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허먼 멜빌,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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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몇 년 전 -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래도 좋다 - 지갑은 거의 바닥이 났고 또 뭍에는 딱히 흥미를 끄는 게 없었으므로,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Ishmael. 구약성서 「창세기」 16장에 나오는 이스마엘에서 따온 인물. 이스마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나중에 사라가 아들(이삭)을 낳자 집에서 쫓겨나 황야를 떠돌게 된다. '방랑자',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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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에 비친 아름다운 영상을 붙잡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물에 뛰어들어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는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영상을 우리는 모든 강과 바다에서 본다. 그 영상은 결코 잡을 수 없는 삶의 환영이고,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열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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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주된 것은 그 거대한 고래의 압도적인 존재 자체였다. 그 무시무시하고 신비로운 괴물이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고래가 섬처럼 거대한 덩치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그 거칠고 먼 바다와, 고래가 일으키는 형언할 수 없는 위험들과, 파타고니아에서 고래를 보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수많은 목격담에 따르는 경이로움 - 이런 것들이 바다에 대한 열망으로 나를 치닫게 한 것이다.

(중략)

이제 경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대한 수문이 열렸다. 그 목적지를 향해 나를 몰아대는 분방한 공상 속에서 두 마리씩 짝을 지어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고래의 끝없는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그 행렬의 한복판에는, 하늘로 우뚝 솟은 눈 덮인 산처럼 거대한 두건을 쓴 거대한 유령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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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의 인구조사에 포함된 적이 있는가. 죽은 자들은 굿윈 사주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안고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속담이 세계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제 저세상으로 떠난 사람의 이름 앞에는 그토록 의미심장하고 이단적인 단어를 덧붙이면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 인도양으로 항해를 떠나는 사람에게는 그런 단어를 붙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생명보험 회사는 무엇 때문에 불멸의 인간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인가. 오랜 옛날 60세기 전에 죽은 아담은 아직도 꼼짝하지 못하고 영원히 마비된 채 얼마나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혼수상태 속에 누워 있는 것인가. 우리는 죽은 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을 침묵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덤 속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난다는 소문만으로도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결코 무의미한 의문들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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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요나가 탄 배의 선장은 어떤 사람의 범죄도 냄새 맡는 뛰어난 분별력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무일푼일 때만 그 범죄를 폭로하는 탐욕스러운 자였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죄인도 돈만 내면 여권이 없어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선량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모든 국경에서 저지당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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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하얀 이빨을 수많은 빗장처럼 단단히 걸어서 요나를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자 요나는 물고기의 배 속에서 꺼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중요한 교훈을 배웁시다. 요나는 너무 죄가 커서, 울며불며 하느님이 곧바로 구원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는 이 끔찍한 형벌이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그는 모든 구원을 하느님께 맡기고, 이런 고통 속에 잇으면서도 그저 하느님의 성전을 우러러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진실하고 신실한 회개가 있습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고 형벌을 달게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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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퀘그의 라마단, 즉 금식과 참회의 고행은 온종일 계속될 예정이었으므로, 나는 밤이 올 때까지 그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종교적 의무를 최대한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무리 우스꽝스러워도 상관하지 않고, 독버섯을 경배하는 개미 떼조차 충분히 존중해준다. 우리 지구의 일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행성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이미 세상을 떠난 지주의 이름으로 여전히 방대한 토지가 소유되고 임대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지주의 흉상 앞에 머리를 조아려도, 나는 그들을 경멸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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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단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자신과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남을 죽이거나 모욕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종교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종교가 정말로 광기가 되어 그 사람에게 명백한 고통이 되면, 그리하여 결국 우리의 이 지구를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어버리면, 그 개인을 구석으로 데려가서 문제점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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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자신에게 철저히 정직했다면, 배가 드넓은 바다로 나가자마자 배의 절대적 독재자가 될 사람을 한 번도 보지 않고 그렇게 긴 항해에 이런 식으로 몸을 내맡기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무언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더라도, 거기에 벌써 깊이 말려들어가 있으면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에게도 그 의심을 은폐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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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는 자비롭다. 항구는 안전과 안락, 난로와 저녁식사, 따뜻한 담요, 친구들,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강풍 속에서 항구나 육지는 그 배에 가장 절박한 위험이 된다.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서 도망쳐야 한다. 배가 육지에 닿으면, 용골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배 전체가 몸서리칠 것이다. 배는 돛을 모두 펴고 전력을 다해 해안에서 멀어지려 한다. 그러면서 배를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바로 그 바람과 맞서 싸우고, 또다시 거친 파도가 배를 때리는 망망대해로 나가려고 애쓴다. 피난처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위험 속에 뛰어든다. 배의 유일한 친구가 바로 배의 가장 고약한 원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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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가장 비열한 선원과 배교자와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한테서도 어둡지만 고상한 자질을 발견한다 해도, 비극적인 우아함으로 그들을 둘러싼다 해도, 그 모든 사람 중에서도 가장 슬픔에 잠겨 있고 어쩌면 가장 타락한 사람까지도 이따금 높은 산 위로 자신을 끌어 올린다 해도, 그 노동자의 팔이 영묘한 천상의 빛을 띠게 한다 해도, 내가 그의 불길한 석양 위로 무지개를 펼쳐놓는다 해도, 인간애라는 고귀한 망토를 펼쳐서 나 같은 사람을 모두 감싸준 정의로운 '평등의 정신'이여, 세상의 온갖 비난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소서. 그것을 견디게 해주소서, 민중의 수호자인 위대한 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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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서 있는 기묘한 자세에도 나를 놀라게 했다. '피쿼드'호의 뒷갑판 양쪽, 뒷돛대 버팀줄 가까이에 있는 널판에 지름이 1.5센티미터쯤 되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는 고래뼈로 만든 다리를 그 구멍에 끼우고, 한 손을 들어서 밧줄을 움켜잡고 꼿꼿이 서서는, 끊임없이 곤두박질하고 있는 뱃머리 너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두려움 모르는 눈길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정신, 단호하고 양보할 수 없는 무한한 고집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