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개의 파랑

> 2100년이 오기 전에 지구는 불타 멸망할 거라고 유치원 때부터 주장해왔던 연재의 ‘지구화형설'은 조금씩 신빙성을 잃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연재가 발붙여 사는 동안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거라면 계속 열심히 사는 수밖에.

> 그리움을 느끼려면 그리워할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해야 했다. 말들이 실체를 기억할까. 한 번도 초원을 밟아보지 못할 말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만 느낄 것이다.

> 다르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숨이 끊겼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 걸.

> 3%의 생존율로 살아남았던 보경은 이제 300%의 삶을 짊어지게 된 셈이었다.

> 때때로 어떤 일들은, 만연해질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에서 손을 놓아버리고는 했다.

>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니 연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

> 삶의 격차라는 것이 어느 틈을 비집고 생기는 것인지 한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아이들에게는 다가갈 수조차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 달리지 못하는 말은 말이 아니다.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복희도 듣고 자랐지만 그 안에 내포된 박탈의 의미는 천지 차이였다. 인간 역시 이따금씩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때가 있었으나 언제나 회생 가능했다. 하지만 말은 말 취급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말은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지 못했다.

> 그리움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준비라도 할 텐데, 친절하지 못했던 이별처럼 그리움도 불친절하게 찾아왔다.

> 긴 병은 가족 사이의 부채(負債)를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잖은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를 해결할 틈도 없이 또 새로운 상처가 쌓였고, 이전에 쌓였던 상처는 자연스럽게 묻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빚을 덜어낼 기회가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 그날 이후로 보경과 은혜 사이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부채가 생겼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결국 서로가 떠안고 있어야 했다. 은혜는 그때부터 바라는 것이 없어졌고 보경은 반대하는 일이 사라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선이 생겼다. 서로에게 쉽게 상처 줄 수 없도록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고, 그 관계에 연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경은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어쩌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보경은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없는 채 엄마가 되었으므로 두 아이에게 이해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되었다.

> 그렇지만 은혜는 그렇게 호락호락 그들 삶의 위안과 희망이 되고 싶지 않았다. 본인 인생은 본인이 알아서 보듬으세요. 가끔은 마이크 잡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 돌아오는 길이 외로워, 엄마. 힘들지는 않은데 외로워. 외롭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길을 외롭다고 부를 수 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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