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에게도 계획이 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의아했다. MZ세대는 성과보다는 워라밸을, 돈보다는 여유를 중시한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이상하다... 나는 야근을 좀 더 하더라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고(현실은 포괄임금제) 조금 고되더라도 직장이나 업계에서의 평판을 높이고 싶은데. 가끔은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더라도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내고 싶은데...” 의아함은 풀칠을 읽고 쓰면서도 계속됐다. 직장을 훨훨 떠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모임을 주도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퇴근 후에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를 긁적였다. 나에게도 ‘마감도비’라는 부캐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퀭한 얼굴로 노트북 앞에 붙들려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망령 같았다. 물론, 현실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매일 과다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체력과 감정은 매주 바닥을 친다. 게임업계에는 며칠 간 집중적으로 업무에 매달리는 ‘크런치 모드’라는 게 있다는 데 마감 노동자도 비슷한 시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마감으로 밤을 지샌 다음에는 몽롱한 의식과 극심한 무기력이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 나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게 확실했다. 일이 좀 줄었으면 좋겠어, 저녁에는 좀 쉬고 싶어, 와 같은 생각을 곱씹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름의 루틴도 바꿔보고 상사와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기도 했다. 워라밸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지금 생활이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아예 손에서 일을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일의 일부분에 분명히 흥미를 느끼고 있고 그건 때로는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늘 고민이었다. 뭐랄까. 최근 또래 직장인의 트렌드를 보면서 나는 좀 뒤쳐진 사람인가, 내 생각이 많이 낡았나 하고 남몰래 부끄러워했다. 다들 쿨하게 퇴근 시간이 되면 일에서 손을 떼고(혹은 마음을 떼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새로운 만남이나 모임에 참여하거나, 부캐를 만들어 열심히 시야를 넓히고 있을 때 나는 쟁기를 끄는 소처럼 당장의 눈앞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미련한 자신을 자책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일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게 꼭 복수의 조직, 복수의 프로젝트, 복수의 분야여야지만 가능한 것일까.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과 업무에서 ‘해볼 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실력이 쌓일 때까지 밀고 가보는 것도 일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이 조직에 오랫동안 몸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 뛰쳐나가야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에게 나쁘지 않은 경력과 실력을 가져다 줄 것이었으므로. 직장은 이를 테면 아이언맨의 슈트 같은 거랄까. 더 좋은 게 생기면 그때 갈아입어도 충분하다.(발목만 잡히지 말자!) 이렇게 얘기하니까 순도 100%의 낭만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내 태도는 ‘열정’이 아니라 ‘야망’이니까. 욕심도 어느 정도 담겨있다. 이를 테면, 5년 뒤, 10년 뒤에는 내 몸값이 어느 정도까지 올랐으면 좋겠다. 이런 처우를 받고 싶고 이런 프로젝트를 주도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와 같은 정량적인 목표도 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직장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정도(正道)는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거라는 얘기. 물론, 제풀에 지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할 테다. 조직의 이해나 문화에 매몰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거고. 트렌드에도 늘 레이더를 돌려야 한다. 나는 직장에 헌신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가능성에 헌신하고 싶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