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풀칠
자기반성이 없는 삶은 파국이다
대학원에 다녀본 적은 없지만 대학원생 조크를 몹시 좋아한다. 대부분은 기저에 자학이 깔려있는 블랙코미디이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학사: 전공에 아는 게 좀 생겼다 자부함 석사: 공부를 더 해보니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발견함 박사: 내 전공에 모르는 것만 있음 교수: 나도 내가 뭘 연구하는지 모르는 상태 게으른 학생이래도 넉넉하게 대학교를 졸업했을 만큼의 시절을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이쯤 되면 하고 있는 일엔 정통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일을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만 잔뜩 있을 뿐이지, 당장 다음 주에 하게 될 업무도 자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딱 석사 정도의 마인드랄까. 이제야 내가 이 일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고 있다. 요즘엔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일을 두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를 의심부터 한다. 책상에 앉은 채 입을 다물고 있지만, 코어 감정이 ‘불안’인 나의 뇌는 바쁘게 요동친다. ‘아마 제때 해내지 못하고 손을 빌리진 않을까. 그렇게 나의 무능을 또다시 증명해 보이진 않을까. 이 일이 내게 맞는 옷인지 주말엔 시간을 들여 고민해 봐야지…’ 그런 고민들을 하다가 밀린 업무를 간신히 해치우고 만다. 나는 어째서 매번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며 박해하는 걸까. 그런 반성을 몇 차례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이내 본인을 과대평가하는 것보단 이 편이 낫다고 결론을 내린다. ‘어라? 일이 쉽네?’라는 생각을 품을 때면 여지없이 실패했으니까. 방심은 금물이다. 물론 늘 해왔던 대로만 해도 충분한 일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관성처럼 지난 업무와 같은 흐름으로 적어냈다간 촌스러운 기획이 되고 마니까. 적어도 지난달의 나보다는 조금 나아진 아이디어를 내밀어야만, 옅게나마 회사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낼 수 있다. 최근에서야 자각한 사실은 서른이 넘으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을 일이 없어진단 거다. 몹시 공포스러운 일이다. 몇 년 차가 되었으니 알아서 이 정도는 해내겠지, 하는 기대감이 서려있을 테고. 당장 나조차도 그렇다. 요즘엔 구태여 타인에게 쓴소리를 건네지도 않는다. 관계를 껄끄럽게 하고 싶지도 않고 불편함을 감수해 피드백을 주더라도 쓸모가 있을까 싶어서다. 수십 년은 족히 쌓아왔을 고집을 몇 마디 말로 뚫어낼 리 만무하단,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란 생각에 체념하게 된다. 오히려 가망이 없을 때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무섭게 만든다. 내일 업무에 대해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이제는 나이를 적잖게 먹고도 스스로를 ‘능력자’라 자칭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뭐랄까. 사기꾼이거나 메타인지 체계가 박살 났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자기에 도취돼 반성이 없는 삶은 사람을 구리게 만들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는 무능한 동시에 못난 인간이고 싶진 않다. 자기반성이 없는 삶은 파국이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겠다 다짐하며 오늘도 자신감이 박살 난 채로 출근한다. 못해 먹겠다며 한참 엄살을 떨었지만. 뭐, 늘 그래왔듯 어떻게든 해내고 말겠지. 물론 이게 최선일 리는 없겠지만, 자기반성이 있는 한 적어도 최악은 아닐 것이다. 발행일 2024년 10월 23일 글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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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그저 숙련되고 싶어요
3년만 버텨라. 입사 초기 상사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때는 그 말이 일종의 격려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익숙해지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도 익숙해지기보다는 뭔가 자꾸 어긋난다는 기분이 들었다. 연차가 쌓이면 일에 더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회사의 요구와 나의 자질은 점점 미스매치되는 것 같다. '3년만 버티라'는 말이 꼭 나를 위한 조언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은 회사가 나를 더 효율적으로 부려 먹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입사 4년차가 된 지금(이직에 실패해 이곳에 남은 탓이지만), 나의 역량과 회사가 기대하는 방향이 어딘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과 회사의 요구가 부조화를 이루는 현실이 다가오면서, 일에 대한 고민과 회의가 한층 더 깊어졌다. 최근에는 회사와 면담하는 일이 잦아졌다. 회사에서 칭찬을 받는다고 뛸 듯이 기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내가 적절한 범주 안에서 직장 생활을 잘 해내고 있다는 청신호로 받아들였다. 그 칭찬들은 나름대로의 안도감을 주었고, 일에 대한 내 방식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그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프로젝트, 시의적절하지 못한 보고, 부사수의 근태 등 내가 듣는 모든 피드백이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동안 '열심히 한다', '꼼꼼하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칭찬으로 들려왔던 내 모습이, 이제는 '답답하다',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로 돌아왔다. 내가 가진 장점이 상황에 따라 단점으로 변하는 순간을 맞이하며, 그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열심히 해준 건 맞지만…" "이제는 열심히만 해서는 부족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누군가 내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허탈함과 배신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내가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회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나는 회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이 조직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일까. 요즘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다. 배에서 칼을 떨어뜨렸는데 배에다 표시를 하고, 그 자리에서 칼을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이 사자성어가 내 상황과 너무나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나는 예전의 방식을 고집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들 연차가 쌓이면 이렇게 전혀 다른 자질과 능력을 요구 받게 되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 노력이 타성으로만 치부되는 것 같아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의 성실함이 이제는 무의미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느껴지는 무력감. 마치 내가 쌓아온 시간이 헛되었다고 여겨지는 순간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으로 다가왔다. '숙련마저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일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 체력은 바닥났고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여유도 남지 않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업무의 대부분이 떠넘겨진 것이라고 항변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라면 직장에서의 인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유유자적 살아야 할 때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뭐, 어떻게 되겠어? 망해봐야 퇴사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 지하철에 올라탔는데, 갑자기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지하철 방송 멘트가 들려왔다. 지연 안내인가 싶어 이어폰을 뺐는데, 앞부분은 놓쳤지만 지하철 기장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승객 여러분, 반복되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을 응원합시다." 뭐야, 하늘의 계시인가. 조금은 마음이 느슨해지는 걸 느끼며, 그렇게 회사로 향했다. 발행일 2024년 10월 16일 글 마감도비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95호 : 🔥열정도 타성이 되나요?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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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습관을 팝니다
“전세계 유료 구독자 3억명을 달성하며 한국 IT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쓴 분이죠. 습관 이식 앱 ‘세일더해빗’의 계발전 대표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나요?”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앵커님도 얼굴이 밝아보이시네요.” “저야말로 대표님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바로 작년에 세일더해빗 유료 구독자가 1억5천만명을 돌파하는 시점에 이 자리에 모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요. 단 일 년만에 그 숫자가 두 배로 늘었습니다. 나름 오랫동안 IT업계를 취재해온 입장이라 그런지 꼭 제 일처럼 기쁘네요.” “고맙습니다. 제가 대표라는 역할을 맡고 있어 이 자리에 나왔지만, 모든 구성원이 힘써준 결과입니다. 앵커님처럼 회사 밖에서도 많은 응원과 도움을 주신 분들이 계셨고요.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계속해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이는 회사로 가는 택시 안에서 오늘자 8시 뉴스에 출연한 계발전 대표, 아니, 피터의 영상을 돌려보며 그가 언급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회의에서 피터는 각각에 대한 밑그림을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회의 자료를 제때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해도 시간이 모자라다. 원래는 생방송을 보며 진행했어야 하는데 앞선 일정이 늘어지는 바람에 놓쳤다. 웬만하면 중간에 자리를 정리했겠지만 플랫폼법 개정안을 위한 정부 주최 토론회 뒤풀이였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에게 밉보이는 것은 피터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술도 몇 잔 받아마셨으므로 약간 피곤함을 느꼈지만 제이는 피터처럼 큰 층위의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을 업무지시사항 형태로 바꾸는 습관을 이식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업무를 할 수 있었다. 회사에 도착할 쯤 정리가 끝났다. 제이는 그것을 각 국가 담당자들에게 전송한 뒤 노트북을 닫고 택시에서 내렸다. 이제 그들이 기획안을 보내오면 취합해 회의자료로 만들 예정이다. 제이 역시 자신의 기획안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 건물로 들어갔다. 군데군데 불이 켜진 것 보니 아직 몇몇 팀이 남아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피터가 답변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앞으로 이용자는 세일더해빗에서 자신의 습관을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된다’였다. 지금까지는 소위 ‘좋은 습관’이라고 일컬어지는 행동을 모아서 그것을 패턴화 하고 디지털 파일로 변환시킨 뒤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구매자가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업로드하는 것까지 모두 세일더해빗이 처리했다. 이제는 누구나 쉽게 자기 습관을 디지털 파일로 바꿀 수 있고 반대로 타인의 습관을 자유롭게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안전성에 의구심을 갖는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세일더해빗이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관리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획기적인 변화인 것은 사실이었다. 제이는 “자기계발 시장에서 다시 없을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환호하던 앵커의 흥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해 자기도 모르게 귀를 후벼팠다. “예전에 넷플릭스가 OTT 시장을 평정한 다음 신성장전략으로 타깃한 모델이 유튜브였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분야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플랫폼 기업은 ‘생산의 하방을 얼마나 열어둘 것인지’와 ‘그렇게 생산되는 결과물의 퀄리티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라는 문제를 풀어내는 만큼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일더해빗은 단순한 콘텐츠 플랫폼이나 커머스 플랫폼이 아니라 뇌에 직접 영향을 주고 실제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안정성과 윤리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걸 해낼 수 있다면 소수의 인간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비약적으로 진화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탁월한 역량을 가진 우리 팀이 결국 그걸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하려던 찰나, 스마트폰이 추천 영상을 하나 띄워준다. 유난히 세일더해빗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교수다. 이번 방송 인터뷰에 대해서도 뭔가 한마디 한 것 같다. “…그러니까 옛날 우리가 ‘잡스병’이라고 비꼬았던 행태를 떠올려봐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괴팍한 성질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들이 혁신적인 스타트업 대표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도 된 것처럼 퍼졌죠. 성공한 인물의 전기를 읽고 감동 받아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더라도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일더해빗의 지향점은 명백하게 틀렸어요. 습관을 통해 개인의 삶이 바뀌는 게 아니라 개인의 삶이 습관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고 해도 타인의 습관을 다운로드 하는 일은 그저 타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일 뿐입니다. 습관은 본질적으로 간단하게 형성되는 게 아니에요. 이건 안정성이나 윤리를 논할 수준도 아닙니다. 그냥 허구예요. 흔한 자기계발서의 부정적인 ‘배리에이션’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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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타성의 해변에서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타성에 젖었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타성에 젖는다는 것은 곧 경쟁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여행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가 보일러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캐리어에게 말했다. “그래, 다시 좋은 시절이 온 거야?” “아니. 아무래도 타성에 젖은 것 같아서 연차를 좀 썼어.” “그래. 그게 매뉴얼이지." ‘매뉴얼이라.’ 캐리어의 아가리에 짐을 쑤셔 넣는 동안 그는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싸는 행위조차 타성에 젖은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관절 타성이 뭐란 말인가. 그는 타성에 젖어서는 안된다고만 배웠지 정작 타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타성에 젖지 않을 수 있는지는 배워본 적이 없었다. ‘다들 여행을 하면 뭔가를 배운다고들 하잖아.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내가 배워야 하는 건 타성인지도 모르지.’ 모든 순간을 배움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그의 부지런한 정신은 이번 여행의 테마를 정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1. 비행기에서 비행기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만 한다. 수동적인 태도를 미덕으로 삼는 시공간은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비행기 표값이 그렇게 비싼 이유는 아마도 그 희소성 때문일 것이다. 승무원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니, 생존본능과 목적에 대한 갈망이 모두 살균된, 타성에 젖기 위해 세팅된 실험실이라고 불러도 좋은 곳. 실험실의 고요가 잠시 흐트러지는 유일한 순간은 누군가 배설을 해야 할 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