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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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it Han
켄 키지, 민음사
1부
만성 환자들은 나처럼 잘 먹기만 하면 거동할 수 있는, 스스로 보행 가능한 환자들을 비롯하여 휠체어를 타는 환자들, 식물인간들,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만성 환자, 아니, 대다수의 환자들은 고치려고 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내부적 결함을 지닌 기계들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결함이 있든, 단단한 물건에 수없이 부딪혀서 머리에 고장이 났든, 오랜 세월 녹이 슬대로 슬어 녹물이 줄줄 흘러내릴 즈음에야 병원으로 끌려온다.
그런데 만성 환자들 중에는 의사들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증상이 심해진 이들이 몇몇 있다.
“닭들이 동료 닭의 몸에 피가 조금 난 걸 보고는 그것을 쪼려고 우르르 갑니다. 그 닭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쪼아 대는 거요. 급기야 피가 철철 흐르고 뼈가 드러나고 깃털이 뽑혀요. 하지만 그런 소동이 벌어지고 나면 보통 두서너 마리의 닭이 피가 묻어 얼룩덜룩해져요. 그러면 이제 그 녀석들이 당할 차례가 되는 거요. 그래서 다른 몇 마리가 또 피 얼룩이 묻고, 쪼여서 죽고, 그런 식으로 가다 보면 점점 더 많은 닭이 죽어 없어집니다. 쪼아 대기 시작하면 몇 시간 만에 닭이 전멸되지요. 그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무시무시했소. 그걸 막는 유일한 방법, 그러니까 닭들에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눈가리개를 씌우는 거요. 그러면 앞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수간호사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다. 마치 그녀 자신이 원하는 표정을 조각하여 색칠을 한 것 같다. 자신감과 인내심이 있는 침착한 표정이다. 더 이상 고갯짓은 하지 않는다. 오싹할 만큼 냉정한 표정의 얼굴, 빨간 플라스틱을 짓눌러 만든 것 같은 침착한 미소, 나약함이나 근심을 드러낼 만한 주름 하나 없는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운 이마, 도화지에 그린 것 같은 녹색 눈.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이따금씩 작은 패배를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침착하게, 자신 있게 기다릴 수 있지요.
2부
체스윅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맥머피가 담배 건에 대해 밀어붙여 소동을 벌이지 않았음에도 그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간호사가 침대로 정보를 방송한 날에 중환자실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맥머피에게 말했다. 그가 취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며, 생각해 보면 그것이 제일 영리한 방법이라고, 또 맥이 위탁 환자라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지난번처럼 그를 난처한 입장에 몰아넣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우리가 수영장으로 안내받아 들어가는 동안, 그는 맥머피에게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래도 그는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랐다고 말하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영장 바닥 배수구에 걸쳐 있는 철망에 그의 손가락이 끼었다. 덩치 큰 구조대원, 맥머피, 그리고 흑인 보조원 두 명이 안간힘을 써도 손가락은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드라이버를 가져와 철망을 빼내고 체스윅을 끌어올렸다. 철망은 그의 통통하고 시퍼런 손가락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익사한 뒤였다.
그는 수간호사를 배제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더 큰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며 그것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설명할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만다.
맥머피는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래전에 깨달은 것을 지금 알아채려 하고 있다. 그건 수간호사 한 사람만이 아니라 콤바인 전체, 즉 진짜 커다란 힘인 온 나라에 걸쳐 있는 콤바인이다. 수간호사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고위 관리 중 한 사람일 뿐이다.
3부
나는 배에서 나와 해면 위로 날아올라 저만치 높이 있는 검은 새들과 함께 바람을 가르며 날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와 동료 환자들의 모습이 보이고, 급강하하는 새들의 중간에서 흔들리는 배가 보였다. 열두 명의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맥머피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그들을, 웃고 있는 우리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쉬지 않고 원을 그리며 해면 위로 울려 퍼지며 점점 멀어졌다. 연안의 해변 전체에 닿을 때까지, 아니, 세계의 모든 해변에 닿을 때까지 파도처럼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4부
수간호사는 또 한 장의 종이쪽지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관절은 몹시 뻣뻣해 보였다. 전보다 더 하얘진 손이 종이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1페니를 넣으면 운수가 적힌 종이가 나오는 기계를 다루는 집시의 손놀림과 비슷했다. 그년느 이렇게 적었다. “네, 하딩 씨. 확실하지 않으면 아예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돌아옵니다.”
하딩은 종이쪽지를 읽고 그것을 구겨서 수간호사의 얼굴에 던졌다. 그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물러나서는 종이쪽지로부터 멍든 얼굴을 보호하려고 한 손을 들었다.
그 크고 다부진 육체는 생명력이 강했다. 그것은 생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참 동안 저항했다. 그것이 무서운 기세로 저항했기 때문에 나는 그 위에 올라탄 채 발버둥치는 다리를 내 다리로 꽉 눌렀다. 그러는 동안 내 손에 쥔 베개도 그 얼굴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몸부림이 멎을 때까지 계속 그 위에 올라타 있다가 슬그머니 내려왔다. 질식을 당했는데도 그 표정은 여전히 멍한 상태 그대로였다. 나는 두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눈꺼풀을 덮고 다시 열리지 않도록 지그시 눌렀다. 그러고 나서 내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