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ate de Saturne
너 생각이 났다. 아주 잠깐. 나에게 닿은 것이 뜨거운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을 정도의 잠깐. 딱 그만큼. 이내 생각을 지워버린 것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는 것처럼 생각을 그만둔 것은, 아직도 너 생각이 조금 뜨거워서이다. 잘 모르겠다. 길게 늘어뜨린 그림자조차 만나지 못하는 너와 나 사이에 대체 무엇이 있었길래, 너가 뱉은 숨을 내가 마시고, 너가 뱉은 말을 내가 듣던 그 때의 무언가를 그토록이나 간직하고 싶었는지. 우리가 지나간 곳에 남은 것은 오로지 샴푸인지 린스인지 모를 강렬한 너의 냄새 뿐이고, 그 때의 나의 시선에 담긴 것은 온통 너뿐인지라. 너와 나의 추억이라고 부르는 것 조차 어색할 정도로, 그 속에 나는 없었다. 그 시간들은, 우리의 것이었나, 너만의 것이었나. 너와 나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보통의 인간관계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나 사실은, 손가락 사이에 점이 있어-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나는 두 번째 발가락이 엄청 길어-라고 말했다.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일단 나는 꽤나 해맑게 웃었던 것 같긴 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탓이다. 다른 누군가가 나로 인해 울고 웃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왠지모를 두근거림과 긴장감, 설렘...어느정도는 오락의 성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너를 더더욱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나로 말미암은 너의 감정의 표출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던간에, 몹시도 소중한 것이었다. 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떠올리면 따끔거리는 기억의 처분은 항상 많은 곤란을 낳는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유일한 질투의 대상이 과거의 나뿐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또한 그 과거의 내가, 질투의 대상임과 동시에, 미래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동정의 대상이기까지 하면, 나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너와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걸었다. 땀이 줄줄 나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어지러울 때까지 걸으며, 나는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도로 위에 거친 심박수 그래프를 그렸다. 이 길을 둘이서 함께 걸어도 그다지 좁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아주 가까이서 걸었기 때문. 이 길을 둘이서 함께 걸어도 그다지 덥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이 길보다 더 뜨거웠기 때문. 새하얀 별사탕을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썼던, 전해주지 못한 편지를 겉옷 주머니에서 찾았다. 번져버린 글씨들, 흐릿해진 마음들, 더러워진 여백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간신히 유지 중이던 균형을 잃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때 그 별사탕 속에는, 양귀비 씨앗이 하나. 너가 주었던 콘페이토는, 생각보다 설탕맛이 많이 나지 않았어서. 살짝 부족한 당도는 너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공간은 변해가고, 삶은 반복되고, 기억은, 희석된다. 그래, 나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추억이라는 이름 아래라는 핑계로 선명히 기억하지도 못한 채, 서서히 희미해지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처럼. 그리움과 서글픔을 적절히 뒤섞은 그것은, 이제는 꽤나 밍밍한 맛이 되었다. 알코올이 가득한 술잔 속에 깊이 담궜던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들을, 하나 둘 조심스레 꺼내어본다.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눈부실 정도로 푸르른 봄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째서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가. 아직 깊은 한구석에 자리한 채 훌쩍거리는 그것을, 천천히 어루만지다, 한 번 콱 세게 쥐어버리곤, 나는 자는 듯 죽음에 들었다. 내일이면 깨어날 깊은 죽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