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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 점 하나를 빼고 살자
성민교회holypeople
상담학을 배울 때에 자주 들은 이야기입니다.
4.5와 5가 있는데 4.5는 5앞에만 서면
늘 작아지고 주눅이 드는 느낌인겁니다.
5보다 0.5 작은 자신을 늘 의식해야만 했기 때문에...
5는 그런 4.5를 잘 조종할 줄 아는 겁니다.
자신이 필요한대로 심부름도 시키고 야단도 치고
그야말로 부하노릇을 제대로 시키는데
4.5는 속으로는 궁시랑 대면서도,
아무런 불만도 표현할 수 없는 게
5의 모습이 너무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4.5가 어느 날 부턴가
5의 말을 듣지 않고 반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부름도 하지 않고 위협해도 코웃음을 치고 마는,
확연하게 달라진 4.5의 변신에 궁금해진 5가 물었습니다.
"너 왜 이러는데?"
4.5가 말하길 "나 점 뺐다!"
4.5가 점을 빼고 보니 45가 되어 5가 만만해 보였던 겁니다.
어디 이 이야기에서 뿐인가요?
누구나 가슴 속에 점이 찍혀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45인 것을 잃어버리고
5라는 세상의 환경에 주눅이 들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동화 닭장속의 독수리처럼.
닭장 안에서 부화되고 그 환경에서 자란 독수리 새끼는
자신이 하늘을 힘차게 날 수 있는 독수리임을 잊고
독수리의 용맹스러움과 자유를
부러워만하며 닭장 안에 갇혀 닭으로 살게 되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닭의 새끼로만 학습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45의 가능성으로, 독수리로, 이 세상에 왔다는 뜻일 텐데,
많은 사람들이 4.5처럼 그리고 닭장속의 병아리처럼 살아갑니다.
상담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성인아이(adult child)'라고 부릅니다.
성인이 되었어도 미숙한 어린이처럼 대인관계나 일에 무책임하고
자신감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고 수치심에 입각한 눈치보기식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 가슴속의 '눈치꾼 어린아이'라는 큰 점을 빼지 못하고
남이 나를 무엇이라 하는가에 온 신경이 집중돼
평생 자신의 진면목을 보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이제 가슴속 점 하나를 빼고 살기 바랍니다.
그건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holy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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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거기엔 이유가 있다
아 침시간 창세기 32장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천사가 "홀로 남은 야곱"의 환도뼈를 친 이야기가 마음 한 곳의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본래 생체학적으로 환도뼈는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를 가리키는데, 이 뼈는 인체에서 가장 강한 부분이고 웬만해선 환도뼈와 그 주위에 있는 근육이 손상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이 부분에 손을 얹고 서약했으며 병사들은 이 부분에 칼을 찼고 당시 생활 풍습에서 사람이 넓적다리를 치는 것은 가장 깊은 슬픔과 수치, 후회의 표시였기도 했다고 합니다(겔21:12). 한 마디로 환도뼈는 그 사람의 먹고 사는 직업과 삶~, 그 사람의 신분과 명예를 상징하는 곳이었다는 겁니다. 출29:27 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민6:19-20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야곱의 사건은 이미 위 제사방법을 통해 예견된 것이었고, 실제적인 적용을 보여 주신 예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영적인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강한 부분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것이 고집과 자존심일 수도 있고, 세상 명예와 권력과 부를 취하기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일 수도, 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 처세일 수도 있으며, 세상학문과 헛된 우상과 철학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건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 가족을 두 떼로 나뉘어 앞에 보내놓고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도망치려고 했던 야곱의 생명을 주님께 맡기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맡김은 우리를 향한 깊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내 반응이고 말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어떤 삶의 자리이든 이 맡김의 축복을 누리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맡김을 통해 살아가며 삶의 아픔을 당하지 않는 지혜를 가지시길 바라고 만약 그 아픔을 당하는 성도가 있다면 내게 은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기회인줄 알고 더욱 더 믿음으로 자신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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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며 사는 게 삶이라면….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나이 지긋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은행의 현금 인출기에서 10만 원의 돈을 찾으려 했는데 20만 원이 나왔어. 기계의 잘못으로 10만 원이 더 나온 것이지. 그러면 자네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학생들의 의견은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은행 직원에게 사실을 말하고 돈을 돌려주겠다는 학생들, 다시 말해 돈 때문에 양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돈을 갖겠다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돈을 돌려주겠다는 것은 강의실 안에서 대답일 뿐,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게 웬 행운이냐며 그 돈을 갖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참으로 솔직한 대답인 겁니다. 그때 한 학생이 교수님께 “교수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은 겁니다. 그때 교수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 같으면 한 번 더 해보겠네.” 철학과 교수의 답변치곤 참으로 엉뚱하고 너무나 솔직합니다. 그러나 교수의 대답이 가장 인간적인 대답이 아닐까요?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사람 심리에 가장 가까운 것은 ‘한 번 더 해보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 후배가 찾아와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 중 제일 힘드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하다가 그에게 해 주었던 대답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을 겪게 되고, 그런 일들 속에는 실망스러운 일이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믿었던 사람에게서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니더군요. 하루하루 사람들에게서 실망을 느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문이 닫히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믿을 사람이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끝내 사람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선택, 바로 그것에 우리의 희망이 달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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