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In
해봄의 아카이브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일까, 사고의 근간일까?

Haebom
지난 글을 쓰고 친구들과 함께 언어란 무엇이고 생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보게 됩니다.
오랫동안 철학자들은 언어의 목적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플라톤은 사고가 "영혼과 자신이 나누는 내적 대화"라며 언어의 중요성을 역설했죠. 촘스키 같은 현대 학자들도 언어가 사고와 추론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신경과학계에선 이에 반기를 드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MIT의 인지신경과학자 이블리나 페도렌코 박사가 대표적인데요. 그녀는 fMRI로 사람들의 뇌를 스캔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언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이 사고나 문제 해결 시에는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거죠. 페도렌코 박사는 "언어가 사고에 꼭 필요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뇌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언어 능력을 잃은 실어증 환자들도 수학 문제를 풀거나 체스를 두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하네요. 이런 연구들은 언어가 사고에 필수 불가결한 건 아니란 걸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언어의 주된 목적은 무엇일까요? 페도렌코 박사는 단호하게 '소통'이라고 말합니다. 자주 쓰는 단어일수록 길이가 짧고, 문법 규칙이 단어들을 의미상 가깝게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네요. 마치 정보 전달을 최적화하기 위해 언어가 진화해 온 것처럼 보입니다.
자, 그럼 이제 요즘 인공지능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LLM의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LLM은 방대한 양의 텍스트로 학습한 덕분에 인간처럼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합니다. 마치 인간의 '언어 네트워크'를 완벽히 흉내 낸 것 같죠.
하지만 정작 추론이나 문제 해결 능력은 한참 부족한 모습입니다. 언어와 사고를 별개로 보는 페도렌코 박사의 이론으로 보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LLM은 언어라는 도구는 훌륭하게 습득했지만, 그 도구를 활용해 사고하는 능력은 발달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죠.
물론 이 연구가 언어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루이빌 대학의 가이 도브 교수의 말마따나 "언어는 사고를 향상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에 대한 대화를 떠올리곤 하잖아요?
언어 네트워크: 실험 참가자들은 언어 작업을 할 때 특정 뇌 영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 영역은 시간이 지나도 동일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고 네트워크: 같은 참가자들이 퍼즐을 풀거나 다양한 사고 작업을 할 때는 다른 뇌 영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어 네트워크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실어증 환자: 뇌 손상으로 언어 네트워크가 손상된 사람들도 여전히 산술을 하거나 체스를 두는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언어가 사고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추가적인 증거였습니다.
중요한 건 언어가 유일하거나 필수적인 사고의 도구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훨씬 더 근원적인 방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고, 또 그래 왔습니다. 아기들이 언어를 배우기 전부터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이는 자명해 보입니다.
LLM을 보면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 과연 무엇일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넘어, 그 정보를 창의적으로 조합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힘 말이죠. 앞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성장해 나가기 위해선 '언어'와 '사고'라는 두 날개가 모두 필요하지 않을까요?
Subscribe to 'haebom'
Subscribe to my site to be the first to receive notifications and emails about the latest updates, including new posts.
Join Slashpage and subscribe to 'haebom'!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