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쭐대는 인간 심성은 품위를 가리는 법이 거의 없어 아무리 하찮고 천박한 방식이라도 남보다 낫기만 하면 즐거워하곤 한답니다. 그리고 시샘하는 인간 심성은 오직 다른 사람들의 불행이 수반되어 비교될 때만 만족감을 느끼는 법이지요. 그 상인들이 저를 적대시한 것은 바로 제가 부자라는 생각에 배가 아팠기 때문이고, 그들이 저를 학대하고 괴롭힌 것은 바로 제가 힘없이 당하는 꼴을 보고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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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계속되는 이믈락의 이야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슬픈 생각으로 끝나고 마는데, 그것은 바로 저의 학식과 견문이 이젠 쓸모없으며 과거의 어떤 즐거움도 다시는 누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제가 이러니, 당장 눈앞에 있는 것 말고는 정신적인 관심거리가 전혀 없는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저 악의적인 격정에 좀먹히거나 끝없는 공허의 우울 속에 멍청히 빠져 들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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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왕자는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을 만나다
집에 돌아온 왕자는 이믈락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훌륭한 현자를 한 분 만났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쳐줄 수 있는 분으로, 흔들림 없는 이성의 확고한 보좌에 높이 앉아서 변화하는 인생의 여러 양상을 발밑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입을 열면 모든 사람이 그분의 입술에 주목하고, 그분이 도리를 설파하며 웅변을 마치면 모든 사람이 확신에 이르게 된답니다. 나는 이분을 내 앞날의 인도자로 모실 작정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그분의 삶을 본받고자 합니다." 이믈락이 대답했다. "도덕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너무 성급하게 신뢰하거나 찬미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천사처럼 설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인간처럼 살고 있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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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은둔의 행복, 은자의 이야기
"세상의 악에서 안전하게 도피하기 위해 덕을 실천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나는 때때로 부끄러움에 사로잡힌다오. 그리고 나의 이 은둔 생활이 어떤 신념이나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사실은 세상에 대한 원한과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도 커지고 있다오. 나는 갖가지 어리석은 공상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상실한 것은 참으로 많고 얻은 것은 너무나 보잘것없다는 탄식을 터뜨리곤 한다오. 홀로 은둔하여 사는 사람은, 비록 악인의 행실을 보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선한 사람들의 충고와 대화를 누리지 못하는 법이라오. 나는 오랫동안 인간 사회가 지닌 좋고 나쁜 점을 서로 비교해 보았소. 그 결과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세상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있던 참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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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인생의 행복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것이란, 말하자면 항상 원인과 결과의 모든 관계와 특질로부터 발생하는 적합성을 마땅히 지키면서 행동한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보편적인 최고 행복의 변함없고 위대한 기획에 일치되도록 하는 것, 즉 자연 사물의 현존 체계가 지니는 일반적인 성향과 경향에 협력하여 행하는 것을 뜻한다오." 라셀라스 왕자는 이 사람 역시 오래 듣고 있을수록 점점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는 현자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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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결혼에 대한 계속되는 토론
"서로 상반되는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겠다는 허황된 희망을 품지 마세요. 오라버니 앞에 주어진 축복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만족하세요. 가을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면서 동시에 봄날의 향기로운 꽃으로 후각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나일 강의 발원지와 하구 두 곳에서 동시에 물을 길어 잔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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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 공주와 페쿠아는 천문학자를 방문하다
마침내 현자는 이믈락에게 고백을 했는데, 인생의 명랑하고 분주한 활동 속에 뒤섞여 시간 나는 대로 이런저런 즐거운 일을 연이어 행하기 시작한 이래로, 천체를 다스리는 자신의 권능에 대한 확신이 점차 마음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사람에게 결코 증명해 보일 수 없는 자신의 신념을 점점 의심하게 되었다면서, 이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원인들로 이 신념은 쉽사리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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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장 결론이 아무것도 없는 결론
그들은 자신들이 품은 이런 소망들 중 그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동안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해 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강물의 범람이 그치면 아비시니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