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창밖은 고요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정적 속에 나는 이불에 파묻혀 있었다. 그날 하루도 무심하게 흘러간 듯했고, 별다를 것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잠든 뒤, 마치 깊은 물 아래로 가라앉듯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곳에 있었고, 그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바람인가 싶었다.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희미한 속삭임 같은, 너무나 부드럽고 얇은 울림. 그런데 그것은 점점 또렷해졌다.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기도 했고, 전혀 낯선 언어로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정확히 누구인지 짚을 순 없지만, 분명히 이전에도 들은 적 있는 목소리였다. 아주 오래전, 잊혀진 기억 속에서 건져올린 소리처럼.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려 애썼다. 동시에 그 소리에 빨려들 듯, 무언가 내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시야는 명확했다. 온통 어둠뿐인 공간에 한 줄기 빛도 없었고, 향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목소리만 있었다.
"……"
무엇이라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고, 문장도 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속엔 감정이 있었다. 슬픔인지, 안도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결이 실려 있었다. 그 감정은 말을 넘어 내 가슴 어딘가에 닿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마치 낯선 이를 집 안에서 발견한 것 같은 놀람이었다. 가슴이 저리도록 두근거렸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눈을 떠야 할 것 같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사라질 듯 멀어지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나는 속으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 목소리는 다시금 나를 감쌌다. 마치 오래된 이불처럼, 다정하지만 묵직하게.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사라졌다. 바람조차 움직이지 않는 침묵 속으로.
눈을 떴을 때, 새벽이었다. 방 안은 어둠과 고요로 가득했고,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내 안은 달랐다.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잔향은 내 의식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그 목소리는 누구였을까. 왜 내게 찾아왔고,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 그것이 꿈이었는지, 아니면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무언가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 밤 이후, 나는 나 자신에게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말보다 감정으로 전해지는 어떤 메시지. 그것은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내 안의 '진짜 나'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