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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된 편집물
G
goodmorningsun
처음 필름 카메라를 들었을 때는 여름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동생이 선물해 준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어릴 적 살던 보수동 책방 골목을 돌아다니며 셔터를 눌러댔다. 
오래된, 작동되지 않는 타자기가 진열되어 있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카페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고, 책이 한가득한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책 제목 때문인지 책장 갈피를 찍기도 했다.
필름을 어떻게 끼워 넣어야 하는지 한 롤을 통째로 날린 적도 있고, 다 찍은 필름을 어디서 현상해야 하는지 현상소를 찾기도 했다. 좋아해서 필름 카메라를 선택했다기보다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들고 찍다 보니 필름을 좋아하게 됐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내 삶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게 필름에서 시작됐다고 과언이 아닐 만큼 필름 카메라와 사진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피사체를 대하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 느림보다 빠름을 추구하며, 낡은 맛의 멋에서 맛을 빼버린 듯한 일상이 다분했다.
근래에 하루에 멀다 하고 사건 사고가 많았기도 하고 뜻대로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마음이 무너져갈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찬찬히 상기하며 사유했다.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그렇다. 
나는 필름을 좋아했지만 결론적으로 무엇을 좋아할지에 대한 무게의 추를 중심에 두지 못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행위를 좋아하는지, 현상하고 난 뒤의 사진을 좋아하는지 둘 다이든지.
이들을 하나의 단위로서 생각하기로 했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해요 보다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다 소진한 후에 현상소에 맡기고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해요라든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게의 추를 각각에 달아낼 수 있는 그 무엇을 하기로 했다. 
아, 어쩌면 삶에서 조금씩 의미와 재미의 중심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설렌다. 무엇을 좋아할 수 있어서 좋아해서 할 수 있어서.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을 수 있어서.
사진은 본래의 어원에 따르면, Photo빛 Graphy그리다 빛으로 그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고 그랬나 괜한 의미 부여를 하자면 빛의 백성이라는 의미의 내 이름은 사진과 꽤나 어울린다. 빛으로 그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내 삶의 축은 이제 기록으로써 의미 있는 소비로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의식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어떤 서비스로써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편집과 수집이 최고의 근원임을 마음에 새긴다. 무엇을 좋아할지 결론을 낸 지금, 드러내지 않음으로 수집하고, 기록하고, 전달하며 더 나은 것으로 편집해 어제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한 일을 듬직한 사람들과 해나간다. 일 년 전, 집들이를 준비하던 이 즈음에 날씨는 따뜻했던가. 그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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