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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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it Han
잭 런던, 문예출판사
1 원시의 세계로
나는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내 생명의 불꽃이 메마른 부패로 꺼지게 하느니 찬란한 빛으로 타오르게 하리라. 죽은 듯이 영구히 사는 별이 되느니 내 모든 원자가 밝게 타오르는 화려한 유성이 되리라. 인간의 진정한 소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다. 나는 삶을 낭비하면서까지 내 삶을 연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할 것이다.
ㅡ 잭 런던
2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
사유 재산이나 개인적 감정을 존중하는 것은 사랑과 우정의 법칙이 지배하는 남쪽 지방에서는 미덕이겠지만,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이 지배하는 북쪽 지방에서는, 그런 걸 생각하는 놈은 누구나 멍청이로 통했고 그런 걸 지키려드는 한 결코 살아남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의 몸속에 잠자던 본능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길들여진 습성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어렴풋이나마 종족이 번성했던 아득히 멋 옛날, 들개들이 무리를 지어 원시림을 돌아다니며 동물을 쫓아, 잡아먹던 시절을 기억했다. 상대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어 일격을 가하고 늑대처럼 물어뜯는 식의 싸움 기술을 배우는 건 이제 일도 아니었다. 잊힌 옛 조상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싸웠던 것이다. 조상의 피가 그의 몸속에서 잠자던 원시의 생명을 깨웠고, 그러자 몸속에 종족의 유전자로 묻혀 있던 원시의 기술들이 발현된 것이다. 그 기술들은 어렵지도 않고 어떠한 노력도 없이, 마치 언제나 그의 몸속에 있었던 것처럼 드러났다.
3 되살아난 야수성
북극광이 머리 위에서 차갑게 타오르거나 별들이 차가운 하늘에서 깜빡이며 춤을 출 때, 대지가 하얀 눈의 장막에 덮여 감각을 잃고 꽁꽁 얼었을 때, 허스키들이 불러대는 이 노래는 삶에 대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게 이어지는 울부짖음과 흐느낌이 섞인 단조음의 그 노래는 삶에 대한 탄원이자 생존의 고달픔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태곳적부터 내려온 종족의 옛 노래였다. 그 노래는 노래로 슬픔을 표현했던 원시 시대에 최초로 불렀던 노래들 중 하나였다. 그 노래 속에는 무수한 세대를 거치면서 내려온 유구한 역사의 비애가 깃들었고 이상하게도 그 비애는 벅을 흥분시켰다.
삶의 정점을 이루는 황홀경이 있다. 그리고 삶은 그 황홀경 너머로 오를 수는 없다. 그런 점은 일종의 생존의 역설이다. 이 황홀경은 가장 생기 있게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했을 때 찾아온다. 이 황홀경, 생존에 대한 망각은 예술가가 창작열에 사로잡혀, 불타는 격정 속에 자신을 상실할 때 오는 것이고, 전장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채 항복을 거부하는 병사에게 오는 것이다.
4 새로운 우두머리
눈 속에서 헐떡거리며 동료들에게 간절히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동료 썰매 개들이 본 데이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강가의 숲 뒤로 사라질 때까지 데이브가 애처롭게 짖어대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데이브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즈음, 썰매가 갑자기 멈췄다. 스코틀랜드계 혼혈인이 방금 떠나온 야영지로 천천히 되돌아갔다. 떠들던 사람들이 일제히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 총성이 한 방 울렸다. 혼혈인은 서둘러 돌아왔다. 채찍 소리와 함께 딸랑거리는 명랑한 방울 소리가 울리자 썰매의 행렬은 눈보라를 일으키면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벅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개들도 강가의 숲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6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벅은 스피츠를 비롯해 경찰대와 우편대의 호전적인 우두머리 개들에게 배우면서, 싸움에서 어중간한 타협이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지배하느냐, 굴복하느냐, 둘 중 하나였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곧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야생의 삶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자비는 두려움으로 오해를 받게 되고 그런 오해는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 죽느냐 죽이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그것이 싸움의 법칙이었다. 그는 아늑히 먼 원시 시대에서 내려온 이 명령에 복종했다.
숲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불가사의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매혹적인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모닥불과 그 주위의 다져진 땅을 등지고 숲속을 향해 뛰쳐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숲속 깊은 곳에서 도도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가 어디서, 왜 들려오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부드러운 땅과 푸른 숲속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존 손톤에 대한 사랑이 그를 다시 모닥불 가로 돌아가게 하곤 했다.
7 야성이 부르는 소리
벅과 늑대는 물을 마시려고 개울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벅의 머릿속에 존 손톤이 떠올랐다. 그는 주저앉았다. 늑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진원지를 향해 출발했다가 벅에게 되돌아와서 코를 킁킁거리며, 따라오라고 벅을 격려하는 몸짓을 했다. 그러나 벅은 돌아서서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야생의 형제 늑대는 나지막이 낑낑거리며 벅과 나란히 달렸다. 그러다가 그는 주저앉아서 코를 높이 치켜들고 울부짖었다. 늑대의 울음소리는 애처로웠다. 벅은 늑대를 뒤로하고 계속 달렸다. 벅이 그렇게 달리는 동안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지며 희미하게 들리더니 마침내 사라졌다.
그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죽였고,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에 정면으로 맞서 이겼다. 벅은 신기한 듯 시체 냄새를 맡았다. 인간들은 너무나 쉽게 죽었다. 그들을 죽이는 것이 허스키를 죽이는 것보다 오히려 쉬웠다. 활과 창과 몽둥이만 없으면 인간 따위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제부터 벅은 인간들이 활과 창과 몽둥이만 쥐고 있지 않는 한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늑대들과 벅은 울부짖음을 멈추었고 벅이 움푹 들어간 모퉁이에서 걸어나오자, 늑대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다정하면서도 거친 방법으로 코를 끙끙거리며 벅의 냄새를 맡았다. 우두머리들이 늑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지르고 숲속으로 뛰어들자 다른 늑대들도 일제히 울부짖은 후 그 뒤를 따랐다. 벅도 그들과 함께, 그리고 야생의 형제와 나란히 달리면서 울부짖었다.
기나긴 겨울밤이 찾아와서, 늑대들이 먹이를 찾아 낮은 계곡으로 내려올 때면, 창백한 달빛이나 희미하게 명멸하는 북극광 아래 무리의 선두에 서서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인처럼 그의 동족들보다 훨씬 높게 도약하고, 가슴 깊숙이에서 터져나오는 우렁찬 원시의 노래, 늑대족의 노래를 울부짖는 그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