리하면 우리에게는 분명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켜주신 아가페 프로텐(궁극의사랑)으로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비판)해야 하지만,
사랑의 마음이 없이,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확한 이해와 성숙함이 없으면,
우리는 사람을 비난하는데 우리의 감정을 모두 소모하게 된다.
이것이 관계를 끊어지게 하는 사탄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는 주님의 뜻을 기억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의 가치관을 분별(비판)하는데까지가 우리의 역할이다.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아주 무서운 죄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실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온전히 주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는 축복이 우리에게 있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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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2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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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김병삼목사) 비판하지 말아라
설교영상 링크 : https://youtu.be/AiWQn4J0SaA?si=50HodSGA6vaC2kTq 비행사 하늘과 바다가 혼동되는 현상 : 버티고현상 비행에 숙달되어도 늘 게기판을 보아라. 우리가 생각, 사고, 경험은 늘 불안전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의 지침을 주기 때문에 비판도 우리의 생각과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비춰서 분별해야 한다. 성경에는 "믿어라" 하는 말씀도 많지만 "생각하라" 라는 말도 많이 나옴. 비판하지 말라.. 의미 우리는 자연스럽게 평가하는 것을 한다. 자연스럽다. 평가가 지나쳤을때 비판적인 시각..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 비판하지 말라는 의미가. 어떤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 우리 속에 일어나는 비판적인 시각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존스토트, "검열관같은 비판을 하지 말라." 어떤 사람일 거라는 가정을 하고 검사하는 행위, 무슨 잘못이 있는가 찾는 목적으로 검열하는 모 상대방에 대하여 파괴적이고 부정적이고, 그 사람의 실수를 끄집어 내려고 하는, 누군가의 흠을 내려고 하는 "검열관" 그래서 그 검열관은 누군가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누군가를 가혹하게 판단하면서 정죄하는 일을 하지 말라. 누군가를 비판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판단(심판/정죄)할만한 권세는 우리에게 없다. 고전 4:4-5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비판은 단순 비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하게 우리의 교만으로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이 위험하다. 비판. 누군가를 정죄를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정말 위험하다.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이 틀린 사람이라고 규정짓게 되면 소망이 사라진다.) 유명한 심리학 실험- 소망의 중요 물이 들어있는 상자 하나는 뚜껑을 닫고(빛을 보지 못함), 하나는 뚜껑을 열어놓음. 뚜껑의 닫힌 곳에 있는 쥐 4분 동안 헤험을 치다가 죽음. 뚜경이 없는 곳에 있는 쥐는 36시간 동안 헤험을 친다. 빛을 보며, 쥐에게는 소망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 사람에게 소망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판단에는 소망이 있다. 비판 : 옳고 그름을 따져 그릇된것을 지적하는 것은 심판 : 그 지을 넘어서 상대방을 저주하거나, 정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그 당시 종교지도자를 행해서 많은 비판을 하심. 그렇지만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함. 비판은 사람에 일어나는 너무나 자연적 현상이지만. 그것이 정죄함이 되지 않도록 자녀들을 훈계하고 때린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이 아파야 한다. → 자녀를 사랑하는 훈계이다. 부모의 마음이 아프지 않고 때리는 것은 학대이다. 훈계와 학대. 진정한 사랑은 누군가를 비판하고 지적할 수 있음, 그러나 비판하는 그 가운데 마음이 아프다. 그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때 이다. 공동체는 건전한 비판을 통해서 성장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의 세상에는 비판은 늘 존재한다. . 비판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은 하되 심판/정죄은 하지 말아라. 시몬, 마을의 여자 (창녀).. 이 여자를 향해.. 저런 여자.. 저런 종류의 여자.. 이 사람과 나는 다르다. 그 여자의 불의를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의 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확증하고 싶었다. 여자의 불의를 기뻐하며 자신의 영적 자만심에 불을 집혔다. 나보더 훨씬 큰 죄인이 있는한 나는 하나님 앞에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비판을 즐겨하는 이유 ( 그 사람의 잘 못을 왜 드러내려고 하는지) 왜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하지, 나같으면 저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야. (내 의를 드려내려고 하는 것) 누군가에 대해서 비판, 험담을 할때 우리들의 마음을 들려다 보자. 누간가의 잘못을 나로 하여금 안전감을 주고 죄책감을 사라지게 한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비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잘 못 된것이 부각되어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기적인 발상. 누군가를 이야기할 때, 사랑의 눈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 7:3-4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상대방의 티를 보는 것은 잘 못 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내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 하는것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바라봄의 차이 누군가를 일을 끝내지 않으면 게으르다. 내개 일을 끝내지 않으면 너무 바쁘다고 많은 일에 눌러 있기 때문이다. 다름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수다쟁이라고 하고, 내가 하면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하다. 다른 사람이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쟁이라고 하고, 내가 하면 개성이 뚜렷한 것이라고 하고,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콧대가 높은 사람이라고 하고, 내가 하면 그 순간 나는 복잡하고 많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고, 그가 나에게 친절하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고, 내가 하면 내 유쾌하고 좋은 한 부분이라고 하고,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맹목적인 자기 중심이나,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 광신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전한 이성과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눈을 가지고 판단하고 생각해 보아라. → 중요한 믿음의 원리이다. 디도서 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우리의 문제는 상대방의 문제가 과장되게 보이고 우리의 잘못이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다. 마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외식하는 ... 상대방을 염려하는 것 같으나, 그 속에서는 그것을 기뻐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하는 구나. 상대방에 대하여 외식하는 것이 다 보인다. 들보를 빼고 상대방의 티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티를 보고 자신의 위로받은것.. 신앙적이지 않다. 복음... 상대방의 티를 볼때 그것이 비난의 티가 아니라 사랑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다. 요약 정리 자신의 눈에 있는 훨씬 큰 이 물질을 제거하기 전에는 상대방을 탓하지 말라. 먼저 내면을 바라보고, 내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는데 상대방에 대하여 판단하지 말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 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형제의 잘 못 된 모습을 사랑하며 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티 때문에 그 사람이 얼마나 잘 못 될 지 있을까 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티를 빼러고 노력하는 것은 사랑의 마음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이 안 들으면, 하나님께 맡껴라. 온유하돼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지 말라. 너그러운 사람이 되돼 잘못을 묵과하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믿음위에 서서 우리가 해야 할 것.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 하겠어가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들. 조엘 오스틴, 행복의 힘 어린 시적 아버지 목회 때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 찬양하면 춤을 추는 사람, 친구와 함께 손가락질 하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아버지가 그 사람 간증을 시켰다. 부모없이 혼자 자라나 너무 힘들었던, 늘 자기 인생에 대하여 비관적이었던 이 사람. 어느날, 교회를 나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결혼하고 사업을 하고 삶이 안정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찬양을 하면 손과 다리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찬양합니다. 그 간증을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이유가 그 사람에게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내 들보를 빼야. 그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눈으로 보고 비판, 정죄하지 말고 그 사람을 사랑해 주자.
오승훈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연구실에서 이야기 중에 안수현, 바보의사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 중에 바보의사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검색창에 "의사 청년, 고대, 예수" 라는 키워드로 찾아보니, 안수현님에 대한 검색결과들이 나왔다. 아래 두개 블로그 글을 읽어보았다. 아~~~ 소개한 글인데도 은혜가 된다. 첫번째 블로그 글 : https://blog.naver.com/anita731/130186199749 두번째 블로그 글 : https://blog.naver.com/sychae5002/10110954549 위 블로그에서 소개된 안수현님의 책의 내용의 일부 다른 사람들을 인식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반응만을 의식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제약 가운데 갇히지만,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주님께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다른 청중을 의식하는 데서 돌이켜 오직 최후의 청중이요, 최고의 청중인 '단 한분의 청중(An audience of One)'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겠다는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존재할 때, 우린 눈문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릴 수 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기뻐할 수 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주님은 "너는 내 사랑하는 자니라." 라고 말씀하시며 두 팔을넓게 벌려 우리를 맞으신다. 나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시며 말씀하신다. "잘 했구나,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단 한명의 청중'으로부터 듣는 그 사람의 음성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이것이 내가 사는 이유가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만 내주라고 고백하며, 주님께만 시선을 둔다고 고백한다. 주님 한분만으로 기쁘다고 찬양한다. 그러나 문제를 만나면,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혹은 나를 공격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의견에 반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언행에 대해서 반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진리라고 믿는 것에 반하는 것을 만나면, 왜 나는 그 사람을 의식하게 되는 걸까? 안수현님의 말하는 것 처럼, 내가 다른 사람을 인식하기 때문일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가까? 안수현님의 문장에서 깊게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제약가운데 갇히지만,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주님께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이 문장을 곱씹어본다. 인식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을 하나님만 두었을때 자유하게 될 까?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 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진리" 이시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반문을 하면서 깨닫게 된다.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사람일 때, 그 대상은 선하지도 온전하지도 진리도 아니끼 때문에 불안할 수 밖에 없음이 이해가 된다. 안수현님의 책을 한번 읽고 싶다. 우리 아들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
오승훈
인생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요셉의 웅성이
말씀 링크 : https://youtu.be/-rfJFaPnxiQ?si=1TGNf8f9ySf1NW2K 추후에 정리하자..
오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