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달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한 고민은 ‘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을까’였고, 그 다음은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였다. 쉽게 말해 그동안 직장인으로서 나의 세계에는 ‘일’과 ‘나’ 밖에 없었고 이 둘의 싸움이었다. 일이 이기거나 내가 이기거나. 팽팽한 싸움의 결과는 대부분 내가 지는 걸로 결판이 났지만 칼로 벤 것처럼 깔끔했다. 내가 이기면 자축을 하며 하루를 마감했고 내가 지면 분을 삭이며 다음 날을 기약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 말 새로운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팀 막내를 탈출했다고, 드디어 일을 덜게 됐다고 좋아한 것도 잠시. 새로운 고민에 휩싸이게 됐다. 누군가에게 일을 지시하고 매듭짓는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혼자 뛰던 달리기가 2인3각 경기로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2인3각? 발이 많아지면 좋지.’ 드디어 우군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대도 함께 커졌다. 부사수와 함께 힘을 합쳐 ‘일’을 해치우는 그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을 꿈꿨다. 서로가 이심전심 맡은 일을 다 끝내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처음엔 부사수가 일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다짐했었다. 업무를 차근차근 알려주고 시간이 지나면 부사수가 웬만큼 자기 몫을 해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사수의 업무 처리에 자꾸 눈이 갔다. 아,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요건 요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업무 결과물에 말을 얹기 시작했는데 어느 새부터 내 ‘코멘트’의 양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안에 꼰대 본능이 눈을 뜨고 만 것일까. 한번 피드백을 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말이 많아졌다. 이건 이렇게 하세요, 저건 그렇게 하면 안돼요. 마치 터진 둑처럼 말이다. 아침에 업무를 시작할 때 메신저를 통해 A, B, C 하세요 하고 선언하듯 말을 거는 내 모습을 보며 약간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부사수와 함께 일하는 게 회사에서 부여한 나의 새로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이 2인3각 경기를 매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부사수가 합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북돋아줘야 하나, 이 속도로는 같이 뛰어줘야 한다고 엄포를 놓아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일과 부사수를 둘 다 들쳐 메고 내가 혼자 뛰어야 하나.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속이 찝찝하기만 할뿐 시원하게 해결되는 건 없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과 같은 강도로 일을 할 거라 지레짐작한 것부터가 이기적이고 단순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줬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신뢰는 ‘가불’이라고. 일단 믿고 맡기고 먼저 쳐준 값은 나중에 받는 거라고. 일을 같이 한다는 건 그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