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년생]

풀칠
당장 써먹는 점심시간 스터디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좋은 의미로 이상한 짓을 많이 하는 곳이다. 그중 대표적인 게 ‘당써먹’이라는 이름의 회사 교육프로그램인데, 이 당써먹이라는 건 ‘당장 써먹는 점심시간 스터디’의 줄임말이다. 이 당써먹에서는 스님(스승님)이라 불리는 호스트가 짧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업무 노하우를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당써먹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이를테면 ‘있어빌리티한 콘텐츠를 만드는 소소한 제작 팁’부터 ‘사회초년생을 위한 워크네비게이션(저연차용)’, ‘그럴싸한 결과보고, 쉽게 완성하기’ 등등… 콘텐츠 기획이나 제작 업무에 도움이 되는 현실 꿀팁을 엑기스째로 들을 수 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당써먹 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공부에는 끝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이번 시즌에도 제목만으로도 신청버튼을 절로 누르게 만드는 매력적인 당써먹 스터디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는 ‘사례로 보는 AE 업무 사이클’이었다. 이 당써먹의 스님을 맡은 옆팀 팀장님은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발생하는 상상도 못할 사건사고들을, 그리고 그 난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 난관이라는 건 예를 들면 건물 안에 자동차를 집어넣기 위해 통창을 떼어낸다거나 팝업 오픈 직전에 건물에 안전 이슈가 생겼다거나,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 기둥을 하나 더 세운다거나… 역시나 우리가 하는 일은 '일이 굴러가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내가 겪어보지 못한 프로젝트였지만 마치 그 사고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PM이 된 것마냥 식은땀이 흘렀다. 이 당써먹에서 주로 이야기한 건 팝업스토어를 기획하거나 준비할 때의 노하우였지만. 정작 내게 시사하는 건 이런 거였다. 일잘러임이 분명한 그 스님 또한 일에 착수하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는 것. 지독하게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전문가가 됐다는 것. 일을 시작할 때면 긴장부터 하는 부류의 인간인 나는 누구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지 않다는,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성장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 오늘도 일상을 살면서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을 그 당써먹을 통해 접한다. 내가 당했다면 뇌정지가 왔을 게 뻔한 사례를 간접체험하고 나면, 내게 다가올 미래의 사건사고에 예방주사를 놓는 듯한 든든한 느낌이 깃든다. 스님이 일러준 내용을 당장 써먹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대처법을 언젠간 써먹고 싶다는 의욕이 솟는다. 물론 회사가 학원은 아니지만 업무 의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야말로 구성원을 더 나은 일꾼으로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이 회사에 몇 년 다니다 보니 사내교육이라는 게 당연해졌지만 말이다. 과거 도제식이라는 핑계로 사내교육에 무관심했던 회사들도 지나온 적이 있다. 그런 곳에서 제몸으로 부닥치면 알아서 성장한 직원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도 목격하기도 했다. 회사가 그의 성장을 위해 준 것은 과도한 업무량 밖에 없었으면서. 적어도 지금 이곳에서 교육을 통해 구성원 더 나은 일꾼이 되고, 그 결과로 더 좋은 곳을 향해 간더라도 ‘배신자’라고 저주받을 일은 결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타인에게도 인정받았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며 앞날을 축복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나의 뇌피셜일뿐 팀장님의 마음은 다를 수 있겠지만. 홧김에 당써먹을 여섯 개 몰아서 신청하고 말았다. 하필 출근하는 길에 봄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워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아름다워서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뭐라도 하나 더 배워가는 게 올해 주요한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스님들이 공유하는 업무 노하우만큼이나 그 업무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어나왔는지, 그 극복 방법을 고백하는 시간이 기대된다. 오늘은 ‘무엇이든 물어보는~’으로 시작하는 이름의 당써먹을 하나 들었다. 무엇이든 답할 수 있다는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물씬 느껴져서 괜히 수강생인 나까지도 고양되는 기분이 든다. 나는 당써먹 스님들이 나눌 것이 있음(능력)에, 나누기를 기꺼이 실천하는 마음(인성)에 매번 감탄한다. 박수 소리가 멈추고 난 뒤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고민이 시작된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하나쯤은 생겨있기를. 남들에게도 당장 써먹을 만한 노하우를 품고 있기를. 그런 상상을 하며 주섬주섬 오후 업무를 준비한다.
풀칠
신입을 위한 회사는 없다
회사는 왜 신입사원들을 위하지 않을까. 모든 직원의 사정을 헤아려주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제 앞가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갓 경험을 쌓기 시작한, 모든 것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회사는 왜 매몰차게 구는 걸까.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나는 지난해 여름 지금의 조직에 이직, 아니 이식됐다. 딱히 직급이 없는 조직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주임 정도일까. 업종이 바뀌었음에도 경력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얼른 한 사람 몫을 해주기를 바라던 회의 분위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도 내 경력과 직급은 부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일 년차(연봉협상)부터 사 년차(프로젝트 일임)까지 나일론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하기를 일 년 삼 개월. 이제는 일에도 회사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그래도 회사에게나 나에게나 길다고 말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길지 않은 시간 속에 꽤 많은 수의 후배들을 받았다가 잃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이제 나도 사수가 됐다고 좋아했는데 어느샌가 빈 책상을 바라봐야 했으니까. 맘이 여린 사람, 워라밸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 아직은 요령을 쌓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지금 회사에 없다. 저마다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 싹이 움트자마자 회사는 화분을 비웠다. 혹은 본인이 회사의 무관심과 관용 없음에 실망해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 좋아라 하던 그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주니어인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모든 것이 불합리해 보인다. 그들에게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뿐이었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제 실력을 발휘하는 건 시간문제였는데. 왜 신입사원들이 모든 시간과 여유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걸까? 업무의 속성을 파악하고, 조직의 생리(生理)를 이해하고, 사회성을 늘려가고, 단점을 보완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속성으로 끝내기를,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신입사원에게 충분한 관심과 기회를 주지 않는 건 월급을 일부 떼놓는 거랑 뭐가 다를까 하는 과격한 생각도 해본다. 된소리를 하자면, 처음부터 능숙하기를 바라는 회사의 요구가 때로는 너무 고깝다. 실패할 수 있는 것도 자본인데. 신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봉급을 받는 대신 실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고민을 회사에는 아주 희미하게 털어놓으면 더러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반론을 꺼내들었다. 회사라는 조직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뽑고 채우고 때로는 나가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순진하다,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 라는 말 앞에서 나는 순순히 물러났지만 마음은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 생각에 그건 회사의 경영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일이 고된 산업의 특성 탓도 아니었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볕이 좋은 날에 화분을 창문 앞이 아닌 외딴 담벼락 앞에 세워두니 시들 수밖에 없다. 회사는 사람에, 새로운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냥 회사를 욕할 수도 없다. 내 잘못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퇴사를 결심한 후배가 저녁 술자리에서 나에게 말했다. “선배는 피곤하지 않으세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만큼은 못 할 거 같아요.”
풀칠
도비에게도 계획이 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의아했다. MZ세대는 성과보다는 워라밸을, 돈보다는 여유를 중시한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이상하다... 나는 야근을 좀 더 하더라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고(현실은 포괄임금제) 조금 고되더라도 직장이나 업계에서의 평판을 높이고 싶은데. 가끔은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더라도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내고 싶은데...” 의아함은 풀칠을 읽고 쓰면서도 계속됐다. 직장을 훨훨 떠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모임을 주도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퇴근 후에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를 긁적였다. 나에게도 ‘마감도비’라는 부캐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퀭한 얼굴로 노트북 앞에 붙들려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망령 같았다. 물론, 현실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매일 과다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체력과 감정은 매주 바닥을 친다. 게임업계에는 며칠 간 집중적으로 업무에 매달리는 ‘크런치 모드’라는 게 있다는 데 마감 노동자도 비슷한 시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마감으로 밤을 지샌 다음에는 몽롱한 의식과 극심한 무기력이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 나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게 확실했다. 일이 좀 줄었으면 좋겠어, 저녁에는 좀 쉬고 싶어, 와 같은 생각을 곱씹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름의 루틴도 바꿔보고 상사와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기도 했다. 워라밸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지금 생활이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아예 손에서 일을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일의 일부분에 분명히 흥미를 느끼고 있고 그건 때로는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늘 고민이었다. 뭐랄까. 최근 또래 직장인의 트렌드를 보면서 나는 좀 뒤쳐진 사람인가, 내 생각이 많이 낡았나 하고 남몰래 부끄러워했다. 다들 쿨하게 퇴근 시간이 되면 일에서 손을 떼고(혹은 마음을 떼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새로운 만남이나 모임에 참여하거나, 부캐를 만들어 열심히 시야를 넓히고 있을 때 나는 쟁기를 끄는 소처럼 당장의 눈앞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미련한 자신을 자책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일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게 꼭 복수의 조직, 복수의 프로젝트, 복수의 분야여야지만 가능한 것일까.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과 업무에서 ‘해볼 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실력이 쌓일 때까지 밀고 가보는 것도 일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이 조직에 오랫동안 몸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 뛰쳐나가야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에게 나쁘지 않은 경력과 실력을 가져다 줄 것이었으므로. 직장은 이를 테면 아이언맨의 슈트 같은 거랄까. 더 좋은 게 생기면 그때 갈아입어도 충분하다.(발목만 잡히지 말자!) 이렇게 얘기하니까 순도 100%의 낭만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내 태도는 ‘열정’이 아니라 ‘야망’이니까. 욕심도 어느 정도 담겨있다. 이를 테면, 5년 뒤, 10년 뒤에는 내 몸값이 어느 정도까지 올랐으면 좋겠다. 이런 처우를 받고 싶고 이런 프로젝트를 주도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와 같은 정량적인 목표도 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직장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정도(正道)는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거라는 얘기. 물론, 제풀에 지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할 테다. 조직의 이해나 문화에 매몰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거고. 트렌드에도 늘 레이더를 돌려야 한다. 나는 직장에 헌신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가능성에 헌신하고 싶은 거니까.
풀칠
첫 출근은 처음이라
오늘은 첫 출근하는 날이다. 백수에서 직장인으로 인생의 챕터명이 바뀌는 날. 이 챕터에 들어서기 위해 나는 숱한 자격증을 따고 자기소개서에 침도 안 바른 거짓말을 해대고 고향을 떠나 상경까지 했다. (실상 방을 구한 곳은 서울 아니고 인천이건만 집에서는 이걸 상경이라고 불렀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번 챕터는 행복할까, 늦잠을 자면 어쩌나 따위를 고민하다 보니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기상 : 6시 50분 일찍 일어난 김에 평소라면 귀찮아서 넘겼을 면도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했다. 첫 출근은 곧 첫인상이고 밀다 만 수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입을 옷도 심혈을 기울여 골랐다. 면접 때 입은 정장 풀셋트를 다시 입을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오바인 것 같아 그냥 상태가 제일 좋은 네이비 색 니트와 검정 슬랙스를 입기로 했다. 가진 옷 중에선 에이스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었다. 에이스들이 힘을 발휘해서 센스 있고 스마트한 신입으로 보이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거리로 나섰다. 이것저것 고민하느라 준비하는데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출발 : 07시 30분 거리엔 벌써 나처럼 점잖은 니트와 슬랙스를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다들 잰걸음으로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게는 몇 달을 통틀어 가장 일찍 시작한 하루건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랑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는 게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지구에서 수만 송이 장미를 본 어린 왕자의 심정이 이랬을까.순식간에 상하는 게 ‘첫00’의 특성이긴 하지만 첫 출근의 유통기한은 특히나 더 짧은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하지만 내 첫 출근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겨우 첫 번째 전철을 탔을 뿐이다. 회사에 제때 들어서기 위해선 먼저 인천 1호선을 타고 종점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탄 다음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다시 버스로 환승을 해야 한다. 첫 출근이라고 하면 회사에 도착해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일 텐데, 출근길만으로도 하나의 여정이라고 할 만큼 길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환승역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 : 07시 56분 공항철도로 갈아탈 수 있는 인천 1호선의 종점. 사람들은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뛰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왜 뛰는 줄도 모르고 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난 초행길이라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안내 표지판을 꼼꼼히 읽으며 환승 플랫폼을 찾아가기로 했다. 스팅의 노래 '잉글리쉬맨 인 뉴욕'엔 ‘젠틀맨은 걸을 뿐 절대 뛰지 않는답니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수도권의 대전맨이 감히 추론해보건대 뉴욕의 잉글리쉬맨 역시 뛰는 이유를 몰라서 걸었은 것이 틀림없다. 사람들이 뛴 이유는 두 번째 지하철이 역에 들어오는 걸 보고서야 알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미 만차인 지하철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달렸던 것이다. 줄의 앞자리를 선점해야만 서울로 가는 전철을 탈 수 있다니, 가히 K-출근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은 1호선 뿐이고 그마저도 언제나 앉을 자리가 넘쳐나는 평화의 도시 대전에서 온 내겐 사람이 많아서 지하철을 못 탈 수도 있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다. 결국 난 충분히 드세지 못했거나 의지가 부족했던 이들 몇몇과 함께 떠나는 지하철의 뒤꽁무니를 처량하게 바라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러다가 지각하겠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지하철 놓친 시간 : 8시 10분 7분 뒤에 온 지하철 역시 만차였지만, 이번엔 다행히 탑승에 성공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 찌그러져 있는 것도 불편한데 지각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계속 시계를 바라보는 이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물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쾌적함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첫 출근이었다. 대전에선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는데, 바람을 느끼며, 강가에서 꽃도 보고 오리 가족도 보고 운이 좋으면 수달도 만나고…. 두고 온 시절 생각에 마음이 조금 심란해지려던 찰나 지하철 창 너머로 한강이 보였다.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서울의 지하철에서 유일하게 낭만적인 순간은 한강을 지날 때면 모두가 창밖을 바라본다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한강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덕분에 한강 안쪽의 저 도시에서 터를 잡고 살아보려는 시도까지 꽃과 오리와 수달을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는 모험으로 느껴졌다. 모험이라는 말은 언제나 약간의 도취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지각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되었다.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서 시계를 봤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택시를 잡아타면 지각을 확실히 면하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저 멀리 마지막 관문인 마포구 마을버스가 코너를 도는 게 보인다. 버스를 탄 시간 : 08시 47분 버스도 역시 콩나물시루였지만 이제 나는 자리는 쟁취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일단 팔부터 들이밀고, 카드를 찍어서 탈 권리를 확보하고, 낯선 이들 틈으로 어깨를 집어넣었다. 기사 아저씨가 다음 차를 타라고 말했지만 내게도 나름의 양보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므로 무시했다. 문 뒤의 한 뼘 정도 되는 공간에 몸을 어찌어찌 끼워 넣으니 그럭저럭 출발해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이대로 4정거장만 가면 도착이다. 그런데 아뿔싸, 다음 정거장에서 문이 열릴 때 그만 한쪽 다리가 버스 문에 끼이고 말았다. 그 역은 버스 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는 역이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다른 한 발과 상반신을 열려있는 문 뒤로 내민 채로 하차 태그를 찍는 족히 2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과 어색한 눈인사를 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문에 끼어서 내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읽다보니 문득 다들 참 늙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 눈에 나는 앳되어 보이겠지, 바보같이 버스 문에 끼어있으니까. 왠지 첫 출근을 하는 중인 걸 모두에게 들킨 것 같았다. 아직 본격적인 첫 출근은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나도 피곤했다. 마침내 회사에 도착해 인사팀 직원의 환대(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를 받고, 팀원들에게 인사(내일은 조금 더 빨리 나오겠습니다)를 건넨 시간 : 09:04분 하루를 어찌어찌 마치고 퇴근을 했다.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오늘 하루를 복기해보니 아무래도 영 첫 출근을 조진 것만 같았다. 하기야 놀라울 것도 없다. 언제나 '첫00'을 조지며 살아왔으므로. 모든 '첫00'은 설렘으로 시작해서 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지하철 창밖으로 한강이 보인다. 이번엔 검푸른 저녁의 한강이다. 강을 건넌다는 건 이전의 시절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메타포인데 오늘은 강을 벌써 두 번이나 넘었다. 하지만 난 이번에도 자전거와 꽃과 청둥오리와 수달을 떠올린다. 아무래도 내가 ‘첫 00’을 항상 망치는 건 이전 시기에 좋아했던 것을 쉬이 놓지 못하는 고약한 버릇 때문인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오늘 이 고약한 버릇에 발목을 잡혀서 오늘 지각도 하고 버스 뒷 문에도 끼인 것이 틀림없다. 왜 나는 첫 출근을 무작정 설레하지 못했을까? 설렘이란 건 인생의 다음 단계로 거칠게 착륙할 때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에어백 같은 것이니까 많이 설레할수록 안정적인 첫 출근날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무것도 잃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가겠다는 욕심을 다 버리진 못한 걸까. 아, 모르겠다. 내일부터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테니 이제 그만 첫 출근의 마무리를 짓는 편이 낫겠다. 한강에 자전거와 꽃과 오리가족과 수달을 영원히 묻은 시간 :18시 35분 발행일 2020년 12월 9일 글 야망백수 *이 에세이는 풀칠 제 21호 : 첫 출근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풀칠
변기 못 고치는 어른
1 마침내 직장을 잡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얻고 나니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힘으로 사냥하고 서식지를 가진 동물이 성체로 대접받듯이, 돈이야 좀 적긴 하지만 어쨌든 밥벌이를 하러 들락날락할 공간을 갖게 되었으니 어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성싶었다.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처음 몇 주가 지나가니 새로운 일상도 그럭저럭 모습을 갖춰갔다. '제대로 해놓고 산다'까진 아니어도 퇴근길에 지하철역에서 사온 오뎅을 볶고, 락앤락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나면 이제 나도 정말 자립을, 홀로서기를 해냈다는 뿌듯함까지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이 자립의 허니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 때문이었다. 갑자기 가속도가 붙어버린 삶에서 나는 시간 결핍에 시달렸다. 노동시장에다 자립의 대가로 시간을 갖다 팔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눈을 뜨면 지하로 낑겨들어가 한 시간을 흔들리다가 건물에 들어가 종일 앉아있다 해가지면 다시 지하로 향하는 삶. 퇴근길에 사 먹는 오뎅만이 거의 유일한 낙인 삶이 과연 정상인가. ROAS니 CPM이니 숫자들만 들여다보는데 쓰고 남는 자투리 시간은 과연 밥을 지어먹고 빨래를 하고 산책을 하고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기에 충분한가. 이런 의문들이 쌓이는 속도는 냉장고에 밑반찬이 쌓이는 속도를 진즉에 추월해버렸다. 이제 쌓이는 건 라면 국물이 벌겋게 눌어붙은 설거지거리였다. 2 그렇게 성에 차지 않는 나날을 쌓아가던 중,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밀린 설거지를 하다 수채에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급한 대로 변기에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퉁퉁 불어버린 면발들 사이에 숨어있던 양파심에 변기는 그대로 기능을 상실해버렸다. 세상엔 남들이 보면 별일 아니지만 당사자에겐 일상을 무너지게 하는 트리거가 되는 순간이 있는데, 내겐 이 변기 사건이 꼭 그랬다. 한때는 자회사 몰에서 파는 신통찮은 가전제품들로 방을 채워가며 잘 살아보겠다는 열정이 불태웠건만, 변기 사건을 기점으로 그 모든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변기는 이틀이 지나자 어디서 물이 새는지 쉴 새 없이 물소리를 내며 말라갔다. 끊임없이 새는 물과 말라버린 변기. 애써 꾸린 나의 자립에 대한 애정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누군가는 변기 쯤이야 유난 떨 거 없이 뚫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용을 쓰다 뚜러뻥 손잡이를 부러뜨리고 말았을 때 변기를 뚫는 일은 사람을 불러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고, 사람을 부른다는 건 곧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함을 의미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이 시간이라는 것을 마련하기가 도통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평일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배관공도 퇴근했을 시간이니 불가능하고, 주말에 사람을 불러야만 할 텐데 주말엔 시간을 최대한 밀도 있게 쓰려고 집 밖으로 나도는 편이라 역시 변기에 쓸 시간이 없었다. 고장 난 변기는 시간 부족이라는 내 일상이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그래서 난 그냥 변기 없이 사는 삶에 적응하기로 했다. ‘구조적 문제’라는 단어는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을 뜻하기도 하므로. 막상 살아보니 그럭저럭 살만했다. 평일엔 회사에서, 주말엔 카페에서, 급할 땐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지하철역에서 볼일을 해결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변기를 고치는 일은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헤르미온느의 모래시계를 쓰는, 뭐랄까 엄청난 자원의 낭비로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3 변기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어느 날, 회사에서 동료들을 웃길 요량으로 이 이야기를 했다. 직장인들은 대개 블랙코미디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동료들 대부분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대충 살 수 있냐며 웃었지만 개중 한 명은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가 생각난다고 했다. <비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노인은 방 한 칸이 평생의 유일한 성과인 인물이다. 노인은 어느 날 아침 방 앞 복도에서 비둘기를 발견한다. 노인은 비둘기가 싫었지만 죽일 수도 치울 수도 없었다. 관리인에게 말하긴 했지만 왠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것 같았다. 노인은 그날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노숙을 했고, 잠이 들기 직전엔 자살을 결심한다. 이야기의 유사성에 왠지 모르게 찔려서 항변했다. “저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진 않은데요.” 다른 동료가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집안일 미루는 게 우울증 초기 증상이래요.”
풀칠
나만의 성과지표
한동안 “대기업 신입으로 들어가고 싶다”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사수가 없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아쉬움이나 불만이 가장 컸다. 직무나 분야에 대한 지식은 둘째 치고, 사무직 노동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업무처리방식(메일쓰기, 미팅, 회의, 업무량 조절, 일정 관리 등)을 터득하는 데서부터 자잘한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돈 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회사가 배우는 곳이냐?’ 라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아무래도 ‘일’이란 게 인풋보다는 아웃풋에 초점을 맞추는 개념이니까. 엄밀히 얘기하면 이런 ‘기본적인 업무처리방식’은 개개인의 센스에 달린 문제기도 하다. 대기업이라고 반드시 체계적인 교육 환경을 갖췄다고 볼 수도 없다. 저마다 다른 형태의 어려움 또한 있을 테고.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그냥 판타지라는 거다. 그러니 내 푸념은 말 그대로 푸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케이, 양보. 하지만 업무처리방식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을 기치로 내세운 ‘퍼블리’에서 메일·보고서 작성법, 시간 관리법, 상황별 마인드컨트롤 팁 같은 아티클이 꾸준히 발행되는 것만 봐도 이런 고민이 아주 특수한 사례는 아닐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비효율적 보고 체계에 답답해 하고, 비생산적 업무 지시에 열 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커다란 물음을 끌어 안고 사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 쓰는 건 ‘메일 쓰기’다. 섭외나 제안이 많은 업무 특성상 먼저 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답장을 못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난 그때부터 온갖 불안과 자조에 휩싸인다. ‘내가 제안한 내용이 흥미를 돋구지 못 했나?’, ‘내용을 쉽게 풀지 않아서 읽다가 꺼버렸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별로였나?’ 등등. 일에 대한 평가와 인간에 대한 평가를 따로 봐야 한다던데, 그 짓을 내가 나에게 하고 있으니 어디 가서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억울하지도 않다. 아니, 억울할 시간도 없이 고민들이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고민의 내용은 이랬다. 메일은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이다. 텍스트를 다루는 게 일이면서 동시에 취미인데(=시도 때도 없이 읽고 쓰는데), 유일한 타깃의 리액션도 못 끌어낸다면 그리고 그런 상황이 부끄럽지 않다면 일찌감치 다른 길 찾아 봐야 하는 거 아닐까. 메일 하나 설득력 있게 못 쓰는 에디터와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내 메일을 받는 사람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그 메일이 가장 와닿는 포트폴리오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많은 메일을 뜯어봤다. 제목은 어떻게 쓰는지, 인사는 어떻게 하며 메일 수신자를 뭐라고 부르는지, ‘프로젝트 진행하느라 고생 많으셨다’ 같은 스몰토크는 어느 정도 사이일 때 하면 좋을지, 문단은 어디서 나눌지, 어떤 순서로 내용을 전달할지, 마무리 인사는 뭐라고 할지, 심지어 ‘감사합니다.’와 ‘아매오 드림.’ 사이 한 줄을 비울지 말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까지 살폈다. 포트폴리오를 조금씩 고쳐가듯이 새로운 메일을 보낼 때마다 여러 요소를 넣거나 빼곤 했다. 그 날도 출근해서 보도자료를 비롯한 여러 메일을 읽었다. 오전 업무를 마친 뒤에는 모 브랜드 홍보담당자와 점심을 먹었다. 꽤 오랫동안 메일만 주고받았는데 어쩌다 기회가 닿아 처음 얼굴을 마주한 자리였다. 이런 저런 대화(회사 일 말고도 뭘 하긴 해야 할 거 같은데 뭐 해먹고 살죠? 웹소설을 써볼까요?)를 나누던 중 경력 얘기가 나왔다. 쪼렙인 나는 쭈뼛쭈뼛 ‘이제 좀 있으면 만 1년이 된다’고 털어놨다. 후식으로 나온 녹차를 마시던 그가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엥? 저는 메일 쓰는 거 보고 그래도 3년차는 된 줄 알았는데.” 안다. 나도 안다. 립서비스가 아닐 리 없다는 거. 그에겐 메일로 드러나는 내 모습이 전부일 테니 사실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립서비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일말의 진심 또한 포함돼 있었으리라 믿는다. 음, 오케이. 양보. 이렇게 하자. 그건 적어도 그때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불안감에 흔들리는 나를 긍정하기 위해 필요한 딱 적정량의 칭찬. 그의 말 한 마디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좋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내가 아주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니구나’ 라고 여길 작은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내게 메일은 포트폴리오와 같았다. 일종의 바로미터다. 내가 ‘내 일’에 얼마나 욕심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이는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라 여겼다. 근데 어디 메일만 그럴까. 모두 저마다의 성과지표 하나씩은 갖고 있다. 일하면서 특히 신경 쓰게 되는 것, 그걸 달성하기 위한 노력.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듯 보여도 누군가에겐 어떤 지속가능성을 부여해주는 것. 나는 그런 것들이 모여 안 되는 일을 되게 한다고 믿는다. 발행일 2020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