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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Grit Han
헤르만 헤세, 민음사
2장
자신만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수업을 받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앞질렀다. 다른 친구들은 지금 한스의 발아래 있다. 그는 아우구스트 외엔 친구가 없고, 씨름이나 장난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또래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이제 그 얼간이들과 멍청이들이 자신을 부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별안간 그들에 대한 감정이 지나치게 경멸적인 것을 느끼고 잠깐 휘파람을 그쳤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낚싯줄을 감아 올려보니 미끼가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깡통에 남은 메뚜기를 놓아주자 얼떨떨한지 내키지 않는 듯 짧은 풀 속으로 기어갔다.
비판과 창조, 과학과 예술, 이 양자간의 오랜 투쟁이었다. 이 투쟁에서는 언제나 전자가 정당하면서도 이렇다 할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후자는 언제나 신앙, 사랑, 위안, 아름다움, 그리고 불멸의 씨를 뿌리고, 언제나 좋은 터전을 발견해왔다. 생은 죽음보다 강하고 믿음은 회의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소년들의 내면에는 무뚝뚝하고 야만적이고 난잡하고 거친 데가 있다. 우선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또 내면에 피어오르는 위험한 불을 꺼야 한다. 자연이 만든 본연의 인간은 측량해볼 수도 없고 확실하지도 않으며 어딘가 불온한 데가 있다. 그것은 미지의 산에서 흘러내리는 거친 물살과도 같고,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원시림을 개척하여 힘으로 제어해야 하는 것처럼, 학교도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을 무너뜨려 굴복시키고 힘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의 사명은 정부가 승인한 원칙에 따라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사회의 유능한 일원으로 변화시켜 잠재된 개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결국에는 빈틈없는 군대식 훈련을 통해 훌륭하게 완성된다.
3장
어머니들은 생각에 잠겨 웃음 띤 얼굴로 아들들을 바라보았고, 아버지들은 똑바로 앉아 교장의 말에 귀 기울이며 엄숙하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부심과 우쭐한 마음, 아름다운 희망에 그들은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자기 아들을 금전적인 이익과 바꿔 나라에 팔아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4장
선생들은 죽은 학생을 대하자 보통 때는 별 생각도 없이 짓밟던 한 학생이요 청춘의 봉오리가 이제는 결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잠시나마 뼈저리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중에 고인이 된 힌딩거와 특별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니?”

교장선생이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힌딩거의 아버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불안한 눈으로 젊은 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루치우스가 나왔다. 힌딩거 씨는 그의 손을 잡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점잖게 고개만 몇 번 끄덕이다가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수도원을 떠났다.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눈 쌓인 들판을 달려야만 아들 카를이 얼마나 적막한 곳에서 홀로 잠들어 있는가를 집에 있는 아내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한스는 교장선생이 내미는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교장은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됐어.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 테니까.”
5장
헬라스 방에 들어서서 주인 없는 책상세 개를 볼 때마다 교장은 마음이 괴로웠다. 타고난 재능을 지닌 두 제자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데 대한 책임의 일부가 이유야 어찌됐든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서 떨쳐버리는 데 적잖이 신경을 썼다. 그러나 배짱 좋고 도덕적으로도 강인한 남자였기 때문에 이 무익하고 어두운 의심을 마음 한구석에서 떨쳐버리기는 쉬운 일이었다.
작품 해설
자기 고집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파악하고, 자신이 걸어갈 궤도를 스스로 개척해야만 한다. 이것은 남이 깔아준 궤도를 걷는 경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