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국가 문화 유산 - 곤룡포
이미지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곤룡포의 특징은 앞가슴과 등, 양어깨에 놓인 용무늬이다. 용은 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늬로, 임금의 용보는 용의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원룡보, 왕세자는 발톱이 네 개인 사조원룡보이다. 왕세손은 네모난 형태이면서 용의 발톱이 셋인 삼조방룡보를 가슴[胸]과 등[背]에만 달고 있어 흉배胸背라고 해야 옳을 것 같지만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에는 방룡보로 기록되어 있다. 용보에 나타나는 용의 형상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태조의 곤룡포에 그려진 용은 S자로 몸을 틀고 움직이는 비룡이며, 힘찬 발톱 다섯 개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용의 입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 초창기 개국을 알린 왕의 역동성을 담고 있다. 반면에 영조의 곤룡포에 그려진 용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역시 발톱 다섯 개를 서리고 있으나, 정면을 바라보는 용의 얼굴이 시선을 빼앗아 활동성을 드러내기보다 안정감이 나타난다. 이는 경제·문화적 황금기였던 당시의 시대성이 반영되어 조선 왕실의 르네상스를 느끼게 한다. 태조와 영조의 오조원룡보는 니금泥金으로 용을 그렸고, 고종의 곤룡포에는 금사로 수놓은 오조원룡보를 별도로 만들어 붙였다. 특히 고종의 오조원룡보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여의주가 있어 다른 용보와 다른 양상을 띤다. 가슴과 오른쪽 어깨에는 해를 상징하는 붉은색의 여의주가 있고, 등과 왼쪽 어깨에는 달을 상징하는 흰색의 여의주가 있다. 용의 몸통은 아주 정교하게 비늘을 수놓았으며, 보의 가장자리는 능선으로 마감하여 왕·왕비의 것과는 차등을 두었다. [한국민속대백과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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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불교 조각상으로, 사유(깊은 생각)에 잠긴 보살의 모습을 표현한 좌상이다.​ 형태와 의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한쪽 다리를 내리고 다른 쪽 다리를 그 위에 올린 '반가부좌(半跏趺坐)' 자세로, 오른손을 뺨에 대고 명상하는 보살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 자세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전, 인간의 고통을 생각하며 번뇌에 잠겼던 태자 시절의 순간을 상징한다. 이런 모습은 불교의 근본적인 사유, 즉 중생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탈의 길을 찾으려는 마음을 드러낸다.​ 역사적 배경 반가사유상은 기원후 2 3세기경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중국 북위·남북조 시대를 거쳐 한반도에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67세기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했는데, 특히 미륵신앙(미래에 중생을 구원하는 부처에 대한 믿음)과 결합해 '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 작품 한국에는 대표적으로 국보 제78호와 제83호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두 작품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에 전시되어 있으며, 동양 불교 조각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두 상 모두 신체의 균형과 옷주름 표현, 얼굴의 평온한 미소가 어우러져 삼국시대 불교 조각의 정점을 보여준다.​ 문화적 의의 반가사유상은 한국 불교 미술의 조형미와 철학성을 모두 담은 상징적인 작품으로, 단순한 예배 대상이 아닌 '사유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인간적 불상의 전형이다. 일본 아스카 문화의 반가사유상 제작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불교 조각의 미학적 기준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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