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Sign In
[여름]
여름적 사고
풀칠
👍
태생적으로 체온이 높은 탓에 남들보다 일찍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 아마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인 모양이지만, 갱년기도 한참 지난 그를 탓할 나이는 지났다. 여름이니까 당연히 더운 거지. 엄마의 말버릇을 떠올리며 이제는 ‘그러려니'하며 살아보기로 한다.
나만큼 여름을 부지런히 포착하는 건 대중교통이다. 에어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자마자 익명 커뮤니티엔 ‘지하철 냉방 민원’을 주제로 한 글이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다. ‘추우니 지하철 온도를 높여라’라는 쪽과 ‘추우면 겉옷을 들고 다녀라’ 양쪽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충청도 출신(고통마저 유머로 승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음)인 나는 ‘그럴 거면 자차 타고 출근하지 그랬슈’라고 시시덕거리다가, 당장에 나도 차가 없는 처지라는 걸 금방 자각하곤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지하철 구석자리에 앉아 수십 개의 댓글을 넘겨보았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으스대는 인간도 고작 1-2도 되는 온도차에 사나운 짐승의 소리를 뱉는구나. 이 큰 쇳덩이를 매일 수십 km씩 움직이는 사람들이 실은 이렇게나 유치한 존재들이구나. 더위 때문에 밖으로 나서기도 힘들 지경이라며 싸울 기력은 남아있는 건가. 수신자 없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다가 이내 지쳐버리고 말았다.
맞은편엔 겉옷을 꺼내 입는 사람과 손풍기를 정수리에 갖다 대는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과연 모두를 만족시키는 적정 온도란 없는 걸까. 스마트폰 속 사람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날카로운 말들을 보는 동안 전차는 무심히 달렸다.
최근에 본 유튜브에서 우리가 만날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구가 어떠한 분기점을 넘어섰다고 했는데, 게스트로 출연한 과학자는 그 선을 두고 ‘인류 생존 한계 온도’라 불렀다. 지구는 이제 온난화 단계가 아니라 끓고 있는 상태라고. 큰일 난 건 지구가 아니라 인류라고. 우리는 이제 X됐다고.
인류 최고의 블랙코미디물 <심슨 가족>에서도 기후 위기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바트 심슨이 “올해는 내 인생 최고로 더운 여름이야”라고 말하자, 아빠 호머 심슨은 웃으며 답한다. “올해는 너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란다.”
인류가 하루에 만들어내는 탄소가 몇 톤이고 하는 막연한 말보다 이쪽이 훨씬 더 소름 끼친다. 당장 오늘도 끔찍할 정도인데 앞으로 더 뜨거워질 일만 남았다니. ‘인류 생존 한계 온도’라는 말을 새삼 체감하게 된다. 그늘에 땀을 식히며 ‘그래, 이게 여름이지’하는 것도, 보사노바를 들으며 더위를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여름은 곧 사라질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친구 마감도비와 대화를 할 때면 우리는 사라진 것들을 되짚는다. 온스테이지, 미야자키 하야오, 언니네이발관, *미각… 왜 좋은 것들은 사라지는가.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사라질 만한 것들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지도 모를 것들을 이야기하며, 기나긴 한탄을 한다. 구질구질한 종류의 인간인 나는 몇 년째 이미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 것만 같은 존재를 곱씹으며 산다. 어쩌면 이게 나의 생존방식일지도 모른다.
*미각: 연신내 최고의 중식집.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얼마 전에 본 수학강사 정승제님의 예능이 퍽 인상적이었다. 과거 좋아하던 피자(피자헛 치즈크러스트 골드 시즌1)가 단종된 사건 이후, 자신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여럿 구비해 놓는다고 한다. 리모컨 꽂이는 3개, 방석은 8개, 티셔츠는 검정색만 300개, 뭐 이런 식이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이 사라질 것만 같은 거대한 공포. 단종포비아의 원인이 된 피자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공포감의 크기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내일 당장 고미태의 닭콩국수를 먹을 수 없게 된다면? 내년부터 뉴진스의 새 앨범을 들을 수 없게 된다면? 그런 상상은 도저히 구체화하기조차 싫어질 정도로 끔찍한 일이다.
음악도 영화도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기 마련. 여름도 이와 다를 것 없다. 당장 내년 여름은 지금과는 다를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도 더 뜨거운 날들이 더 오래도록 이어질 테니까. 적어도 우리가 아는 여름은 지금뿐이다.
내년 여름이 더 더워질 것이란 전망에 따르면 인간의 단종도 그리 머지않았다. 멸종위기종인 인간이라니. 문득 지하철 빈자리에 앉겠다며 나를 밀친 저 아저씨도, 시끄럽게 통화하는 맞은편 할머니도 미워할 수 없게 된다. 역시 ‘사라진다’라는 형용만으로도 그 존재가 애틋해진다.
나는 이것을 ‘여름적 사고’라 부르기로 했다. 어떤 대상이든 영원할 수 없다는 것.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살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시원한 여름은 지금뿐. 올여름의 더위를 마냥 괴로워만 하지는 말자고, 여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자는 마인드 셋팅이다.
마침 긴 장마가 시작됐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얹어졌지만, 나쁘지 않다. 비를 핑계 삼아 오랜만에 탁주를 사고 파전을 구웠다. 주말에는 빗소리를 ASMR 삼아 김오키의 음악을 듣고 날씨에 어울리는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다. 마치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구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여름적 사고에 의하면 지금이 바로 올여름의 하이라이트니까.
발행일 2024년 7월 17일
파주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87호 : 🌠좋은 것들이 멸종되는 시대, 가장 시원한 여름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Subscribe to 'fullchill'
Welcome to 'fullchill'!
By subscribing to my site, you'll be the first to receive notifications and emails about the latest updates, including new posts.
Join SlashPage and subscribe to 'fullchill'!
Subscribe
👍
Other posts in '[여름]'See all
풀칠
느리게 먹는 사람의 사정
올여름은 사람들이 봄에는 절대 하지 않던 말로 점심 시간을 알렸다. “아, 밖에 나가기 싫어!” 갑자기 쏟아지는 비나 찌는 듯한 더위로 무장한 요즘 날씨를 보면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봄에도, 겨울에도, 가을에도, 밖에 나가기 싫었다. 사람들이 밥을 너무 빨리 먹기 때문이다. 빨리 먹기만 하면 다행이다. 일찌감치 식사를 끝낸 임원들이 간혹 “음식이 입에 안 맞냐”, “다이어트 중이냐“, “속이 안 좋냐“ 같은 말을 하시는데, 말투도 다정하고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짜증이 난다. 차라리 회의실에서 혼자 배달음식을 천천히 먹는 쪽이 더 낫다. 물론 점심용 법카의 유혹을 무시할 순 없어 함께 나가게 되지만. 느리게 먹는 사람의 식사는 식당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우선 임원들과 다른 테이블에 앉기 위해 걸음 속도를 조절해 되도록 뒤편에 선다. 그렇다고 맨 마지막 순서로 들어가도 안 된다. 테이블당 인원을 맞추느라 임원들과 같은 테이블로 배치될 수도 있으니까. 끝에서 두세 번째로 입장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 단계는 그날의 식사를 편히 할 수 있는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데, 비교적 느리게 먹는 직원들과 앉으면 식사를 끝낸 임원들 쪽 테이블은 먼저 일어날 것이므로 나는 여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임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면? 직장 생활 11년 차에겐 아직 많은 팁이 남았다. 제일 늦을 것은 확정이니 “왜 이렇게 밥을 안 먹냐” 소리를 듣지 않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한다. 먼저 메뉴 선택. 내 메뉴가 가장 늦게 나올 것을 감수하고 자유롭게 선택할지, 안전하게 누군가 주문한 메뉴를 같이 고를지 선택해야 한다. 이때 웬만하면 면보다는 밥으로 주문하는 게 좋다. 면은 먹는 도중 불기 때문에 남긴 양이 더 많아 보일 수 있다. 옆 사람에게 맛 좀 보라고 나눠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 공깃밥을 먹는 경우에는 나올 때 꼭 뚜껑을 덮어 놓는다. 모든 시도가 실패한 날에는 “왜 이렇게 밥을 안 먹냐”라는 말을 그냥 받아들인다. ‘밥 먹었냐’는 말이 안부 인사인 한국 사회에서 식사량을 체크하는 어른의 말은 걱정 어린 관심이니까. 혹시라도 욱하는 마음에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라요. 저는 빨리 먹으면 체해서 밥을 천천히 먹는데 다들 너무 빨리 드시니까 먹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맨날 제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시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직장과 두 번째 직장에 다닐 땐 감히 따로 밥을 먹는다는 생각은 못 했다(지금은 다섯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게다가 그곳에는 남이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상사들이 있었고 불행히도 나의 식사 속도는 그때도 똑같이 매우 느렸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라 늘 긴장했던 탓도 있겠지만, 점심식사마다 제대로 씹지도 않은 음식을 꾸역꾸역 삼킨 결과 내과에 출석 도장을 찍었고 카베진(위장약)도 달고 살았다. 그 카베진까지 토해내는 사태에 이르렀을 때는 직장 생활하면 원래 몸을 다 버리는 거라고, 밥 먹는 시간조차 윗사람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 한국 사회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어느 날 말수 없는 팀장이 막내인 네가 밥 먹을 때 말 좀 하라고 했을 때는 정말 억울했다. 아니, 밥 먹는 속도 맞추는 것만으로도 죽겠는데 말까지 해야 되나. 밥 먹느라 조용한 분위기가 괴로운 사람은 팀장이지 내가 아닌데. 나는 대체 언제 제대로 점심을 먹을 수 있지. 그때부터 이직의 조건도 ‘점심시간이 즐거울 수 있는 회사’가 됐다. 여전히 점심을 먹고도 배가 안 차 아이스라떼를 마시고 오후 세 시면 배가 고파 탕비실에 들락날락거리지만, 이제 빨리 먹는 사람들과의 식사에 나름대로 적응했다. 근로기준법 제54조 1항(2024년 8월 기준)에 따르면 근로자는 하루 여덟 시간 일하면 1시간의 휴식 시간을 근로 시간 도중에 제공받아야 하고 대부분의 회사는 이 시간을 점심시간으로 쓴다. 이렇게 금쪽 같은 1시간을 다른 사람들이 내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데 쓰도록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불만인 쪽은 휴식 시간을 한 시간으로 정한 이들이다. 식당에 가고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고 돌아오는 데만 한 시간을 다 쓰는데! 밥 먹고 바로 앉는 것이 소화에 가장 안 좋다는데! 여유롭게 식사하고 음료 한 잔 들고서 산책하면서 소화할 시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주 4일제보다 점심시간 늘리는 게 더 시급하다고요. 휴식 시간을 한 시간이라고 정한 사람들도 중년 남자들이고, 밥을 빨리 먹을 테고, 밥 먹고 산책해도 한 시간 안에 할 수 있다면서 “왜 밥 먹는데 한 시간 이상 필요하냐”고 물으시겠죠? 음식을 먹으면 약 15분 후에야 뇌로 음식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전달된다. 천천히 먹을 땐 이 신호를 많이 받지만 빨리 먹으면 특히 15분 내로 먹으면 신호를 잘 못 받아 배가 덜 부를 수밖에 없다. 요즘 혈당을 낮추기 위해 탄수화물을 마지막에 먹는 식사법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빨리 먹으면 소용없다. 혈당이 급하게 올라 몸이 쉽게 피로해지며 각종 위장 질환이 생기기도 쉽다. ‘밥 먹었냐’는 인사가 안부인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나 밥을 잘못 먹고 있다. 식사 속도만 늦춰도 과식을 방지하고 소화도 잘 시키고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풀칠
번아웃이 처음인 사람
번아웃인가요? '어디 보자...이 정도면 웰던인가?' 잠깐 서 있기만 해도 바삭하게 타들어 가는 한여름, 나는 머릿속으로 굽기 정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스테이크 얘기가 아니라 번아웃 얘기다. 사실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조금씩 속에 불이 있을 거다. 누군가는 업무 지시에 천불이 나고, 누군가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고, 누군가는 잔불만 남겨둔 채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겠지. 그게 홧병이 되고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되고 번아웃이 되고, 뭐 그런 거 아닐까. 아무튼 한 여름에 피부만 타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마음 속의 불까지, 안과 밖이 골고루 타고 있다. 인터넷 어디 한 구석에서는 번아웃까진 아니고 노릇하게 타버린 상태를 토스트 아웃이라고도 하던데...얼마나 'Burn'했는지 겪어보질 못했으니, 지금 내 마음은 잘 타고 있는 건지 하염없이 들춰보기만 했다.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 입학생들의 기숙사를 정해주는 마법 모자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판단하기 쉬웠을 거다. 🧙‍♂️: '번아웃!', '번아웃까진 아니네...토스트 아웃!', ‘일하기가 싫다...? 뺑끼!' 그러다 어느 날 출근해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글썽 하고 나는 것이다. 다 탄 장작이 쉽게 바스러지는 것처럼 텅 비고 허무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 길로 속초행 버스를 끊었다. 속초로 가자 속초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무거운 몸과 마음을 자리에 놓고 나니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내 일을 사랑하는 편이다. 일에 대한 낭만을 찾으면 멍청한 사람 소리 듣기 딱 좋은 낭다뒤(낭만 다 죽은) 시대에 좋은 팀장, 좋은 동료 만나 인정받으며 재밌게 일하고 있다. 그러니 이 울적한 기분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가 보고 싶어서 속초로 가는가 보다 생각했다. 바다는 어떤 넌센스도 다 품어줄 것 같았으니까. 그런 너절하고 시시한 생각을 하며 계획도 없이 속초 터미널에 도착하니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대충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어놓고 동명항을 따라 걸으며 두 가지 여행 원칙을 세웠다.
풀칠
이번 여름엔 포켓몬을
최근 업무 미팅에서 가장 편리한 스몰 토크 주제는 여름 휴가다.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회사 돌아가는 상황도 떠볼 수 있고, 여행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 계획을 물었을 때의 반응은 극명하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쓴웃음을 지으며 며칠 쉴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하는 이들도 꽤나 된다. 어떤 이들은 예전처럼 회사가 여름 휴가기간을 따로 두는 게 아니니 길게 다녀 올 필요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으니 짧게 연차를 써서 그냥 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멀리 놀러갈 힘도 없고 그냥 집에서 늦잠 자고 배달음식 시켜먹고 유튜브, 넷플릭스 보면서 쉬는 게 최고라는 얘기로 귀결된다. 나 또한 여러 일정으로 녹록치 않아진 탓에 긴 휴가를 내지 않을 예정이다. 대신 며칠 쉬면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그건 포켓로그다. 유튜브에 어느 샌가 자꾸 포켓몬 게임 영상이 뜨기에 뭔가 하고 하나 둘씩 챙겨 봤더니 일종의 팬게임이라고 한다. 포켓몬을 잡아서 배틀만 주구장창 하는 게임이라는 게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게 뭐가 재미있어, 하며 플레이 영상을 보다가 지하철 역을 지나치는 줄도 모르고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에는 게임을 그리 즐긴 편은 아니다. 학창 시절에는 메이플이나 던파를 조금 하던 게 전부고, 남들이 열심히 하던 롤을 한 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어서 성인이 되면 닌텐도를 사서 젤다의 전설 같은 게임을 하면서 여유롭게 쉬는 그런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게임이 어떻게 보면 일종의 유예였던 셈이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아시는지. 오늘의 쾌락을 내일로 미뤄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생각해보니 풀칠에 가끔 등장한 주제이기도 하다. 20대의 나에겐 게임이 일종의 마시멜로였던 거 같다. 누군들 몰입하며 즐길 수 있는 오락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마시멜로를 먹지 않아야지 성공한다는 철학을 순진하게 믿었고 게임이라곤 유튜브에서 게임 줄거리를 풀어서 설명해주는 영상을 보는 게 전부였을 따름이다. 근데 야근을 반복하는 요즘, 내가 먹지 않고 쌓아두었던 마시멜로는 다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거면 자기 개발이고 뭐고 오늘 하루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즐기는 게 훨씬 즐거운 삶 아닌가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삶을 지나치게 무겁게만 받아들이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오늘 하루를 최대한 즐겁게 보내는 게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싶다. 순간의 즐거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요즘 게임 중독이 질병이냐 아니냐 하는 주제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던데 그걸 보면서 조금 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중독에 대한 뉴스를 보면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일 중독은 어찌 된 일인지 장려되는 분위기다.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져 학업을 놓치면 큰일 나지만, 어른들이 일에 미쳐 사는 건 괜찮다니. 이번 주말엔 원룸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포켓로그나 하고 싶다. 그동안 미뤄왔던 여유나 즐거움 같은 것들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결국, 삶은 일과 놀이,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발행일 2024년 7월 24일 글 마감도비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88호 : 🕹️게임에게로 떠나는 휴가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