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과 햇빛, 그리고 욱신거리는 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이 세 가지뿐이었다. 상상 속의 빛은 나타나지 않았고,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없음'이 나의 명상의 시작이 되었다. 무엇인가 있어야만 명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몸은 여전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통증과 묵직함, 욱신거림은 불편했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나는 그 몸에 의지하며 레이키 오계를 조용히 읊조렸다. 호흡을 바라보며 들숨과 날숨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은 절망의 터널을 통과한 후 남겨진 공허와도 같았고, 동시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출구와도 같았다.
절망의 터널은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빠져나왔다고 믿는 순간, 또 다른 터널이 이어졌다. 한 줄기의 빛을 기대했으나,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길 위에서 멈추지 않고 기도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기도는 나를 묶고 있는 무언가를 조금씩 느슨하게 했다. 누군가를 향한 말이자,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단순한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우연들이 내 카르마와 닿아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음으로써 나는 우연을 내 삶의 일부로 끌어안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마치 내 마음의 상처처럼, 때로는 단단히 조여와 나를 옭아맸다. 하지만 나는 그 실타래에 조용히 빛을 보냈다. 상상이 아닌, 손바닥의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듯 실타래를 어루만졌다. "미안하다"는 속삭임을 담아 보냈을 때, 실타래는 조금씩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실타래는 저항하지 않았다. 억지로 당기지 않아도, 강제로 끊지 않아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매듭은 느슨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명상은 거대한 깨달음이나 신비로운 체험이 아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 단지 지금 여기에서 내 몸을 느끼고, 내 숨을 지켜보며, 내 안의 실타래를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명상은 시작되고 있었다.
가을바람은 여전히 내 곁을 스치고, 햇빛은 따뜻한 손길처럼 등을 감싸 주었다. 욱신거리는 몸은 고통이자 안내자였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이 자리에서 명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상 속 빛이 없더라도, 신비한 징조가 없더라도, 나는 이미 명상 속에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끝이 없을 것 같던 길 위에서도 한 줄기 안도의 숨결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