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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사건
Grit Han
아니 에르노, 민음사
바칼로레아 합격도, 프랑스 문학 학사 학위도, 알코올 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 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문명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섹스 때문에 나는 따라잡혔고, 그때 내 안에서 자라나던 무언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었다.
나 같은 여자들은 의사의 하루를 망쳤다. 돈도 연줄도 없는 - 그렇다고 무턱대고 의사들을 찾아가지는 않았을 테지만 - 그런 여자들은 자기들을 감옥으로 보낼 수도 있고, 영영 의사 면허증을 앗아갈 수도 있는 법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고 의사들은 감히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여자들을 죽게 방치하는 법을 위반하느니 차라리 당신들이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솔직하게 나서지 않는 한, 임신할 정도로 멍청한 젊은 여자의 눈 때문에 자기가 이룬 모든 걸 잃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하나같이 여자들의 임신 중절을 막더라도, 그녀들이 알아서 방법을 찾아낼 거라 생각했으리라. 부서질지도 모르는 자기들 이력에 비하면, 여자들이 질 속에 뜨개바늘을 넣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법은 도처에 있었다. 감정을 꼭 눌러 적은 내 수첩 속에, 장T.의 튀어나온 두 눈 속에, 이른바 강요된 결혼들에, 영화 '쉘부르의 무산’ 속에, 임신 중절을 한 여자들의 수치심과 타인들의 비난 속에도. 언젠가 여자들이 자유롭게 중절을 결정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생각 속에도 법은 있었다. 그리고 늘 그래 왔듯 임신 중절이 나쁘기 때문에 금지되었는지, 아니면 금지되었기 때문에 나쁜지를 규정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우리는 법에 비추어 판단했고, 법을 판단하지는 않았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임신 중절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못했다. 그것은 언어 속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있는 힘을 다 써서라도 산꼭대기에 올라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 안에서 태아가 죽어 버릴 만큼 나는 녹초가 되었다.
그날 밤 청소년기부터 간직해 온 내 육체를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생기 있고, 비밀스러운 성기가 달려 있던 육체, 그 후로도 달라질 것 없는 남자의 성기 - 더 생기 있고, 여전히 비밀스러운 - 를 빨아들였던 육체를. 나는 전시되고, 사방으로 벌려진 성기와 바깥으로 열어서 긁어낸 배를 갖고 있었다. 엄마와 다를 바 없는 몸이 되었다.
내 몸속에서 재생산이라는 폭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내 차례가 되어 세대들이 지쳐 가는 장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삶과 죽음, 시간, 도덕과 금기, 법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경험, 육체를 통해 극과 극을 오간 경험으로 여겼던 사건을 단어들로 표현하는 일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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