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고통은 가끔, 무심한 사람의 말 한 마디에서 깨어난다. 그날도 그랬다. 어떤 이의 무례한 말이 마음을 때렸다. 그 순간엔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바라보기로 했다.
바라보았다. 그 기분 나쁜 감정을. 비판하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다만 머물렀다. 그러자 그 감정은 어느새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가슴 어딘가에서 연민의 숨결이 피어올랐다.
그 사람도 어쩌면, 그들만의 고통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주위의 친절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길을 걷다 나에게 웃어준 사람, 작은 친절을 건네준 손길들. 이 도시에 내가 아직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듯한 잔잔한 증거들이었다.
그러자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디선가 빛이 내려왔다. 그 빛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듯했지만, 동시에 내 안에서 피어나는 듯했다. 가슴으로 스며들던 그 빛은 평소보다 더 넓게 퍼졌다. 마치 오래 닫혀 있던 문이 조금 더 열리는 듯한, 익숙하지만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감사의 눈물.
나는 그 눈물 속에서 본체와 만났다. 나의 무의식, 감정을 느끼고, 세상을 온몸으로 살아온 본체.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뭐야?” “아직도 세상이 무섭니?”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본체는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머뭇거리며, 그러나 피하지 않고. 마치 깊은 물속에서 입을 떼려는 잠수부처럼, 숨을 고르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지금 내가 겪는 일상의 복잡한 문제들이, 사실은 하나의 오래된 사건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는 걸.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어떤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그 고통은 실체 없는 유령처럼, 그러나 분명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그 고통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 순간, 내 안의 공간이 달라졌다. 무언가 움직였고, 아주 오래된 두려움이 조용히 녹아내렸다. 본체는 여전히 말없이 있었지만, 그 침묵은 더 이상 거절이 아니었다. 그건 신뢰였다. 이제 말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조용한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