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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지식은 계속 비싸질까? [Fast Followers의 출사표]

(본 글은 2023년에 쓴 내용으로, 지금 보면 오래되고 지킨 것이 적어서 많이 부끄럽네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들고 돌아온 각설이 윤덕진입니다. 아래는 다소 도발적인 주제로 제가 새로 해보려는 프로젝트를 말씀드릴 거에요.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시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제가 요새 정말 강하게 들고 있는 생각입니다. 왜 좋은 지식은 계속 비싸질까요? 비싸진다는 것의 의미는, 탐색 비용이든 실제로 지불하는 비용이든 그 가치가 점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지식의 수익화 - 그놈의 부업 붐
해피캠퍼스가 성인까지 확대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자더라도 돈이 들어오는” 부업으로 돈을 벌려고 하고, 수익화가 쉬워지는 많은 도구들이 널리 퍼졌습니다. (애드센스, 크몽 등등...) 몇몇 사람들의 성공신화는 “저정도면 나도..?” 라는 FOMO를 일으켜서 정말 대(大)부업시대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소수의 식견 있는 사람들은 정말 깊이가 있고 읽을만한 글을 쓰지만, 대다수의 부업꾼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부풀려서 누군가에게 과금을 합니다. 부업꾼들은 의미가 있는 정보인지 돌이켜볼 시간은 짧거나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평판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고, 내가 무슨 컨텐츠를 냈는지보다는 얼마나 많이 보는지, 얼마나 많이 사는지, 광고를 얼마나 클릭하는지에 초점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들은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지식 컨텐츠 시장은 점점 레몬 마켓이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짜친 정보를 빠르게 찍어서 PDF로 월 200만원 번다?! 이러면서 부업을 현혹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부업을 광고하는 부업을 하고 있기도 하구요.. 저는 완전히 난장판이라고 생각합니다.
SEO 컨텐츠 - 숨겨진 비용, 광고
SEO 컨텐츠가 구글 검색을 망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들어봤을 것입니다. (구글 검색이 죽어가고 있다) (YC Managing Director 마이클 시벨의 “구글 검색은 더 이상 높은 퀄리티의 결과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저는 구글은 챗GPT때문에 망한다고 우려하는 것만큼이나 자살로 쇠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bing이나 neeva 등 대체 검색 엔진을 쓰기 시작했고, 많은 검색어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업들은 컨텐츠 마케팅으로 진짜 의미 있는 정보를 주고 한줌의 킥을 얹어서 자신의 회사에 호의를 담도록 SEO를 기가 막히게 하지만, 나쁜 회사들은 저질의 컨텐츠를 뿌리고 적절한 대상도 아닌 사람들에게 시간을 낭비시키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검색어 순위는 높은 경우가 많은데 - 기술은 잘 쓰지만 선하게 쓰지는 않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으로 과거 제가 작성했던 리포트 스캠의 예시도 있구요(”제발! 구글에서 아무 마켓 리포트나 인용하지 마세요”)
컨텐츠 마케팅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컨텐츠 마케팅이 나쁜 것입니다. 저도 릴레잇 블로그 등 컨텐츠 마케팅을 잘 하는 곳은 경외심이 들 정도로 감사하고 있지만, 나쁜 컨텐츠 마케팅은 그저 부업을 회사 단위로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다.
저질 컨텐츠의 범람 - 탐색비용의 증가
위 두가지 요소는 결국 간접적이든(SEO) 직접적이든(지식의 수익화) 돈을 받고자 하기 위해 만드는 컨텐츠라는 점에서, 또 “컨텐츠 자체의 퀄리티”를 뒷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독자를 위하는 좋은 컨텐츠보다 더 많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직/간접적인 비용과 정보를 찾는 데 드는 시간을 포함한 비용이 더 많이 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ChatGPT가 만들어지고 더 커지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더 빠르게 컨텐츠를 찍어낼 수 있고, 컨텐츠의 도구화를 훨씬 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지식 수용자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쉽고, 씹어서 넘겨주는 빠른 답을 원하기 때문에 얕고 자극적인 지식들이 더 수요가 많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저도 반성합니다.
때문에 이제 저희가 하려는 프로젝트, Fast Followers는 그 반대에 서보려고 합니다.
저는 2022년 하반기 세 권의 책을 공동/단독 번역하면서 아래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1.
서울은 세계 10위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가장 최신의 사업 모델과 지식을 리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문서와 도서를 많이 참조하고 있어 번역에 대한 수요는 견조한 반면 번역되는 도서의 양이 적습니다. 전체 도서 시장으로 보았을 때 스타트업 시장이 작고, 대부분 영어를 할 수 있어 필요한 아티클만 골라서 볼 때는 크게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2.
하지만,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일례로 Zero-to-one은 12년 봄의 스탠포드 수업이었지만 출간되고 번역되기 전에 국내에서 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번역이 되고 잘 판매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 개념을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좋은 책을 가지고 오고, 번역해서 생태계에 뿌리는 것은 번역가들에게 가장 먼저 알게 된다는 효용을 주면서 동시에 한국의 전반적인 스타트업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번역이 되기까지를 기다리는 것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PM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inspired는 미국에서 2008년에 출간되었지만, 국내에서는 2012년에야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제가 번역에 참여했던 Product-Led growth, Obviously awesome 등은 2021년 12월에 출간되었지만 아직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은 등, 광범위하게 주의를 받는 책이 아니라면 (린 스타트업, 제로투원 등) 일반적으로 6달 이상의 리드타임이 소요됩니다.
4.
반면 번역에 드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좋은 번역 서비스들이 있고, 영어를 그렇게까지 잘하지 못하는 윤덕진이(토플 101점..;) 빠르게 번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맥을 읽고 인공지능이 실수한 부분만을 골라서 수정하는 것 정도면 충분합니다. 일반 번역가가 아닌 스타트업 씬에서 실제로 뛰고 있는 사람들이 번역을 해야 하고,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5.
원래는 해적판으로 컨텐츠를 번역하고 있었는데 (정말 공부용으로) 판권을 사오지 못하니 배포가 어렵고, 배포 잘못하면 잡혀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루트를 밟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The Cold Start Problem도 다 내렸습니다.. ;-; RHK에서 나왔으니 꼭 사서 보세요!)
저희는 도서담이라는 출판 스타트업과 함께 아티클보다는 깊은 지식이 담긴, 국내에서 꼭 읽혔으면 하는 해외의 도서들을 번역해 출판할 예정입니다. 지금 첫 책을 번역하고 있고 저희는 인건비 수준의, 사실 시급 1만원도 겨우 나올까말까 한 수준의 번역료를 심지어 확률적으로 벌 예정입니다. 왜냐면 우리도 배우려고 하는 것들이니까요.
저희는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지원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PM과 스타트업 코파운더 등등이 같이 번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역자는 의도적으로 많이 모으지 않을 예정이지만,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커피챗 부탁드려요.
해당 컨텐츠는 (다른 FF 멤버들의 경우 다른 채널도 많이 쓰겠지만) 먼저 간단하게 역자의 입장에서 옮긴이의 말을 책의 에센스를 담아 공개하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자주 들어올 이유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