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아웃이 처음인 사람

1. **번아웃인가요?**

'어디 보자...이 정도면 웰던인가?'

잠깐 서 있기만 해도 바삭하게 타들어 가는 한여름, 나는 머릿속으로 굽기 정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스테이크 얘기가 아니라 번아웃 얘기다. 사실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조금씩 속에 불이 있을 거다. 누군가는 업무 지시에 천불이 나고, 누군가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고, 누군가는 잔불만 남겨둔 채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겠지. 그게 홧병이 되고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되고 번아웃이 되고, 뭐 그런 거 아닐까.

아무튼 한 여름에 피부만 타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마음 속의 불까지, 안과 밖이 골고루 타고 있다. 인터넷 어디 한 구석에서는 번아웃까진 아니고 노릇하게 타버린 상태를 토스트 아웃이라고도 하던데...얼마나 'Burn'했는지 겪어보질 못했으니, 지금 내 마음은 잘 타고 있는 건지 하염없이 들춰보기만 했다.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 입학생들의 기숙사를 정해주는 마법 모자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판단하기 쉬웠을 거다.

🧙‍♂️: '번아웃!', '번아웃까진 아니네...토스트 아웃!', ‘일하기가 싫다...? 뺑끼!'

그러다 어느 날 출근해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글썽 하고 나는 것이다. 다 탄 장작이 쉽게 바스러지는 것처럼 텅 비고 허무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 길로 속초행 버스를 끊었다.

1. **속초로 가자**

속초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무거운 몸과 마음을 자리에 놓고 나니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내 일을 사랑하는 편이다. 일에 대한 낭만을 찾으면 멍청한 사람 소리 듣기 딱 좋은 낭다뒤(낭만 다 죽은) 시대에 좋은 팀장, 좋은 동료 만나 인정받으며 재밌게 일하고 있다. 그러니 이 울적한 기분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가 보고 싶어서 속초로 가는가 보다 생각했다. 바다는 어떤 넌센스도 다 품어줄 것 같았으니까.

그런 너절하고 시시한 생각을 하며 계획도 없이 속초 터미널에 도착하니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대충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어놓고 동명항을 따라 걸으며 두 가지 여행 원칙을 세웠다.

-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기

-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돈 아끼지 말기

캬, 이거다. 역시 사연있는 여행엔 바닷길을 걸으며 원칙 같은 걸 세워야 한다. 속초의 밤바다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기네스 생맥주가 생각났다. 아마 Guinness - Suffer 광고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 길로 근처 기네스 생맥 파는 곳으로 향했다.

[330cc에 1.4]라고 적힌 메뉴판이 얄미웠다. 단위가 천 원은 아닐테니까. 낭만에는 가격표가 붙는다더니, 가볍게 마시기엔 쉽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 '돈 아끼지 않는 사람' 단전에서 올라오는 본전 감수성을 극복하고, 어렵게 기네스 한 잔과 피자를 주문했다.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나니 상상하던 맛과 생각하던 기분이 들어 행복했다. 가성비 생각하며 편의점에서 사마셨으면 이 맛이 안 났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소름까지 돋았다.

불현듯 가끔 어떤 음식이 미친듯이 먹고싶어 진다면, 특정 영양분이 모자란다는 몸의 신호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 먹고 있는 페퍼로니 피자와 기네스도 어쩌면 특정한 음식이 필요한 마음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두 번째 잔을 주문했고, 첫 날 밤을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다음 날부터 Anri - I Can't Stop The Loneliness를 무한 반복한 채로 아침 산책도 잠깐 했다가, 동네 사우나도 갔다가(의외로 해수탕이었다), 오마카세 예약도 했다가, 정처 없이 걷다가 힘들면 숙소 돌아와서 타이타닉도 보고, 자전거도 타고, 피시방도 가고, 항구에서 오징어회도 먹고, 지겨우면 숙소에서 잠드는 평화롭고 게으른 3일을 보냈다.

그냥 잘 쉬었을 뿐인데 감성에 젖어 속초로 여행 온 게 무안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돌아갈 날은 빠르게 다가왔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나니까 남은 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의무적인 발걸음으로 관광시장에서 만석 닭강정 2박스와 속초명물 허니샌드를 샀다. 속초에 여행왔다면 가족을 위해 닭강정을 포장해가는 일은 응당 해야 하는 일이다.

1. **돌아와서**

지금도 만석 닭강정에 기네스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전혀 화려하지 않았던, 어느 지역에서나 다 할 수 있던 여행을 굳이 속초에서 하고 느낀 것은 번아웃이 왔다면 ‘퇴사하세요!',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세요!'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기분이 꽤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밤에 업무 생각으로 잠이 안 와요, 제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고귀한 고민에 '운동하고 샤워하고 일찍 주무세요'라던지 '마라탕드세요'같은 답변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 없고 다 아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본질적으로는 내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이다. 고민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는 것,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쉬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 돌파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것, 만석 닭강정엔 기네스보다 일본 맥주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1. **쿠키 있음**

딱히 30대 아저씨의 속초 여행기를 궁금해할 것 같진 않아서 최대한 간단하게 3박 4일을 요약했지만, 인상 깊었던 곳이 하나 있어 따로 소개해 본다.

숙소 근처에 '[아프리카](https://naver.me/FeOCE1aE)'라는 술집이 있다.

마지막 날 어디 찾아가기도 귀찮고, 토요일이라 소란스러운 곳도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봤다. 이 집의 특이한 점은 혼술방을 따로 운영한다는 건데, 사장님이 '혼술방 찾아오셨냐'고 말하시는걸로 보아 알음알음 유명한 집인 것 같다.

혼술방으로 입장하면 독서실처럼 조용한 분위기에 벽면을 가득 채운 포스트잇이 보인다. 마치 명곡에 댓글로 사연이 달리는 것처럼 혼술방에는 세상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고민이 담겨있다.

얇은 포스트잇에 묵직하게 눌러쓴 각자의 고민과 마지막에 짠 듯이 다른 사람을 응원하는 문구를 읽고 있다보면,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묘한 소속감과 위로받는 따스함이 스며들어서 마음이 촉촉해진다(단 너무 과다한 감성을 함유한 포스트잇은 적당히 넘겨야 담백한 기분으로 방에서 나갈 수 있다).

속초를 혼자 갈 일이 있다면 방문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김치찌개는 방이 너무 더워지기 때문에 시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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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7월 31일

**글**   우럭

[🍪겉바속초(오타 아님) [풀칠 189호]](https://fullchill.stibee.com/p/194/)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89호 : 🍪겉바속초(오타 아님)**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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