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디까지 보이시나요?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하나당 최대 500명까지 대상 설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사실 나도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지만 어쩌다보니 알게 됐다. 그런고로 지금 나는 총 3개의 멀티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1500명의 사람들에게 나는 단 한 장의 프로필과 배경으로 전달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상념에 가끔 사로잡힌다. 마감 노동자지만 영업에 가까운 일을 하다 보니 회사 밖 사람을 많이, 그리고 자주 만나는 편이다. 연락 또한 잦다. 전화나 메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가장 품을 덜 들일 수 있는 건 역시 카톡이다. 한 두 번은 예의상 문자를 보내지만 휴대폰으로 문자 하나하나 정성스레 쓰고 있을 여력이 없기에 서로 암묵적으로 PC 카카오톡을 활용한다. 일로 만난 사이인데 카톡을 하는 게 맞을까. 사회 초년생 시절엔 이런 이상한 고집을 가지고 꾸역꾸역 문자로 대화를 이어갔는데 어느 날 상대가 말했다. 마감도비님, 그냥 편하게 카톡으로 연락 주셔도 됩니다. 어쩐지 참고 참다 타이르듯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일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카톡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언젠가부터 나는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멀티프로필을 적용하게 됐다. 이런 사진을,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였다. 내가 여름휴가 때 어딜 갔고, 최근에 무슨 글귀를 읽었으며, 무슨 노래로 내 기분을 나타내고 싶은지 감출 수 있어서 편했다. 처음엔 ~주임, ~ 대리, ~ 과장 등 직책으로 저장된 사람들을 일거에 멀티프로필 적용 대상으로 설정했다. 그랬는데 연차가 쌓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났더니 멀티프로필이 하나 둘 씩 늘어나게 됐다. 결국 이젠 이게 멀티프로필인지 내 진짜 프로필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이게 진짜 내 프로필 아냐?’ 그래서 회사 폰이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편이다. 물론 ‘회사’ 폰이니까 그 나름의 불편함은 있겠으나(혹시 회사 폰을 쓰는 풀칠러분이 있다면 후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번거롭게 이 사람은 일로 만난 사람, 이 사람은 원래(?) 인간관계, 이 사람은 일로 만났지만 친한 사람,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람, 이 사람은 누구야... 따위의 고민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 하나의 폰으로 두 개의 연락처를 사용하는 ‘투폰’ 서비스를 권한 친구가 있었다. 사실 그때는 뭘 그렇게 칼같이 선을 긋나 싶었다. 그때 그 친구 말을 들을 걸. 지금은 이미 늦은 듯하다. 이젠 연락처를 분리해야 한다고 하면 업무용 연락처를 들어내는 게 아니라 내 사적인 연락처를 새로 하나 만드는 게 더 간단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번호이동을 하면 지원금을 많이 준다고 해서 혹했다가 같은 고민에 휩싸여 일찌감치 포기했다. 한번은 꽤 친하다고 생각한 업계 사람으로부터 멀티 프로필 설정이 돼 있는 걸 알았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해는 가면서도 의외랄까. ‘오호, 이 사람과 나는 이 정도 사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내가 이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게 돼서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지니게 돼 사이가 더 돈독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고민이나 번뇌도 실은 나라는 사람이 타인에게 쓰는 감정과 에너지의 효율이 나쁘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터놓고 나를 보여주면 어때. 혹은 어차피 남남인데 그냥 선 긋고 살면 어때. 이런 양 극단의 생각이 나를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닌다. 사실 올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세 번째 멀티프로필마저도 할당량을 모두 채우게 되었다. 네 번째 멀티프로필을 만들어야 하는 나. 프로필이란 무엇일까.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당신에게 나는 어디까지 보이나요? 발행일 2024년 3월 20일 글 마감도비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78호 : 👁️제가 어디까지 보이시나요?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