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환자 본인이 직접 병원에 가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서' 등 복잡한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보험사에 사진・팩스 등으로 전송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돌려받을 금액이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실손보험 가입자 5명 중 2명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했고, 이는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가 되었는데요.
10월 25일부터는 '실손24' 앱을 통해 이 과정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앱에서 진료 기록을 선택하면 병원 서류가 보험사로 자동 전송되는 식입니다. 듣기에는 간단하고 편리할 것 같지만, 깊게 살펴보면 태생부터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24일 공포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이 '실손24'의 시작인데요, 당시 민감한 개인정보로 가득한 서류가 보험사에 쉽게 집적될 수 있다는 점, 보험사가 해당 서류를 근거로 보험료 지급 거절 및 보험료 인상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이에 주관 기관인 '금융위원회'는 '보험업법상 목적 외 의료정보 등은 전송대행기관에 집중되지 않을 것'이라며 해명한 바 있습니다.
어쨌거나 환자 입장에서는 서류 발급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꼭 마지막 단계에서 꺼져버리는 '우체국보험' 앱을 통해 n년간 실손보험금을 청구해왔던 제가 이 '실손24'를 파헤쳐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앱으로 청구하는 것이 병원에 직접 가는 것보다 간편할까요?
온보딩
'실손24'의 온보딩 경험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먼저 '권한 요청' 부분입니다. 요청 화면보다 알림 권한 팝업이 더 빨리 노출되어, 알림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만약 요청 시점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없다면 dim의 background blur를 제거하거나 opacity 값을 낮추는 등, 뒤쪽 화면이 잘 보이도록 조치했어야 합니다.
권한 요청 팝업이 분산되어 있는 점은 다소 당황스러웠습니다. 앞서 알림 권한을 허용/비허용한 상태에서 플로우 진행 도중 카메라 권한 팝업이 노출되니, '왜 한꺼번에 요청하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 권한의 경우 '실손보험 청구용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사용합니다.'라는 설명이 기재되어 있어 '허용'을 누르는 데 심리적 허들이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손24'를 찾은 유저 대부분은 이 서비스가 (기존 보험사 앱의) 번거로운 사진 촬영을 대신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알아보니 계산서 및 영수증,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서, 처방전을 제외한 나머지 서류는 자동 전송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즉 종이 서류를 촬영해 보험사로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카메라 권한이 필요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온보딩 플로우에서 카메라 권한 요청을 제거하고, 서류 촬영이 필요할 때 요청하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홈
최근 은행 앱을 중심으로 몇몇 서비스가 고령화를 위한 UI/UX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기존 화면과 큰 차이가 없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이나, 시도 자체는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손24' 또한 다양한 연령층이 사용하게 될 앱이니만큼 '홈'과 '메뉴>환경설정' 화면에서 '큰글자 모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글자 크기가 3px 가량 커지는 것 외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워낙 심플한 UI라 변화가 필요치 않을 수도 있지만), 군데군데 큰글자 적용이 되지 않는 화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큰글자 적용이 되지 않는 화면을 보면 OFF 상태일 때의 글자가 다른 화면의 ON 상태보다 더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typhography 규칙이 명확하지 않고, 각 화면마다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밖에도 아이콘이 깨져 보인다든지, 앱 이탈 후 재접속 시 로그인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자잘한 문제가 보여, 'MVP만 챙기고 급하게 출시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의 실손청구
'창구 방문 없는', '복잡한 서류 없는'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현재 시점에서는 사실상 실손보험금 청구가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손24'에서 실손보험금 청구가 가능한 병원이 전국 210개뿐이기 때문입니다. 연내 4,600개까지 늘릴 예정이라는데, 이마저 병상 30개 미만의 동네 병원 및 보건소는 제외됩니다(내년 10월 25일 시행 예정, 약제비도 동일).
서문에서 '실손24'를 사용하고자 하는 유저는 돌려받을 보험금이 소액이라 청구를 포기한 유저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타겟으로 한 '실손24'가 큰 병원부터 서비스를 한다는 점이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문제의 이면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유저의 눈에는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불필요한 서비스일 뿐입니다.
만약 이용 가능한 병원이 있다면 '홈>나의 실손청구'를 통해 플로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청구 방식을 선택하고, 조회에 필요한 정보를 입력합니다.
이때 '청구 방식과 정보 입력을 한 페이지로 합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단에 버튼 두 개를 놓고, 하나를 클릭하면 아래로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input field가 노출되는 식으로요. 이는 아래로 보여드릴 청구 플로우가 너무 길어, 그다지 '간편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녀온 병원 중 이용 가능한 병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회차 계속 플로우를 진행해 봤습니다. 보험사를 선택하고 약관 동의를 거친 후 empty 화면을 맞닥뜨렸습니다.
'내가 다녀온 병원 중 이용 가능한 병원이 없었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좀 더 알아보니 2024년 10월 26일 이전 내역은 조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손24' 앱 내에서 관련 사실은 오직 위 화면에만 적혀 있습니다.
(기기마다 다르겠지만) 스크롤을 해야만 보이는 내용이기도 하고, 워낙 작은 글씨라 읽지 않고 그냥 넘기기 좋아 보였습니다. 서비스 초기에는 위 내용을 잘 모르는 유저가 대부분일 테니 화면 최상단 등 잘 보이는 곳에 기재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은 '홈'에 이미 크게 자리잡고 있는 '시스템 소개' 메뉴를 활용해도 좋고요.)
내가 다녀온 병원 찾기
'참여 병원' 목록에서 병원 이름을 일일이 찾기 귀찮아, 조회차 아래의 '내가 다녀온 병원 찾기' 메뉴를 클릭해 봤습니다. 뜻밖에도 '나의 병원관리' 화면으로 이동되어, 하단의 '내가 다녀온 병원' 버튼을 한 번 더 클릭해야 했습니다.
버튼 클릭 시 내가 다녀온 병원 중 이용 가능한 병원의 목록이 나타날 거로 기대했는데, 구 단위로 병원 위치를 직접 검색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서울특별시 > 강남구, 서울특별시 > 강동구...) 주민등록번호는 선택한 지역의 병원 중 내가 다녀온 병원을 거르기 위한 장치로 보였습니다.
전국 단위로 검색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최근 이사했거나 직장 근처 등 다른 지역에서 병원을 다녀온 경우 구 단위를 바꿔가며 다시 검색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다녀온 병원 찾기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
병원 검색 후 알림톡을 거쳐(최대 2-3일 소요) '내가 다녀온 병원' 화면으로 돌아오면 '다녀온 병원 찾기 다시 가능일시'라는 안내 문구가 추가되고, 아래로 검색 결과가 나타납니다. 저의 경우 해당하는 병원이 없어 직장 근처로 다시 검색해보려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만 검색이 가능해서 앞으로 7일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마치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국민이 바라는 제도 개선 과제' 1위로 꼽히며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1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는데, 짧지 않은 준비 기간치고 사용 경험이 그다지 좋지 않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물론 차차 개선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직접 병원에 가 종이 서류를 발급받는 편이 더 '간편'할 것 같습니다. (심지어 '실손24'에 참여하지 않는 병원에 다녀온 환자의 경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