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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연휴에 나눈 얘기들
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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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큰 사건을 하나만 꼽자면, 저번 주부터 다시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5일이나 되는 이번 연휴를 연휴답게 즐길 수 있었다. 어딜 다녀야 쉬는 날도 있는 법이니까. 출근 제안을 거절했다면 남의 떡만 쳐다보며 쓰디쓴 입맛만 다시는 5일이 되었을 것이다. 5일은 긴 시간이다. 누군가를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할 만큼. 그리고 나는 이번 연휴에 꽤 많은 얘길 나눴다.
1
첫째 날엔 옷장을 만났다. 지난 1년 동안은 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회사에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쩍 볼 일이 많아졌다.

옷장 : 그래…출근하니까 어때?
나 : 그냥 그래. 1년 전에 퇴사할 때 세운 목표는 아무것도 못 이뤘는데 다시 출근하는 거니까. 아침마다 네 안을 뒤적일 때마다 포기 선언을 하는 기분이야.
옷장 : 나는 네가 양말을 신어서 좋은데….
나 : 나는 양말이 싫어.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일자리엔 '티어'가 있잖아. 경력으로 써먹기도 애매한, 그냥 돈 하나만 보고 하겠다고 한 일인데도 양말을 엄청 잘 챙겨 신고 나가게 된단 말이지. 1년의 시간을 돌아서 원래 있던 자리보다 조금 더 후진 자리로 돌아간 것 같아. 동화 속 탕자들은 한바탕 방황하고 나면 대박을 내거나 쪽박을 차더라도 원래 있던 곳으로는 돌아가던데…
옷장 : 그건 동화니까. 현실은 동화보다 빡세서 현실이고. 오늘은 양말 안 신니?
나는 대충 갠 빨래를 던져 넣고 옷장 문을 닫았다.
2
연휴 둘째 날엔 작업실을 정리하러 갔다. 나는 그동안은 월세 10만 원짜리 옥탑방을 빌려서 작업실로 쓰고 있었는데, 이제 회사에 출근하게 됐으니 쉴 때 미리 정리해둘 심산이었다. 사실 작업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민망하다. 작업이라고 하면 뭔가 창조적이고 멋진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실상 거기서 하는 일이라곤 디지털 눈알 붙이기에 가까운 아르바이트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뭐가 되었든 간에 이젠 정리할 것이니 큰 상관없다. 작업실-옥탑방에 가면 소파가 있다. 처음 입주하던 날 1층에 누가 버린 걸 주워다 놓은, 패밀리 사이즈의 파란색 소파였다.
나 : 널 주워 올 땐 뭐라도 돼서 나갈 줄 알았는데…
소파 : …(소파는 과묵한 편이었다.)
나 : 그래도 디지털 눈알 붙이기 하고 남는 시간에 뭘 많이 하긴 했어. 작년 연말엔 망한 계획 모아서 시상식도 열고, 올해 초엔 하고 싶은 일 받아서 여행 티켓 만들어서 보내고…남들이 보기엔 허튼짓거리로 보였겠지만…
소파 : …
나 : 그렇게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하고 싶은 일 하는 게 꼭 행복한 건 아니더라고. 하고 싶은 일=행복이라고 진리처럼 확신을 갖고 말하는 사람들은 엄청 많잖아. 다들 그런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별로 안 행복하던데.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남한테 권하겠어. 그래도 그땐 재밌었는데. '하고 싶은 일' 전도사 노릇. 언젠간 다시 해야지. 다시 확신이 생기면.
소파 : …
나 : 어쩌면 그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도 몰라.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라고 말하는 거랑 그냥 입 닥치고 묵묵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거니까. 해보기 전에 둘을 구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소파 : …
나 : 음…닥치고 지내는 건 꽤 좋은 것 같아. 몇 달 닥치고 지낸 덕분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할 배짱이 생겼거든. 맨날 기자나 에디터처럼 살짝 빗나간 목표를 세워두고 성에 안 찬다고 투덜대기만 했었는데. 돌아보니까 당연하다 싶더라고. 애초에 원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성에 안 찼던 거야.
소파 : …
나 : 비겁했던 거지. 근데…해보니까 내가 내 생각만큼 잘 하는 게 아니더라고. 글도 별로고 그림도 별로고. 후진 작가도 작간가? 아무한테도 못 보여줄 단편소설을 하나 썼고, 눈 딱 감고 공모전에 냈다가 광탈했지. 그리고 광탈한 날에…
소파 : …바퀴벌레가 나왔지.
나 : 내가 그날 이후로 작업실에 잘 안 오게 된 건 순전히 바퀴벌레 때문이라고. 그래도 난 성장했어. 작가가 되겠다고 말도 할 수 있고(여전히 목소리가 떨리긴 하지만) 내가 별로란 것도 알았어. 자기 객관화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아? 소크라테스 알아? 넌 모르겠지. 소파일 뿐이니까.
소파 : 근데 출근은 왜 한다고 했어? 그림도 배우러 다니고 글도 더 열심히 쓴다고 했잖아.
나 : …
소파 : 괜찮아. 원래 약간 비겁한 선택지가 더 고르기 쉬운 법이니까.
연습장, 이불, 수면바지, 슬리퍼 같은 것들은 7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처넣고 나니 이제 소파만 남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옥탑방까지 이걸 도대체 어떻게 들고 왔담. 그새 몸이 축난 건지 예전에 초인적인 힘을 냈던 건지. 도저히 혼자 움직일 수가 없어서 아빠한테 손을 벌리기로 했다.
3
연휴 3일째. 아빠는 트럭을 몰고 왔다. 옥탑방 아래 트럭이 세워져있는 걸 보니 꼭 학창 시절에 사고 쳐서 부모님을 불려오게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날엔 꼼짝도 안 하던 소파가 이날엔 번쩍번쩍 들렸다. 트럭 짐칸에 소파를 실어놓고 조수석에 탔다.

아빠 : 그러게 면허는 1종을 따라니까.
나 : 어차피 혼자는 못 옮기는데 뭐.
아빠 : 집에 들어와서 공무원 준비해라. 학원비는 내줄 테니까…
나 : 공부하면 다 붙나 뭐.
아빠는 트럭을 잘 몰았다. 차가 빼곡히 차 있는 산동네의 좁은 길을 난감해하는 기색도 없이 빠져나왔다. 심지어 차엔 후방카메라도 없는데. 나는 아빠가 운전하는 걸 옆에서 보며 절대 저렇게는 못할 거야, 나는 아빠처럼은 할 수 없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미안할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그래도 아빠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이 미안했다.
나 : 아빠…얘기 들었지…3개월 동안 잠깐 일하기로 한 거. 이거랑 여태 하던 다른 일이랑 합치면 그래도 남들만큼은 버는 셈이고…아니지, 옛날에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잘 버는 거지.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아빠는 트럭 위에 올라가 소파에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나 : 올해는 그냥 다니면서 한숨 돌리고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할래요.
아빠 : 그러든지.
4
그다음 날, 연휴 넷째 날엔 친구를 만났다.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는 어느새 3년 차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친구는 얼마 전의 차를 샀다고 했다. 친구의 새 차 트렁크엔 근사한 캠핑의자가 있었고, 추석이라 연 가게도 별로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냥 강가에 가서 앉아있기로 했다.
친구 : 이제 거지야. 차 사느라 돈 다 썼어. 새로 시작하는 거지.
나 : 어…거지는 나야. 근데 연말까지 다시 회사 다니기로 했어. 좀 쉬게.
친구 : 그래. 너 뭐 많이 했잖아. 그…뭐지…'풀칠'도 매주 보내고.
나 : 너 '풀칠' 열어보긴 하니?
친구 : 아니. 난 글 안 읽어.
나 : …나는 언제쯤 차를 살 수 있을까.
친구 : 저거 아직 내 거 아니야. 반은 빚이거든. 그리고 너도 돈 벌잖아.
나 : 그래도. 내가 버는 돈은 월세 내고 관리비 내고 밥해 먹으면 끝인걸. 차는 꿈도 못 꾸지. 돈 좀 모이면 아이패드나 살까…
친구 : 너는 빚질 일은 없잖아. 당겨서 살 수 없는 걸 쫓으니까. 그것도 나름 잘 사는 거야.
나는 친구가 말한 내가 쫓는다는 것이 아이패드인지 아니면 어떤 야망 같은 것인지 헷갈렸다.
나 : 아이패드?
친구 : 아니, 뭐냐…'풀칠' 같은 거.
나 : 너 안 보잖아.
친구 : 그렇지. 이젠 볼게.
나는 이젠 보겠다는 친구의 말이 기뻤지만 내색하는 건 좀 후져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캠핑의자를 뒤로 젖혔다. 슬슬 놀이 지려는지 해를 등지고 바라본 하늘이 연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방으로 돌아왔다.
5
벌써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5일이나 되는 긴 연휴도 끝이 나긴 하는구나. 내일은 다시 출근해야 하는구나. 아직 출근하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마음을 정하진 못했지만 덕분에 4일을 잘 쉬었으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약속도 할 일도 없어서 아마 누구도 만나지 않고 보내게 될 것 같다. 방에 누워서 연휴 동안 나눈 대화를 돌이켜봤다. 지난 대화를 돌이켜볼 때면 늘 그렇듯이 후회가 밀려온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받아쳐도 괜찮았을 텐데, 조금 더 쾌활하게 말할걸, 같이 웃을만한 다른 얘기를 좀 할 걸 등등.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옷장과 소파와 아빠와 친구를 모두 모아두고 몇 가지 사소한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게을러서 끝을 못 본 계획들, 옥탑방, 아빠의 운전 실력, 매일 자전거 타고 오르내리는 갑천, 갑천에서 보는 하늘 같은 것들에 대해 얘기했더라면.
아니면 추석답게 사근사근하게 인사를 전해볼걸. 옷장에는 새 양말을 넣어놓고, 소파한테는 그동안 덕 많이 봤다고 얘기하고, 아빠한테는 자신 있다고 허풍을 좀 치고, 친구한테는…음…무슨 얘길 한담…그래, 추석이니까 결혼 얘기를 하면 좋았겠다. 이렇게.
너 결혼할 거라고 했지. 빨리했으면 좋겠다. 너 결혼식 가게. 나는 작가가 돼서 네 결혼식에 갈 거야. 아마 무명이겠지만 무명작가도 어쨌든 작가는 작가니까. 지금보다 머리도 더 치렁치렁하게 기르고, 땀나면 안 되니까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 타고. 오토바이 사면 보험은 XX형한테 들고. YY이네 가게에서 정장도 한 벌 사 입고. 다른 애들이랑 돈 모아서 냉장고도 하나 사줄게. 냉장고는 ZZ이한테 하면 되겠네. 사진은…내 친구 사진관 하는 애 있거든? 걔한테 찍어달라고 하자. 결혼해라. 내가 네 몫까지 분리수거도 더 열심히 하고 고기도 더덜먹고 자동차는 원래 안타니까 더 안 타고…여하튼 내가 열심히 할 테니까 너는 애도 낳아라. 그럼 친구는 나의 개소리 공세에 깔깔댈 것이고 나도 같이 웃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연휴에 캠핑의자에 앉아서 친구랑 같이 강바람을 쐴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허튼 생각을 많이 했더니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었다. 오늘의 대화 상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냉장고랑 몇 마디를 주고받게 됐다.
나 : 뭐 먹을 것 좀 있니?
냉장고 : 어저께 집에서 가져온 반찬 많다.
그리고 락앤락에 담긴 반찬들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반찬 : 한 번에 다 안 먹어도 괜찮다.
나는 밥을 차리면서 맞는 말이라고, 아무렴 한 번에 다 이뤄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옛사람들이 태초에 연휴를 발명해낸 건 혹시 '어차피 한 번에 다 이뤄낼 수는 없으니 쉬면서 해라'라는 금언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달력 : 그건 아닌 듯.
달력을 넘겨보니 다음 달에도 3일짜리 연휴가 있다. 그것도 2주 연속으로. 게다가 이틀만 더 가면 또 주말이다. 지금 실컷 먹고 자고 일어나면 내일 출근하는 기분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창밖을 보니 달이 참 밝다. 여기까지가 연휴 동안 나눈 얘기들이다. 완벽한 시기에 찾아온, 참으로 아름다운 연휴였다. 좀 짧은 게 흠이긴 하지만.
발행일 2021년 9월 23일
야망백수
*이 에세이는 풀칠 제 58호 : 연휴에 나눈 얘기들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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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오늘도 어김없이 스마트폰 화면에 타깃광고가 날아들었다. <일 잘하는 PM이 되고 싶다면>, <눈치껏 못 배웁니다, 일센스>. 읽기만 해도 일잘러가 될 것 같은 매력적인 제목들이 당장 구독료를 결제하라고 들이댄다. 일은 못해도 돈 쓰는 거 하나만큼은 기깔나게 해내는 나는 단번에 결제창까지 다다랐다. 습관처럼 간편결제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찰나, 퍼뜩 정신이 들어 손가락을 놀려 팝업창을 재빠르게 닫았다. '카피를 참 영약하게도 잘 뽑았네'라는 감상 뒤에 어제 데드라인에 쫓겨 엉망으로 넘기고 온 그지 같은 슬로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때늦은 부끄러움이 밀려와 이른 아침부터 쌩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쓴 커피를 넘기면서 며칠 전 SNS에서 보았던 직장인 밸런스 게임을 떠올렸다. 나 빼고 다 천재인 팀에서 숨쉬듯 자괴감 느끼기 vs 내가 유일한 희망인 팀에서 혼자 밭 가는 소처럼 일하기 밸런스 게임의 가장 애석한 점은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게임 속에서는 우하하 팡파레를 외치며 '밭 가는 소'를 택했는데 현실은 전자(숨 쉬듯 자괴감 느끼기)의 삶에 가까웠다. 엘레베이터에서 이따금씩 마주치는 스테디셀러 작가, 옆 팀에 있다는 N만 유튜버... 굳이 그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회사에서 자괴감을 느낄 거리는 공기처럼 무궁무진했다. 당장 나만 빼고 죄다 일잘러인 팀원들과 일하다 보면 내 밥값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이 무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근무시간 내내 노션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투두리스트를 작성했건만 반도 해내지 못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해치웠어야 했던 일을 잔뜩 남겨둔 채 집으로 도망치며 지하철이 꼭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어야지 진짜.' 무능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다가도 내일 쳐내야 할 일을 아른거렸다. '그래, 일단 내일 일은 끝내고 나서 죽어야지.' 저녁 8시 정각에 맞춰 2030 직장인을 정조준 한 듯한 광고가 눈치 없이 팝업창을 띄웠다.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라니. 영악함을 넘어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야흐로 일잘러의 담론이 득실거리는 시대다. 그들처럼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콘텐츠를 뒤져보다 보면 세상에는 나 빼고 죄다 일잘러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잘러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일못러로 사는 건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다들 일을 즐기는 방법, 자신의 성과를 연봉협상에 이용하는 요령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나는 월급값만 겨우 해내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일잘러의 시대에서 일못러로 나고 자란 스스로가 꼭 도태된 돌연변이 같았다. 분명 세상의 절반이 일잘러라면 그 절반은 일못러일 텐데, 나 같은 사람들은 죄다 어디로 다 숨어버린 건지. 일못러들은 다들 죄인의 심정을 한 채로 집에 돌아가 벽에 머리를 쥐어박고 있느라 바쁜 걸까. 그렇다면 나도 어딘가에 머리를 냅다 들이박고 숨어버려야 하는 걸까. 자책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사회에서 만난 선배A와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숨 쉬듯 자괴감을 느끼는 근황을 토로했다. "사무실에서는 숨이 잘 안 쉬어져. 들숨에는 자괴감이 밀려들어 오고 날숨에는 자존감이 숭숭 빠져나가는 거 같아." 하소연을 무심하게 듣던 선배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풀칠
세이브포인트
확실히 나이가 든 모양이다. 어느 분기점을 지나면 시간이 곱절은 더 빠르게 흐른다던데. 나도 모르는 새에 그 지점을 지났는지 요즘 들어 시간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달리는 게 체감된다. 며칠 전에는 올해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매년 마찬가지기는 했다만 올해는 정말이지 뭐 하나 제대로 이뤄낸 게 없는데. 서랍 깊숙한 곳에 묵혀둔 다이어리를 뒤적였다. 이내 올해 1월에 호기롭게 적었던 포부를 찾았다. 빼곡하게 적힌 캘린더를 보자마자 괜히 펼쳤다는 후회가 들었다. 만다라트 표까지 작성해 가면서 해내야 할 것들을 긴 목록으로 작성해 두었는데, 그중에서 제대로 해낸 게 단 하나도 없어서다. 어제까지의 나를 두고 혀를 차며 한심해 하는 사이 일주일이 또 금방 지나갔다. 이제 올해 남은 시간은 겨우 93일이었다. 하루가, 한 주가, 또 한 달이 지나가는 속도가 두려웠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어느 날은 구글에 '시간이 빠르게 가는 이유'를 검색하기도 했다. 시간의 가속을 체감하는 게 나뿐만은 아닌지 검색된 자료의 수가 상당했고 첫 줄에 걸린 '소소한 건강 상식'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몸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줄어든다고. 그러면 뇌 안에서 일하는 신경세포들의 정보 처리 속도가 느려진다 거다. 몸의 속도가 느려지니 상대적으로 외부의 시간을 빠르게 느낀다는 세세한 설명으로 가득했지만 우둔한 나는 그 설명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스크롤을 아래로 굴렸다. 시간이 제멋대로 내달린다고 느끼는 건 비단 세포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다. 당연히 물리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시간의 흐름이 다를 리가 없겠지만,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특히나 사람들이 실제로 세월의 가속을 체감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순간이 어릴 때만큼 많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아마 오래 살아가면서 이미 경험해 본 것들이 많아졌을 거고, 그러다 보니 행복의 역치 값이 커지는 탓에 생기는 필연적인 일일 테지. 반대로 말하면 인상적인 기억이 풍성할수록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속절없이 떠나는 시간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최근 인상적인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연초에 하려던 계획이 일찍이 망하긴 했지만 분명 다사다난한 한 해였는데 극적으로 행복했던 순간도, 충격적이라 말할 수 있는 기억도 단번에 떠오르지 않았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회사와 집만 오갔던 게 문제였을까. 분명 집에서 소소하게 즐거움을 누리거나 회사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낀 적도 적지 않았는데. 감히 행복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일을 떠올리려 하니 괜스레 뒷골이 아려왔다. 여행을 떠나고 페스티벌에 갔던 몇 해 전 가을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명함 주는 방법도, 전화받는 것도 서툴렀던 1년 차. 계획없이 이직을 감행해 커리어가 된통 꼬여버린 것만 같았던 2년 차 때는. 분명 불안감에 떨긴 했지만 재미가 없지도, 행복에 무감하지도 않았는데. 그때와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업무로부터 도망칠 숨구멍을 요령껏 잘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맡은 일을 그르치곤 '망했다'는 말이 절로 터져나왔을 때도, 심각하게 좆됐음을 감지했을 때도 감정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세이브포인트를. 이를테면 내게는 엽떡(반드시 오리지널맛에 베이컨을 추가해야 한다)이나 마라탕, 홈런볼 같은 것들이 일종의 세이브포인트였다. 먹을 것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영상이나 흠모하는 작가에게서 받은 사인도 종종 나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포켓몬 센터의 역할을 해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내가 향한 세이브포인트는 제법 잘 작동했고, 덕분에 지금까지 휘청거리면서도 잘 걸어왔다. 세이브포인트라는 거창한 네이밍이 민망할 정도로 지극히 소소한 일들이지만 그렇기에 힘든 순간마다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상사에게 된통 깨진 날이나 나의 무능력에 실망하고 터덜거리며 돌아온 날에도 호쾌한 '배달의 민족 주문!' 하나면, 신경 써서 재생한 음악 한 곡이면 다시금 정신력을 회복했다. 최근에 시간이 멋대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도, 요즘 들어 쉽게 긴장하고 심장이 자주 요동치는 것도 모두 세이브포인트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수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장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회복력'이 관건이니까. 딱딱해져 가는 뇌가 지금 당장 세이브포인트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나의 썩은 몸에게 언질을 주는 것 같았다.
풀칠
시시한 어른과 맛없는 맥주
봄은 어느새 목련을 지나 벚꽃을 향해 질주 중이었다. 자정 무렵 퇴근길의 공기는 아직 제법 쌀쌀했다. 수입맥주 네 캔과 안주로 고른 과자가 담긴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삐 걷는 나를 부각시키기로 작정한 듯 골목길은 필요 이상으로 깜깜하고 조용했다. 편의점과 집의 중간 지점에 있는 코인 세탁소 앞을 지나치는데, 문득 그저 그런 시시한 어른이 돼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와 과자와 비닐봉지를 한 프레임에 담은 사진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가 곧바로 내렸다. 설렘이 가득한 꽃 사진들 사이로 이딴 사진이라니. 어쩐지 꽃밭에 쓰레기 버리는 몰상식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혹시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걸 모를 테지만, 그럴 때면 꼭 스스로 면박을 주게 된다. 뭐 자기 자신이 최후의 레드팀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겠지. 최근 3주 간 주말마다 결혼식이 있었다. 대학교 후배, 고등학교 친구, 사촌 동생 순서로 날이 잡혔는데 내 입장에서는 알고 지낸 기간에 따른 순서이기도 해서 기분이 묘했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결혼을 남일처럼 여겼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 벌써 자기 평생의 배필을 선택했다는 게 신기했다. “신기하다”는 소감에 당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도 내가 신기해”라고 똑같이 반응했다.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법과 제도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잡아준다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 생각에 결혼은 더하기의 계약이라기보다는 빼기의 계약이다. 서로를 책임진다는 약속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기 자신을 담보로 잡기 때문이다. 결혼이 사회의 모든 계약 중 당사자 구속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다. 책임. 그게 문제였다. 인생의 큰 결정을 해 나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상대적으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책임져야 할 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애매한 책임감으로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반복하는 내가 답답했다. 딱히 남들보다 어깨가 무거운 것도 아닌데, 더 얹을 것도 없으니 본인만 건사하면 되는데, 그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시시한 어른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가 나를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그저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살게 되는 것. 답답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맥주 한 캔의 알딸딸함에 기대 억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뿐이었다. 얼마 전 “짱구 아빠에게 맥주란 고단한 하루의 결승선이었으리라.”라는 문장을 읽었는데, 내게 맥주란 간이쉼터에 불과했다. 아마 짱구 아빠가 마시는 맥주와 내가 마시는 맥주는 완전히 다른 맛을 낼 것이다. 교훈적으로 글을 끝내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블라…”라는 문장이 나올 타이밍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아서 못 쓰겠다. 대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을 전하고자 한다. 경험상 모든 것은 정말로 지나갔고, 무엇이든 남았다. 이 말이 체념을 뜻하진 않는다. ‘Keep Going’에 가깝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견디는 것. 그 시간이 새긴 흔적을 궤적 삼아 고민하고 결정한 딱 그만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발행일 2021년 3월 31일 글 아매오 *이 에세이는 풀칠 제 35호 : 시시한 어른과 맛없는 맥주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