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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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내가 살아낸 세월은 물론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 터이나 펼쳐 보면 무지막지하게 직조되어 들어온 시대의 씨줄 때문에 내가 원하는 무늬를 짤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은 개인사인 동시에 동시대를 산 누구나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고, 현재의 잘사는 세상의 기초가 묻힌 부분이기도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 보인다.
> 
>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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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만은 넘지 마

> 무용 순서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와 줄봉사 노릇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올케한테 미안했지만 말로 나타내진 않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거의 자정을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온몸이 남루처럼 지쳐 있었으나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이불 속에서 외롭게 절망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이놈의 나라가 정녕 무서웠다. 그들이 치가 떨리게 무서운 건 강력한 독재 때문도 막강한 인민군대 때문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 시민들이 당면한 굶주림의 공포 앞에 양식 대신 예술을 들이대며 즐기기를 강요하는 그들이 어찌 무섭지 않으랴. 차라리 독을 들이댔던들 그보다는 덜 무서울 것 같았다. 그건 적어도 인간임을 인정한 연후의 최악의 대접이었으니까. 살의도 인간끼리의 소통이다. 이건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어쩌자고 우리 식구는 이런 끔찍한 세상에 꼼짝 못하고 묶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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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죽음

> 오빠는 죽어 있었다. 복중의 주검도 차가웠다.
> 그때가 몇 시인지 우리는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고 왜 엄마 혼자서 임종을 지켰는지도 묻지 않았다.
> 
> (...)
> 
> 총 맞은 지 팔 개월 만이었고, ‘거기’ 다녀온 지 닷새 만이었다. 그는 죽은 게 아니라 팔 개월 동안 서서히 사라져 간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그의 임종을 못 본 걸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너무도 긴 사라짐의 과정을 회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슬퍼할 것도 곡을 할 것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린 미리 상갓집에 잘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의 시간관념도 없었다.

page.207
한 여름의 죽음

> 집에 돌아오니 밤중이었다. 숙모가 팥죽을 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뻘겋고 걸쭉한 팥죽이 너무 생급스러워 화가 났다. 그렇다고 밥이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식구들이 돌아온 후 그림자처럼 살면서 아주 안 먹고 살았다고는 못해도 거의 배가 고픈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더군다나였다. 우리가 팥죽을 혐오스러워하는 걸 보고 숙모는 변명처럼 예로부터 상제가 팥죽을 먹는 건 흉이 아니라고 했다. 흉이 될까 봐 안 먹는 줄 아는지, 밤이 깊어 집으로 가면서도 숙모는 팥죽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내일이면 쉬어서 버리게 될 텐데……라고 했다.
> 
> “쉬어서 버리면 안 되지.”
> 
> 엄마가 헛소리처럼 말하면서 팥죽을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둘러앉아, 사랑하는 가족이 숨 끊어진 지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다 버린 인간들답게, 팥죽을 단지 쉴까 봐 아귀아귀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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