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얼마 전 서울 서촌으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을 다녀온 이후,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서울, 그중에서도 서촌은 정말로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역사와 장소, 자연까지—모든 요소에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고, 그 이야기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함께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야기(스토리)가 없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골목, 오래된 건물, 이름 없는 바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해지는 순간, 그것들은 ‘지켜야 할 것’이 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어 지역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고, 장소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파주는 어떤가?
“우리 동네엔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까?” “신도시 교하나 운정에는 옛 마을도 없고, 기억할 사람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기록할 수 있을까?”
파주, 특히 교하와 운정 지역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오래된 마을의 풍경과 이야기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눈에 띄는 문화유산이나 전통이 없다는 인식도 많습니다. 더욱이 이 지역은 대부분 십여 년 전부터 이주해온 주민들이 중심이어서,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이 희미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곳에 과연 이야기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한편, 교하·운정을 제외한 파주의 다른 지역들은 많은 경우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곳을 ‘지나치는 곳’, ‘살기 불편한 곳’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고, 오래된 기억이 깃든 장소이며, 무엇보다 ‘이야기’가 응축된 공간입니다.
조용한 그 마을들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생기와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불러내고,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요?
곱씹어 보면, 이건 비단 파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신도시가, 그리고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수많은 지역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과 장소, 그리고 이야기를 잇는 연결이 끊기면서 그 지역의 정체성과 생명력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절을 회복할 수 있는 시작점은 어디일까요? 바로 사람이 모이는 곳, 일상이 오가는 자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즉 마을공동체에 있습니다.
저는 공동체의 목적이 단지 공익적인 활동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공동체 활동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을의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밥을 먹고 차를 함께 마시는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싹트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 마을을 위한 ‘공식적인 활동’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실 마을공동체는 그 자체로 마을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마을에서 모이고, 마을에서 함께 활동하며, 마을에서 소비하고, 마을에서 생산하는 공동체. 그 활동 하나하나가 마을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되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실천이 되며,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래도 여전히 우리 마을엔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도 않고, 특별한 유적이나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며, 오래된 주민이 드문 지역에서는 무엇을 이야기로 삼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배움이 필요합니다.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외부에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 구성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번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마련한 두 차례의 강연은 바로 그 지점을 함께 고민해보기 위한 시간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우리 마을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찾아내고,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마을 스토리텔링은 단지 글을 쓰는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을 연결하고, 장소에 의미를 더하며,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실천의 방식입니다.
이번 강연은 스토리 작법을 가르치거나, 직접 이야기를 발굴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역의 삶과 역사, 문화 등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두 분의 강사와 함께합니다.
강연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 분명히 ‘질문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 공동체의 활동을 스스로 더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