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In
해봄의 아카이브

누군가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일상을 비교하지 말자

Haebom
예전에 <정리하는 뇌>(원제: The Organized Mind)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서 어떻게 머리 속의 정보들을 정리할까 고민을 하던 저에게 되게 재미있는 관점들을 전해준 책이였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도입부가 있습니다. (당시 책을 읽고 요약한 것)
인쇄기가 도입된 것은 1400년대 중반이다. 고되고 실수도 많은 필사 작업을 인쇄기가 대신하면서 문자를 좀 더 신속하게 확산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인 삶은 이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1525년 에라스무스는 벌떼처럼 쏟아지는 새 책들을 대해 장황한 비난을 늘어놓았다. 그는 이것이 학습에 심각한 장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쇄기는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 세상을 “멍청하고, 무지하고, 악의와 중상모략으로 가득하고,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불경하고 미친” 내용으로 가득한 책들로 채우려 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라이프니츠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양이 끔찍할 정도로 계속 늘어나면 결국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불평했다. 데카르트가 그동안 쌓여온 책들은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관찰에 의지하라고 충고한 것은 유명하다.

책이 급격히 확산되는 것에 대한 불평은 1600년대 말까지 계속 이어졌다. 지식인들은 사람들이 책 때문에 서로 대화하지 않게 될 것이고, 쓸모없는 어리석은 생각들로 마음을 오염시키며 책에 파묻혀 살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그리고 우리도 잘 알고 있다시피 이런 경고는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TV가 발명되면서 그랬고, 컴퓨터, 아이팟, 아이패드, 이메일, 트위터, 페이스북이 발명되면서 그랬다. 이런 것이 등장할 때마다 중독을 야기한다는 둥, 불필요하게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둥, 실제로 사람을 만나 실시간으로 생각을 교환하는 능력을 떨어지게 만든다는 둥의 말로 매도했다.

<정리하는 뇌> 44~45p
사람의 뇌라는 것은 원래 정리를 잘 못하는데 이런 특성을 가진 뇌에게 정보를 과도하게 주입하면 인간은 정보에 파묻혀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는 책, 게임, 인터넷, 유튜브, 틱톡 등으로 계속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책을 보면 뛰어나고 틱톡이나 유튜브 숏츠, 릴스를 보면 도파민 중독이니 뭐니 하고 있죠. (사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원래 인간은 도파민과 세로토닌으로 살아갑니다. 숏폼 콘텐츠가 없었을 땐 유튜브가, 유튜브가 없었을 땐 SNS가, SNS가 없었을 땐 인터넷이, 인터넷이 없었을 땐 책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 계속 이야기거리를 제공했습니다.
TVaddictionIsNoMereMetaphor.pdf237.91KB
2003년에 미국에선 TV Addiction(TV 중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TV에 중독되어 있고 수면도 방해 받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저하되고, 뇌에도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각종 논문과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당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3시간씩 TV를 본다고 했고 이는 여가 시간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는 것이였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TV에 대해 안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바보 상자니 부터 해서 다양한 부정적인 담론이 나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공간도 TV 속 뉴스였던 것 같습니다. 뉴스는 좋지만 다른 TV쇼는 안좋다는 거 였을까요? 여하튼 당시에는 TV 시청 습관을 제어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가족은 의식적인 노력과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위의 당시 특집기사를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TV 시청이 지속되면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비구조적 시간에 대한 인내심이 저하됩니다." 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이군요. 심지어 저기에는 비디오 게임은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TV를 일방적으로 시청하는 것 보단 긍정적이라는 말도 있네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TV를 안보는 습관을 들여서 우리는 이제 TV를 안보나요?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을 하고 유튜브를 보는 걸까요? 그리고 인터넷, 게임을 하는 시간을 줄이는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SNS와 숏폼에 더 시간을 쏟는 걸까요?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더' 재밌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도파민이 어쩌고 보상 심리가 어쩌고 하며 숏폼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럼 숏폼은 끊고 긴 유튜브 영상을 보면 더 나은 삶일까요? 조금만 찾아봐도 유튜브 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많습니다. 그럼 게임, 소셜 미디어는요? 상호작용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늘 중독이니 뭐니 하며 비난의 화살을 받아 왔습니다. 그럼 이런 디지털 기기를 끊고 아날로그로 돌아가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사는 걸까요? 화투, 포커, 홀덤... 아니 이건 도박이니까 뺍시다. 그럼 자연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는 무자극의 삶으로 살면 좋을까요? 읽으면서 느끼셨을 껍니다. 이거 너무 비약이 심한거 아니야? 그래서 말하고 싶은게 뭔데?
사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반합(正反合) 입니다. 뭐든지 과하면 안좋고 덜하면 아쉽습니다. 인류는 살면서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 끊임없이 콘텐츠가 있는 곳을 이렇게 부르곤 합니다.)을 계속 경계 했습니다. 이는 도파민 때문도 아니고 세로토닌 때문도 아닐 것 입니다. 그냥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고 이 위에서 뭐라도 해야하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도 너무 잘 보이는 시대이다 보니 이걸 더 뼈저리게 느끼는 것일 겁니다. 이에 한 번의 행동으로 크나큰 보상을 얻는 행위를 경험하고 이것에 빠져 다른 것에도 적용하여 무언가를 쉽고 빠르게 얻으려는 행위를 경계 하는 것이죠. 이것은 숏폼 콘텐츠의 탓도, SNS의 탓도, 인터넷의 탓도 아닙니다. 인간 자체가 그렇게 설계 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디가서 늘 말하는데 그냥 도둑놈 심보를 버리면 됩니다. "한 번의 행동으로 큰 보상을 얻는다."라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이기 때문입니다. 티비를 틀면 방송이 나오고, 손가락을 올리면 자극적인 영상이 나오고, 페이지를 넘기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유행이고 형식일 뿐입니다. 콘텐츠는 한 번의 행동으로 큰 보상을 받는다고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뒤에서 어마어마한 노력과 재능을 갈아서 만들곤 합니다. 우리는 간혹 누군가의 하이라이트를 보고 그것과 우리의 일상을 비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지금 896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쯔양의 첫 방송 스크린샷 입니다. 지금은 방송을 틀면 수천명이 라이브를 보고 수십만의 조회수가 찍히는 유튜버지만 2018년 그러니까 5년 전에 그녀는 자신의 방송을 한 명도 보지 않아서 먹는 것을 시작도 못하는 먹방 유튜버 였습니다.
숏폼을 보건, 웹툰을 보던, 판타지 소설을 읽던, 인터넷 방송을 보던, 유튜브를 보던 블로그를 읽던 모든 것은 우리가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잃지 않는 선에서 방향을 잘 정하고 꾸준히 하면 결국에는 무언가 될 것 입니다. 그냥 한 주를 마무리 하며 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ubscribe to 'haebom'
Subscribe to my site to be the first to receive notifications and emails about the latest updates, including new posts.
Join Slashpage and subscribe to 'haebom'!
Subscribe
1
영미
모든 것은 우리가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잃지 않는 선에서 방향을 잘 정하고 꾸준히 하면 결국에는 무언가 될 것 입니다.
요즘 해봄님 아카이브 읽는 게 꾸준한 기쁨
👍
1
See lates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