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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번 여름엔 포켓몬을
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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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무 미팅에서 가장 편리한 스몰 토크 주제는 여름 휴가다.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회사 돌아가는 상황도 떠볼 수 있고, 여행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 계획을 물었을 때의 반응은 극명하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쓴웃음을 지으며 며칠 쉴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하는 이들도 꽤나 된다.
어떤 이들은 예전처럼 회사가 여름 휴가기간을 따로 두는 게 아니니 길게 다녀 올 필요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으니 짧게 연차를 써서 그냥 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멀리 놀러갈 힘도 없고 그냥 집에서 늦잠 자고 배달음식 시켜먹고 유튜브, 넷플릭스 보면서 쉬는 게 최고라는 얘기로 귀결된다.
나 또한 여러 일정으로 녹록치 않아진 탓에 긴 휴가를 내지 않을 예정이다. 대신 며칠 쉬면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그건 포켓로그다. 유튜브에 어느 샌가 자꾸 포켓몬 게임 영상이 뜨기에 뭔가 하고 하나 둘씩 챙겨 봤더니 일종의 팬게임이라고 한다. 포켓몬을 잡아서 배틀만 주구장창 하는 게임이라는 게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게 뭐가 재미있어, 하며 플레이 영상을 보다가 지하철 역을 지나치는 줄도 모르고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에는 게임을 그리 즐긴 편은 아니다. 학창 시절에는 메이플이나 던파를 조금 하던 게 전부고, 남들이 열심히 하던 롤을 한 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어서 성인이 되면 닌텐도를 사서 젤다의 전설 같은 게임을 하면서 여유롭게 쉬는 그런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게임이 어떻게 보면 일종의 유예였던 셈이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아시는지. 오늘의 쾌락을 내일로 미뤄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생각해보니 풀칠에 가끔 등장한 주제이기도 하다. 20대의 나에겐 게임이 일종의 마시멜로였던 거 같다. 누군들 몰입하며 즐길 수 있는 오락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마시멜로를 먹지 않아야지 성공한다는 철학을 순진하게 믿었고 게임이라곤 유튜브에서 게임 줄거리를 풀어서 설명해주는 영상을 보는 게 전부였을 따름이다.
근데 야근을 반복하는 요즘, 내가 먹지 않고 쌓아두었던 마시멜로는 다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거면 자기 개발이고 뭐고 오늘 하루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즐기는 게 훨씬 즐거운 삶 아닌가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삶을 지나치게 무겁게만 받아들이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오늘 하루를 최대한 즐겁게 보내는 게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싶다. 순간의 즐거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요즘 게임 중독이 질병이냐 아니냐 하는 주제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던데 그걸 보면서 조금 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중독에 대한 뉴스를 보면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일 중독은 어찌 된 일인지 장려되는 분위기다.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져 학업을 놓치면 큰일 나지만, 어른들이 일에 미쳐 사는 건 괜찮다니.
이번 주말엔 원룸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포켓로그나 하고 싶다. 그동안 미뤄왔던 여유나 즐거움 같은 것들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결국, 삶은 일과 놀이,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발행일 2024년 7월 24일
마감도비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88호 : 🕹️게임에게로 떠나는 휴가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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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불안하지 않은 삶이 가능할까
실업자로 보내는 늦여름 2024년 여름, 세 번째 직장에서 퇴사했다. 근속 기간 1년 10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사 생활이었다. 회사 문을 열고 나온 세상은 미친 듯이 더웠다. 회사 밖은 냉혹한 겨울이라더니. 이건 더워도 너무 덥다. 5분도 안 되어서 몸 여기저기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에 절여졌을 즈음 생각했다. 아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도 하던데, 이번 퇴사의 테마는 지옥인 걸까.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 이어질 때쯤 집에 도착했다. 부리나케 에어컨을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도 손은 버릇처럼 구인 사이트를 클릭했다.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구인 리스트를 쳐다보았다. 30대에 접어들어 겪는 첫 백수 생활. 이제 뭐 해 먹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스크롤이 바닥에 도달했다. 창을 새로고침한다. 또 스크롤을 내린다. 대체 이 스크롤을 왜 내리고 있지? 어제도 보았고 그제도 보았다. 사실 다 본 구인 리스트다. 그럼에도 다시 들어와 리스트를 본다. 왜일까. 구인 사이트를 끄고 인스타를 켠다. 휴가철을 맞아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이참에 나도 쉬어 볼까? 근데 백수 주제에 쉬는 게 맞나? 뭘 해야 하지? 직장을 내려놓자마자 한동안 보이지 않던 불안이 고개를 든다. 불안 없는 삶을 꿈꿨던 20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위험 회피적인 인간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건드리지 않았다. 통제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싶어 했고, 상황이 틀어졌을 때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 두려 했다. 두세 겹의 안전장치를 두어야만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학부생 시절 의심할 수 없는 학문적 토대를 찾는 토대주의자들에게 끌렸던 것은 아마 그런 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토대주의자들에 대한 선망 때문이었는지, 타고난 성정 때문이었는지 나는 삶에서도 안정적인 토대를 원했다. 사회인이 된다면 탄탄한 토대 위에서 출발하겠노라. 몇 년 고생하더라도 나의 삶을 절대 흔들리지 않게 가꿀 수만 있다면 남은 생은 불안 없이 보낼 수 있으리라. 그런 꿈 같은 생각을 했다. 불안해지고 싶지 않다는 감각, 불안 없는 토대 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당시 나를 추동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대학생 때는 온갖 전공을 오고 가며 지식과 정보를 폭식했다. 철학, 음악, 정치학, 경영학, 경제학, 국제관계학까지, 매 학기 21학점을 꽉꽉 채우고 도강에 청강까지 했다. 그 시절에는 불안이 무지에서 온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두려움과 불안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인이 된 후에는 돈이 불안의 원천이었다. 자연스레 직장은 불안을 잠재우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빠르게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고 회사 일에 몰입했다. 직장에서 잘 자리 잡으면 안정적인 삶이 되리라 믿었다. 언제 올지 모를 생활고에 대비해 월급의 대부분은 저축했다. 퇴사할 때를 대비해 2~3개의 프리랜서 일도 꾸준히 병행했다. 한때는 삶의 중심을 찾는 게 불안을 없앨 진정한 해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위계를 잘 확립하면, 삶의 정체성과 방향을 명확히 알게 된다면 그것이 안정적인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늘 숨 가쁜 삶이었지만 이렇게 달리고 달려 탄탄한 토대를 세우면 나에게도 영원한 봄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풀칠
느리게 먹는 사람의 사정
올여름은 사람들이 봄에는 절대 하지 않던 말로 점심 시간을 알렸다. “아, 밖에 나가기 싫어!” 갑자기 쏟아지는 비나 찌는 듯한 더위로 무장한 요즘 날씨를 보면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봄에도, 겨울에도, 가을에도, 밖에 나가기 싫었다. 사람들이 밥을 너무 빨리 먹기 때문이다. 빨리 먹기만 하면 다행이다. 일찌감치 식사를 끝낸 임원들이 간혹 “음식이 입에 안 맞냐”, “다이어트 중이냐“, “속이 안 좋냐“ 같은 말을 하시는데, 말투도 다정하고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짜증이 난다. 차라리 회의실에서 혼자 배달음식을 천천히 먹는 쪽이 더 낫다. 물론 점심용 법카의 유혹을 무시할 순 없어 함께 나가게 되지만. 느리게 먹는 사람의 식사는 식당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우선 임원들과 다른 테이블에 앉기 위해 걸음 속도를 조절해 되도록 뒤편에 선다. 그렇다고 맨 마지막 순서로 들어가도 안 된다. 테이블당 인원을 맞추느라 임원들과 같은 테이블로 배치될 수도 있으니까. 끝에서 두세 번째로 입장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 단계는 그날의 식사를 편히 할 수 있는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데, 비교적 느리게 먹는 직원들과 앉으면 식사를 끝낸 임원들 쪽 테이블은 먼저 일어날 것이므로 나는 여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임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면? 직장 생활 11년 차에겐 아직 많은 팁이 남았다. 제일 늦을 것은 확정이니 “왜 이렇게 밥을 안 먹냐” 소리를 듣지 않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한다. 먼저 메뉴 선택. 내 메뉴가 가장 늦게 나올 것을 감수하고 자유롭게 선택할지, 안전하게 누군가 주문한 메뉴를 같이 고를지 선택해야 한다. 이때 웬만하면 면보다는 밥으로 주문하는 게 좋다. 면은 먹는 도중 불기 때문에 남긴 양이 더 많아 보일 수 있다. 옆 사람에게 맛 좀 보라고 나눠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 공깃밥을 먹는 경우에는 나올 때 꼭 뚜껑을 덮어 놓는다. 모든 시도가 실패한 날에는 “왜 이렇게 밥을 안 먹냐”라는 말을 그냥 받아들인다. ‘밥 먹었냐’는 말이 안부 인사인 한국 사회에서 식사량을 체크하는 어른의 말은 걱정 어린 관심이니까. 혹시라도 욱하는 마음에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라요. 저는 빨리 먹으면 체해서 밥을 천천히 먹는데 다들 너무 빨리 드시니까 먹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맨날 제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시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직장과 두 번째 직장에 다닐 땐 감히 따로 밥을 먹는다는 생각은 못 했다(지금은 다섯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게다가 그곳에는 남이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상사들이 있었고 불행히도 나의 식사 속도는 그때도 똑같이 매우 느렸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라 늘 긴장했던 탓도 있겠지만, 점심식사마다 제대로 씹지도 않은 음식을 꾸역꾸역 삼킨 결과 내과에 출석 도장을 찍었고 카베진(위장약)도 달고 살았다. 그 카베진까지 토해내는 사태에 이르렀을 때는 직장 생활하면 원래 몸을 다 버리는 거라고, 밥 먹는 시간조차 윗사람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 한국 사회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어느 날 말수 없는 팀장이 막내인 네가 밥 먹을 때 말 좀 하라고 했을 때는 정말 억울했다. 아니, 밥 먹는 속도 맞추는 것만으로도 죽겠는데 말까지 해야 되나. 밥 먹느라 조용한 분위기가 괴로운 사람은 팀장이지 내가 아닌데. 나는 대체 언제 제대로 점심을 먹을 수 있지. 그때부터 이직의 조건도 ‘점심시간이 즐거울 수 있는 회사’가 됐다. 여전히 점심을 먹고도 배가 안 차 아이스라떼를 마시고 오후 세 시면 배가 고파 탕비실에 들락날락거리지만, 이제 빨리 먹는 사람들과의 식사에 나름대로 적응했다. 근로기준법 제54조 1항(2024년 8월 기준)에 따르면 근로자는 하루 여덟 시간 일하면 1시간의 휴식 시간을 근로 시간 도중에 제공받아야 하고 대부분의 회사는 이 시간을 점심시간으로 쓴다. 이렇게 금쪽 같은 1시간을 다른 사람들이 내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데 쓰도록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불만인 쪽은 휴식 시간을 한 시간으로 정한 이들이다. 식당에 가고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고 돌아오는 데만 한 시간을 다 쓰는데! 밥 먹고 바로 앉는 것이 소화에 가장 안 좋다는데! 여유롭게 식사하고 음료 한 잔 들고서 산책하면서 소화할 시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주 4일제보다 점심시간 늘리는 게 더 시급하다고요. 휴식 시간을 한 시간이라고 정한 사람들도 중년 남자들이고, 밥을 빨리 먹을 테고, 밥 먹고 산책해도 한 시간 안에 할 수 있다면서 “왜 밥 먹는데 한 시간 이상 필요하냐”고 물으시겠죠? 음식을 먹으면 약 15분 후에야 뇌로 음식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전달된다. 천천히 먹을 땐 이 신호를 많이 받지만 빨리 먹으면 특히 15분 내로 먹으면 신호를 잘 못 받아 배가 덜 부를 수밖에 없다. 요즘 혈당을 낮추기 위해 탄수화물을 마지막에 먹는 식사법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빨리 먹으면 소용없다. 혈당이 급하게 올라 몸이 쉽게 피로해지며 각종 위장 질환이 생기기도 쉽다. ‘밥 먹었냐’는 인사가 안부인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나 밥을 잘못 먹고 있다. 식사 속도만 늦춰도 과식을 방지하고 소화도 잘 시키고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풀칠
번아웃이 처음인 사람
번아웃인가요? '어디 보자...이 정도면 웰던인가?' 잠깐 서 있기만 해도 바삭하게 타들어 가는 한여름, 나는 머릿속으로 굽기 정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스테이크 얘기가 아니라 번아웃 얘기다. 사실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조금씩 속에 불이 있을 거다. 누군가는 업무 지시에 천불이 나고, 누군가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고, 누군가는 잔불만 남겨둔 채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겠지. 그게 홧병이 되고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되고 번아웃이 되고, 뭐 그런 거 아닐까. 아무튼 한 여름에 피부만 타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마음 속의 불까지, 안과 밖이 골고루 타고 있다. 인터넷 어디 한 구석에서는 번아웃까진 아니고 노릇하게 타버린 상태를 토스트 아웃이라고도 하던데...얼마나 'Burn'했는지 겪어보질 못했으니, 지금 내 마음은 잘 타고 있는 건지 하염없이 들춰보기만 했다.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 입학생들의 기숙사를 정해주는 마법 모자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판단하기 쉬웠을 거다. 🧙‍♂️: '번아웃!', '번아웃까진 아니네...토스트 아웃!', ‘일하기가 싫다...? 뺑끼!' 그러다 어느 날 출근해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글썽 하고 나는 것이다. 다 탄 장작이 쉽게 바스러지는 것처럼 텅 비고 허무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 길로 속초행 버스를 끊었다. 속초로 가자 속초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무거운 몸과 마음을 자리에 놓고 나니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내 일을 사랑하는 편이다. 일에 대한 낭만을 찾으면 멍청한 사람 소리 듣기 딱 좋은 낭다뒤(낭만 다 죽은) 시대에 좋은 팀장, 좋은 동료 만나 인정받으며 재밌게 일하고 있다. 그러니 이 울적한 기분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가 보고 싶어서 속초로 가는가 보다 생각했다. 바다는 어떤 넌센스도 다 품어줄 것 같았으니까. 그런 너절하고 시시한 생각을 하며 계획도 없이 속초 터미널에 도착하니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대충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어놓고 동명항을 따라 걸으며 두 가지 여행 원칙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