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가 아니란 걸 알아 『혼모노』
너 진짜야? 혼모노야? 이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거듭 나를 향해 질문한다.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진짜인지. 그 생각을 가장 오래 하게 했던 에피소드는 「스무드」였다. 미국 이민자 3세대로 나고 자라 한국어는 물론 한국 음식도 생경한 주인공. 그가 업무상 한국을 찾아 태극기 부대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이야기 속의 노인들은 마치 손자를 본 듯이 살뜰하다. 손을 이끌고 길을 찾아주고, 배고프지 않냐며 먹을 것을 내어주고, 선물을 쥐여주며 혹여나 잃어버릴까 단추를 잠가준다. 정치 광인으로 그려진 그들의 모습이 혼모노인지, 혹은 외로움에 휩싸인 영혼들의 흔적인지 묻는다. 참 착해 보이는 사람이, 그래서 어쩌면 인간다움을 가장 많이 생각했을 것 같은 사람이 고문실을 설계한다. 그것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공포 영화에서 받은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단편 「구의 집:갈월동 98번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오마주로 하고 있다. 선생이 일반적인 계단을 설계해둔 곳에 제자 구보승은 나선형 계단을 새로 넣는다. 층계를 모를 때 공포심은 더욱 커진다고 하면서. 하루에 딱 10분의 햇살만 들어오는 창을 설계하기도 한다. 오히려 잠깐의 희망이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면서. 군부독재에 영혼을 판 것처럼 여겨진 선생은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을 고민한 건축가였고 (그래도 비겁하긴 함), 순수해 보였던 제자는 합리성에 둘러싸인 살인 기계 그뿐 아니었다. 「우호적 감정」에서도 유사한 고민을 읽었다. 한 조직에서 20살이 많은 누군가가 왔을 때, 주인공은 그 사람을 측은하게 여긴다.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말을 걸고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다. 하지만 그는 상대 거래처에 자기 마음대로 팀원들의 직급을 정해 말했고, 부정한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다.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낸 다른 선배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은 것도 더해서.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직장 내 약자와 강자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스타트업이라는 배경, 직급이 사라진 체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어색함이 익숙했다. 이 소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쉽게 마음을 주지 말라는 직장 선배의 한 마디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말자는 기자의 오피니언 같기도 하다. 성해나의 세계는 차갑고, 뜨겁다. 혼모노(진짜)와 니세모노(가짜)를 오간다.
- christine