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시도때도 없이, 정신줄 놓고 먹을 때는 좋았는데, 명절 후 저울에 올라 갈때부터 우리의 악몽이 시작됩니다.
나의 심리적 허용치를 엄청나게 상회하는 비현실적인 수치를 확인한 순간부터 후회와 죄책감부터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까지 다양한 감정이 뒤섞입니다.
체중계는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을까..
체중계가 표시하는 받아들이기 힘든 숫자. 과연 내 진짜 체중 일까요?
늘어난 체중이 우리가 우려한대로 다 살(지방) 즉 지방이 저장 것 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히 아닙니다.
체중은 우리 몸의 복잡한 구성을 단순하게 '무게'의 숫자로 나타내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단기간의 체중 증가가 종종 지방 늘어난 것으로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바디도 사정은 비슷한데 역시 키와 체중을 반영한 환산값일 뿐 인체 구성 성분의 정확한 양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생리적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일시적인 체중의 증가는 결국 수분의 증감이라는 걸 잘 알수 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명절에 수분이 늘어나는 걸까요?(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참나!)
범인 1. 과식
우리는 명절 연휴 동안 오랜만에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가족, 친척, 친구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평소의 식습관과 자제력이 무장해제 되어 버립니다. 거기에 매 끼니마다 화려한 명절음식, 외식, 간식의 융단 폭격이 계속 됩니다.
할머니는 내가 100키로 넘어도 말랐다고 하십니다.
너무 잘 아시다 시피 명절음식은 우리가 평소에 질겁하며 피해다녔던 탄수화물과 당분, 식물성 지방을 잔뜩 사용한 음식이 많습니다.(왜 하필 또 맛있고 난리 ㅠㅠ) 이게 또 보통음식인가요? 우리가 20년 넘게 먹어왔던 정서적 가치와 전통이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부하기 더욱 어렵습니다.(솔까 미필적고의도 한 스푼 ㅎㅎ;;) 우리나라 처럼 먹는 것에 진심인 나라의 명절이라니... 한마디로 '합법적으로 마음껏 먹는 기간'인걸요...
추가로 명절때 만난 가족들에게 한마디씩 덕담(?)을 들으면서 밀려오는 우울감과 감정스트레스도 나를 더 먹게 합니다.
명절에 만날 수 있는 화려한 라인업
왜 고모친구아들과 딸들은 그렇게 잘났을까요?
범인 2. 글리코겐(탄수화물)
사실 명절 체중증가는 우리몸 에너지의 생화학적 저장 메커니즘 중 하나인 글리코겐이 주범입니다. 글리코겐은 체내에서 포도당의 주요 저장 형태 역할을 하는 다당류입니다. 간과 근육에 저장되는 글리코겐은 우리 몸이 급하게 에너지를 써야 할 때가장 먼저 빠르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입니다. 글리코겐은 저장 될 때 반드시 수분과 함께 저장되는 데, 글리코겐 1그램당 수분은 그 3배인 3~4ml 를 몸에 담아 둡니다.
글리코겐 1g 당 물 3ml 가 함께 저장됩니다
간단히 계산해서 명절 후 체중이 2킬로 늘어 났다면 밥을 2킬로 먹은 게 아니고 500그램의 밥을 먹었어도 1.5킬로의 수분을 함께 저장했기 때문에 체중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명절에는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과 간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글리코겐 저장량이 평소보다 증가합니다. 특히 우리 같은 키토인들은 평소에 식단을 통해 글리코겐을 보통 사람보다 적게 저장 하는 것에 익숙해 있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저장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글리코겐에 비례해 체내 수분 보유량이 크게 증가하여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체중이 갑자기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즉 늘어난 체중계의 숫자는 지방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증가한 체내의 물과 에너지의 혼합물일 뿐입니다. 글리코겐 저장과 관련된 체중 증가는 실제 지방 축적보다 훨씬 덜 우려되며 되돌리기도 훨씬 쉽습니다.(너무 걱정 마세요!!)
펠프가 한 번 훈련에 소모하는 식사량
글리코겐 저장은 몸의 생존 측면에서 보면 필수 요소인 에너지와 수분을 동시에 저장함으로써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훌륭한 대비 책입니다. 실제로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마라톤의 황영조와 이봉주, 수영의 펠프스와 같은 '극한의 한계'에 도전하는 초일류 선수들은 글리코겐의 저장량을 늘리는 트레이닝을 필사적으로 합니다.
우리가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명절 동안 '식욕의 한계'에 도전 했기 때문에 충분히 알 자격(?)이 있습니다!!
범인 3. 소금
명절음식 즉 한식은 나트륨 양이 높은 편입니다. 평소보다 음식을 자주-많이 먹는 기간이니 당연히 체내에 나트륨 양도 많아집니다. 키토인이라면 적당한 소금물이 약이 되지만, 일시적 탄수인(?)에게 증가한 나트륨은 잉여수분의 양을 늘려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국물 요리가 많은 한식의 나트륨 양은 많은 편입니다.
또한 명절에는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방바닥이나 쇼파와 한몸이 될정도로 움직임이 거의 없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땀흘릴 기회(?)도 별로 없어서 평소보다 수분요구량도 높지 않기 때문에 수분섭취와 배출이 잘 이루어 지지않아 수분의 양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당연히 체중+)
이게 쉬는 건가...
범인 4. 수면과 배변 그리고 스트레스
명절엔 평소 여유가 없어 미루던 것들(게임, 영화나 드라마 몰아보기 등)을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데 때로는 잠을 아껴가면서 놀기도 합니다. 밤새 놀면서 야식먹고, 아침 내내 자다가, 점심 쯤 일어나서 또 먹고. 수면 루틴이 깨지기 시작하면, 식욕의 증가와 더불어 배변의 루틴도 틀어지는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먹은건 많은데 배출되는게 없으니 당연히 체중이 늘어나는 수 밖에요...
명절은 없었던 일로...
체중계 숫자에 당황했을 때,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나에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바로 배고픔과 금욕의 감옥에 가두거나 숨차고 지치는 강제 노역형에 처하는 징벌적 단식과 운동으로 나를 괴롭히는 분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많이 경험해보셨겠지만 슬프게도 이 방법은 건강하고 어릴 수록 효과가 좋고, 몸이 약하고 나이를 먹을 수록 효과가 점점 떨어집니다.(에이징커브)
운동으로 조질 수(?) 있는 건 30대 초반 까지 입니다.
여러분은 잘못한게 없습니다. 명절은 그냥 잘먹고 잘쉬라고 세팅된 역사적, 문화적, 환경적 세팅입니다. 이걸 이겨내는 독한(?)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내 식단이 실패한건 아닙니다.
학교 시험끝나고 친구들하고 떡볶이 먹고 코노 몇 번 갔다고 수능을 망치나요?다시 일상적으로 돌아와서 학교가고 학원가고 독서실 다니면서 또 열심히 공부 할수 있는 하나의 좋은 '동기부여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명절때 잘 쉬고 잘 먹었으니까 식단도 다시 잘 할 수 있습니다.
공부 열심히하고 한번씩 일탈할수도 있죠..
물론 명절 후 나태함의 관성으로 쭉 비슷한 생활을 이어간다면 늘어난 체중은 진짜 나의 몸의 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글리코겐 탱크가 차있다는 건, 우리 몸 입장에서는 당분간 저장된 지방을 꺼내 쓰지 않아도 먹고 살만하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진 않아도 됩니다. (잘못한게 없잖아요! 잘해오고 있었잖아요!)
우리가 잘 해왔던 키토식단의 루틴으로 다시 돌아가면 체내 글리코겐 수치와 수분수치가 정상화 되면서 명절이전의 상태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키토식단을 했던 첫 날의 전날도 탄수인이었잖아요?
오늘부터 다시 키토인 1일 하시면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충분히 잘 먹고, 잘 자고, 잘싸면서 마음도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키며드세요.
여기에 적당히 수분 섭취를 늘려 저장된 수분을 배출하는 것을 유도하고, 저장된 글리코겐을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해 가벼운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