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어떻게 디지털 금본위제가 되었나?
2025년 7월, 암호화폐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써 내려갈 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습니다. 바로 지니어스 법(GENIUS Act, Guardrails Ensuring National Interest, Utility, and Stability Act)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규제법안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현대의 ‘디지털 금본위제’라 불리는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전환점이라고 생각됩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지한 이후, 달러는 더 이상 금과 연결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기축통화로 자리 잡게 되었고, 우리 모두는 ‘달러가 곧 금’인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 현재, 저는 이 흐름이 다시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디지털 자산이 달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요. 스테이블코인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에 강한 규제를 시도하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스테이블코인의 성격을 다시 짚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 전 세계 M2 통화량은 55.48조 달러에 달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막대한 유동성은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 우려를 낳았고, 실제로 달러 지수(DXY)는 2025년 상반기에만 10.8%나 하락했습니다. 이 와중에 암호화폐 시장은 넘쳐나는 달러를 흡수하는 ‘디지털 블랙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죠. 테더(USDT)의 시가총액은 1,430억 달러를 돌파했고, USDC 역시 580억 달러 규모입니다. 이들의 연간 거래량은 무려 27.6조 달러에 이르는데요, 이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합산 거래량을 초과하는 수치입니다. 저는 이 데이터를 보면서,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편리한 결제 수단’ 그 이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글로벌 결제 인프라의 일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거죠. 디지털 트리핀 딜레마: 스테이블코인의 모순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상황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입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들은 건 대략 2017년쯤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좀 낡은 이론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자산이 본격적으로 달러를 빨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이 개념이 유효하게 느껴졌습니다. 1960년대 경제학자 로베르 트리핀은 기축통화국이 직면하게 되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죠. 달러는 전 세계에 공급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신뢰도와 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양립 불가능한 조건 말입니다. 지금의 스테이블코인은 이 딜레마의 디지털 버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유동성 공급을 위해 대규모 발행이 필요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의 주권을 잃어가는 셈이니까요. BIS에 따르면, 미국 외 지역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유통되는 ‘그림자 달러’ 규모는 무려 13.2조 달러에 달합니다. 미국의 직접 통제가 닿지 않는 영역에서 달러가 별도로 유통되고 있다는 의미죠. GENIUS Act의 핵심 조항과 숨겨진 의도 겉으로는 소비자 보호와 시장 건전화처럼 보이지만, 저는 이 법안의 핵심이 달러 통제력 회복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요 조항을 보면 그 의도가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미국 관할 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은행과 국가 허가 기관으로 제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은 1:1 달러 예치금으로 보장 외국 발행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술적 통제 권한 확보(동결, 소각, 차단) 결국 이는 ‘디지털 수도꼭지’를 만들어,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흐름을 장악하겠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 시나리오: 디지털 닉슨 쇼크 가능성 이 법안이 현실화되면서, 저는 ‘만약 미국이 진짜로 스테이블코인의 수도꼭지를 잠가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기술적으로 이미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동결 및 소각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비트코인, 이더리움은 물론 전체 암호화폐 시장이 유동성 위축으로 큰 충격을 받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는 이 혼란이 일종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죠.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제를 중단하며 달러 중심 질서를 구축했던 것처럼, 디지털 시대에도 통화 패권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건 2017~2018년경이었습니다. 그때는 ICO 광풍 직후였고, USDT의 준비금 의혹도 한창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게 진짜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줄까?” 싶었지만, 지금 보면 그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고 현실적인 고민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중간 매개가 아니라 글로벌 유동성 저장소로 진화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CBDC 개발이 본격화되며 디지털 통화 패권 경쟁이 시작됐다
- Haeb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