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누명으로 시작된 키토제닉 식단의 붐(?)이 잦아든 것 같지만, 다이어트 프로그램에서는 저탄수화물의 기조는 확실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지방의 누명이 쉽게 벗겨 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ㅎㅎ)
그간 많은 분들이 저탄수화물식단, 키토제닉 식단을 시도해보셨고 성과가 좋았던 분들, 그렇지 못했던 분들도 계시죠. 그렇게 '빠'가 생기고 '까'가 만들어 지기도 하고 지금은 그런 시기인것 같습니다.
제가 한가지 우려 되는 점은 범위가 작은 '성공경험'혹은 '실패경험'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콘텐츠에 담긴 지식의 무게 보다 훨씬 무겁게 소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카페에 달리는 댓글만 해도 좋은 경험 나눠주시는 분들 많지만, 한 번씩 '이게 키토에요?' '많이 드셨으니까 찌죠...' 와 같은 시니컬한 태도의 댓글들 이면에 본인의 '작은 성공경험'이 있거든요. 이렇게 위축되고 나면 본인의 식단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더 나아가서 동기부여가 안되서 결국 포기하거나 안 좋은 방향의 키토인듯 키토아닌 식단을 하게 되거든요(feat. 에그패스팅, 저칼로리 키토제닉 등)
정말 나를 위한 조언이라면 (키보드로)총 쏘지말고 어깨를 두드려 주세요.
저와 상담하면서 키토 N회차를 시작하신 분 중에도 SNS에서 유명한 다이어트 인플루언서의 조언을 따라 했다가 오히려 잘못된 키토식을 하시고 건강이 나빠진 분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그 분이 워낙 유명하고 본인도 성공했다고 하니까 믿었는데..."
예전엔 키토 카페만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의발달로 더 쉽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 방법들이 마치 절대적 진리처럼 퍼져나가기 쉬운 구조 입니다. 깎아낸 듯 잘 다음어진 몸이나 마르디 마른 몸을 가지고 키토식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며 여러 사람들을 현혹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가 오히려 잘 소비됩니다.(제가 그런 몸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단호! ㅎㅎㅎ;;)
물론 진짜 키토식으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죠.
이 분들의 콘텐츠를 보다보면 하나의 의문점이 들곤 합니다.
'저사람은 키토아니더라도 몸짱이었을 것 같은데?' 혹은
'겉은 멀쩡한데 진짜 건강한건 맞을까?'
그리고 직접 컨설팅까지 받아보신 분의 경험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본인이 정의하고 제시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프라이드가 넘치다 못해 과했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때 수행과정에 임하는 자세와 여건에 대한 탓을 하는 경우가 많았구요. 말로는 100이면 100키토 라고 하면서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요?
알면 알수록 겸손해지는 이유: 더닝-크루거 효과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10년 전, 저는 110kg였습니다. 당연히 안해본 다이어트보다 해본다이어트가 많고, 다이어트 약도 여러가지 써봤습니다. 수많은 실패 끝에 키토제닉 식단을 만났고, 1년 만에 35kg을 감량했죠. 그때의 자신감이란... 마치 다이어트의 모든 것을 꿰뚫은 것 같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제 방식을 강력히 추천했고, 다른 방식은 다 틀렸다고 단언했습니다.
지하철에서 통통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도 키토제닉을 하면 살을 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회사의 다른부서 사람에게 다가가 조언을 하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의 저는 제가 특별한 진리를 발견했다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너무 부끄럽네요.)
하지만 직업적으로 일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과 상담하고 깨달았습니다. 제 성공(?) 비결이 모두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오히려 제 방식을 고집하다 실패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같은 키토제닉 식단을 따라 했는데도 어떤 분은 쉽게 성공하고, 어떤 분은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죠.
더닝-크루거 효과_키토편
인류학·사회학·역사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윌리엄 이안 밀러가 그의 저서 'Humiliation(굴욕)'(1993)의 내용 중
"지적 무능력의 핵심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이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지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것을 상당 부분 치료하게 될 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해보면,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진짜 무능함의 증거다"라는 것입니다.
초보 운전자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운데요. 운전을 못하는 초보 운전자 중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아, 나는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 조심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무슨~ 나는 운전 잘해!"라고 생각하는 사람. 당연히 실제로 더 위험한 사람은 두 번째입니다.
자신이 서툴다는 걸 아는 사람은 조심하고 배우려고 하지만, 자신이 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죠.
그래서 이 말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장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발전의 첫걸음을 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우매함의 봉우리'로 유명한 '더닝-크루거 효과'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더닝-크루거 효과를 이해하고 이를 경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용어도 어려운)인지 편향, 인지왜곡, 인지부조화는 사람인 이상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등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성공경험을 권하거나 강요하는 건 위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신중하고 섬세하게 이루어 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본인의 모습이 매력적(?)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어떤 분야라도 실제 경험이 쌓이기 시작하면 하늘 을 찔렀던 자신감이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내려오는 게 정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선함을 믿어봅시다. ㅎㅎ(만약 내려오지 않는 사람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우리가 소위 '방구석 여포'라고 부르는 사람이 되는 거죠.) .
"나도 해봐서 아는데..." - 자신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할 때 놓치는 것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이 자주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의 몸이 다르다'는 기본적인 사실실입니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The Lancet'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식단을 따라도 개인별 체중감량 효과는 최대 4배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개인차가 큰 것이죠. 하지만 이것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제법 큽니다.
우리의 기초대사량, 호르몬 상태, 심지어 장내 미생물의 구성까지 제각각 다릅니다. 동일한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혈당 반응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같은 운동을 해도 사람마다 몸의 반응이 각각 다르죠.
여기에 더해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과 현장에서 몸을 쓰는 근로자의 상황이 같을 수 없죠.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도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집에서 식사를 준비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출퇴근 시간이 길어 도시락 준비조차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이어트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고 싶어하고, 다른 누군가는 근력을 키우면서 체지방을 감소시키길 원합니다. 특정 질환 관리를 위해 식단 조절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운동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죠. 이처럼 각자의 목표와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한 가지 방법이 모두에게 통할 수 있을까요?
경험만랩 vs 이론만랩
이론과 실제는 분명히 다릅니다.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에서 경험으로 체득하는 지식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죠.(인정합니다)
실제로 기술적 수행 차원에서 고학력자들이 근접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장인 수준에 이르는 무학력자 또는 저학력자들도 세상엔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세상은 넓고 달인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경험만을 맹신하거나 이론만을 고집하는 것 모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리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 셰프는 이론적으로 모든 재료의 조합, 맛의 균형, 플레이팅 기법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주방에서 시간 압박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요리하는 데 서투를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포츠 과학을 박사과정까지 마친 신입 코치는 훈련 이론, 체력 강화 프로그램, 부상 방지 기법에 대한 깊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선수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즉각적인 전략을 짜고 대응하는 데 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을 다 뛰어넘는 천재들은 어느 분야건 존재합니다 ㄷㄷㄷ)
경험과 전문성이 쌓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키토꼰대'의 전형이었던 저도 더 많은 실패 사례를 접하면서 제 확신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키토제닉 식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오히려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영양학자 마리온 네슬의 말처럼, "영양학의 가장 큰 함정은 지나친 단순화"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는 '키며든다'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키토식의 장점을 극대화 하고, 실패의 위험도를 최소화 하려면 내 생활에 키토식을 녹여야지 키토식에 나를 녹이면 안됩니다.
같이가자, 각자의 속도로
최신 연구들은 다이어트 성공의 핵심이 '개인화'와 '지속성' 에 있다고 강조합니다.(건강식단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국 국립보건원(NHS)의 2023년 가이드라인에서도 "개인의 생활습관과 선호도를 고려한 맞춤형 접근"을 권장하고 있고, 미국 CDC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다이어트 성공률은 방식보다 지속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즉,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거죠.
진정한 전문가는 자신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고인물)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경험을 겸손하게 공유하고 상대방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조언자'의 모습이 아닐까요?그리고 무엇보다, 식단의 완성도가 결코 그 사람의 가치나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가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 상대방의 상황과 걱정거리를 먼저 들어보세요. 때로는 조언보다 공감이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적 있어요"라는 한마디가 "이렇게 해야 되는데요?"라는 충고보다 더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다이어트는 마치 여행과 같습니다. 목적지는 같더라도, 가는 길은 여러 개일 수 있죠. 어떤 사람은 고속도로를, 어떤 사람은 시골길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페이스와 선호도를 존중하면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공 경험은 귀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정답이 될 순 없다는 걸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신 당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정한 조언의 가치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조언을 구하는 입장에서도 질문을 할 때 맥락도 함께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몸무게가 몇인데 몇이 목표다'도 중요한 정보지만 나이와 성별, 평소 생활습관, 스트레스 요인 같은 정보들이 오히려 더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수 있거든요.
그 동안 경험했던 부작용이나 힘들었던 점, 걱정하는 것들 까지 솔직하게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정보들이 다른 사람의 현실적인 판단과 조언에 있어서 '대답의 포커스'를 맞추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