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을 위한 회사는 없다
회사는 왜 신입사원들을 위하지 않을까. 모든 직원의 사정을 헤아려주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제 앞가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갓 경험을 쌓기 시작한, 모든 것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회사는 왜 매몰차게 구는 걸까.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나는 지난해 여름 지금의 조직에 이직, 아니 이식됐다. 딱히 직급이 없는 조직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주임 정도일까. 업종이 바뀌었음에도 경력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얼른 한 사람 몫을 해주기를 바라던 회의 분위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도 내 경력과 직급은 부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일 년차(연봉협상)부터 사 년차(프로젝트 일임)까지 나일론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하기를 일 년 삼 개월. 이제는 일에도 회사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그래도 회사에게나 나에게나 길다고 말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길지 않은 시간 속에 꽤 많은 수의 후배들을 받았다가 잃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이제 나도 사수가 됐다고 좋아했는데 어느샌가 빈 책상을 바라봐야 했으니까. 맘이 여린 사람, 워라밸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 아직은 요령을 쌓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지금 회사에 없다. 저마다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 싹이 움트자마자 회사는 화분을 비웠다. 혹은 본인이 회사의 무관심과 관용 없음에 실망해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 좋아라 하던 그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주니어인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모든 것이 불합리해 보인다. 그들에게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뿐이었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제 실력을 발휘하는 건 시간문제였는데. 왜 신입사원들이 모든 시간과 여유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걸까? 업무의 속성을 파악하고, 조직의 생리(生理)를 이해하고, 사회성을 늘려가고, 단점을 보완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속성으로 끝내기를,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신입사원에게 충분한 관심과 기회를 주지 않는 건 월급을 일부 떼놓는 거랑 뭐가 다를까 하는 과격한 생각도 해본다. 된소리를 하자면, 처음부터 능숙하기를 바라는 회사의 요구가 때로는 너무 고깝다. 실패할 수 있는 것도 자본인데. 신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봉급을 받는 대신 실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고민을 회사에는 아주 희미하게 털어놓으면 더러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반론을 꺼내들었다. 회사라는 조직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뽑고 채우고 때로는 나가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순진하다,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 라는 말 앞에서 나는 순순히 물러났지만 마음은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 생각에 그건 회사의 경영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일이 고된 산업의 특성 탓도 아니었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볕이 좋은 날에 화분을 창문 앞이 아닌 외딴 담벼락 앞에 세워두니 시들 수밖에 없다. 회사는 사람에, 새로운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냥 회사를 욕할 수도 없다. 내 잘못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퇴사를 결심한 후배가 저녁 술자리에서 나에게 말했다. “선배는 피곤하지 않으세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만큼은 못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